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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신 Sep 19. 2024

내가 꿈꾸는 미래

미래란 분명한 나의 과거와 현재가 섞이면서 발생하는 삶의 기회다. 그러나 삶에 대한 사랑과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이 시점에서 굳이 죽음에 대한 얘기를 하려는 아니다.


살고자 하는 최선의 가치, 존재의 미래를 나 스스로 정하고 싶을 뿐이다. <꿈>이라고 바꿔 표현해도 좋을 것이다. 내게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꿈이 있다. 작가도 되고 싶고, 무대 위의 배우도 되고 싶다. 이런 나의 꿈은 단순하고, 현실적이며 일부는 허황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전히 하고 싶은 것을 꼽아본다면 배우가 되어 정기적으로 역할에 몰입해 보는 것이다. 화가가 되고 싶었던 어린 중학생 때 집에 국세청에서 붙인 빨간딱지가 붙었고, 부모는 넋이 나간 듯 자주 집을 비웠다. 돈이 들지 않는 것은 학교 공부뿐이었다. 떠오르는 이미지의 상상력으로는 시를 끄적여 보았다.


떠올랐다가 추락한 화가의 꿈은 잘게 쪼개져서 손재주로 남았다. 언듯 맛본 시문학은 어렵고 난해해서 창작의 고통만이 남았다. 문학의 쓴 맛에 나가떨어진 나는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사회에 나가서 돈을 벌 자격을 취득하는 전제로 대학을 갔기에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 수업을 하는 교사가 되었다. 나는 경제적 자유를 반드시 가져야만 했다.

꿈을 말하면서 죽음을 함께 말하면 이상할 수도 있다. 꿈은 미래의 것이고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을 안다. 어떤 삶을 살더라도 결말은 같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가까운 곳에 붙여두고 날마다 읽는다.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다.


유명한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워드인 '카르페 디움(carpe dium)'이 있다. '오늘을 살라'는 의미다.  나는 이 말들을 오랫동안 붙들고 살았다. 이 말도 결국 <메멘토 모리>와 같은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죽음이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몇 가지의 꿈들을 죽음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전에 이루고 싶다. 누군가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벗어나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는 시간을 쪼개어 글을 쓰면서 배우 수업이 열리는 가을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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