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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신 Sep 21. 2024

시간과 여유가 생기면

은퇴를 언제 할 것인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시간과 여유가 내가 정한 기준치만큼 있다면 그래도 나는 은퇴를 해보고 싶다. 은퇴란 모든 현역에서 정식으로 물러나는 행위다. 은퇴를 하면 해보고 싶은 소소한 일들이 몇 가지 있다.

세계적인 길치인 나는 남편 없이 자유 여행을 꿈꾸지 않는다. 남편이 동행한다는 전제로 유럽의 도시에서 한 달 살기를 두 해 정도 해보고 싶다. 남편은 현명한 사람이며 실천력도 남다르다.


십여 년쯤 전에 남편은 유럽의 트레일러 여행을 꿈꿔본 적이 있는데, 나는 한 곳에 머무르며 지내는 붙박이 여행을 꿈꿨다. 묘하게 같은 듯 달랐다. 그때의 꿈은 그냥 꿈이 되었다.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이유로 떠남이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있으면 돈에 목이 말랐고, 어떤 여유가 있으면 오히려 시간이 사라졌었다. 시간과 여유는 돈이라는 단어로 집중된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차이가 있겠지만 시간과 여유를 갖기 어렵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벌 수도 있겠지만 생존과 허영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나의 자존감을 확인해야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시간과 여유란 돈으로도 살 수 있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누려볼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다.


시간도 여유도 누려볼 수는 있으나 생체 에너지는 간단하지 않다. 건강이란 건강할 때 지속력이 가동되므로 돈으로 어느 정도는 지킬 수 있으나 쉽게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건강이 전제되고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나는 지금처럼 소소한 일상을 살고 싶다.


남들의 눈높이와 기준에서 해방되어 시시하게 봄날 벚꽃처럼 덧없게 보여도 마냥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싶다. 풍요로움이 가득한 일상을 살고 싶다. 나의 풍요로움이란 소박하지만 품위 있는 음식과 교통수단의 안락함, 세련된 서재와 정원을 갖춘 괜찮은 공간이다.


지금도 꽤 괜찮은 통창의 서재와 식물이 자라는 꽃수레가 있지만 늘 뭔가 부족하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따금 시간을 누리고 싶다.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니까.


사랑 안에는 좀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빽빽한 업무가 주는 숨 가쁜 하루가 좀 느슨해지면 보고 있어도 여전히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이다. 은퇴를 언제 할 것인지 여전히 마음먹지 못했다. 한 번도 안 해본 은퇴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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