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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현석 May 04. 2024

높임 표현

주절주절 #8

#높임 표현


국어 3단원 주제는 ‘높임 표현의 사용’이다. 3월 한 달을 학급 세우기를 진행한 탓에, 아득히 뒤처진 진도를 깨닫고 부랴부랴 수업을 나가는 중이다. 올해 우리 학교는 구성원 간 존댓말 사용을 전제하고 있기에, 다행히 별 무리 없이 학습이 가능하겠다는 판단이 섰다.

단원을 열며, 아이들에게 ‘높임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를 질문했다. 곧이어 다양한 답이 쏟아졌다. ‘어른에게 당연히 존댓말을 해야 해서요.’, ‘그냥 쓰라고 해서요.’,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등. 그러면 어른이기 때문에 높임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걸까? 질문 후에, 교과서에 쓰인 높임 표현의 정의를 읽었다. ‘대상을 공경하기 위해 높이는 표현.’ 정의에는, 대상이라는 단어만 존재할 뿐 웃어른, 부모님 등 특정 존재에 대한 지시는 없었다. 정의를 같이 읽어 내린 후, 나는 아이들의 머릿속에 있는, 높임 표현의 사용 이유가 상대방의 나이나 지위 등 외적 요인에 있다는 사고방식을 천천히 벗겨 내었다.

존댓말 문화는 한국에서 보편적인 관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교 문화의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사회 분위기상, 웃어른이나 상관, 상사나 선배에게 깍듯이 존대하는 습관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몸에 배게 된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는 일이지만, 불과 4~5년 전 대학교에 다닐 때만 하더라도 선배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않는다며 싸가지 없다는 식의 험담을 늘어놓는 경우가 상당했다. 가족과 학교, 집단과 사회 속에 자리 잡은 ‘높임 표현’은, 기존의 정의인 ‘대상’의 공경보다는 윗사람에 대한 공경을 통해 수직적인 서열을 공고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곤 했다.

이러한 문화에 의문을 품게 되었던 순간이 있다. 때는 대학교 졸업생 및 선후배가 함께 하는 회식 자리였다. 당시 3학년쯤 되었던 내게 다가와, 술에 잔뜩 취한 채 초면부터 반말을 늘어놓는 선배가 있었다. 살아보니 사는 게  그렇더라며, 말라비틀어진 찌개와 반쯤 남은 소주잔을 앞에 두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그를 앞에 두고 나는 혈기가 추동하는 분노를 느꼈다. 저런 한심한 인간을 꼴에 선배라고 존대해야 하는 이 문화가 얼마나 기형적인가! 역시 술에 취한 채 되알지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존댓말의 사용을 보편화하기로 결심했다. 내 머릿속에서, 더 이상 존댓말은 윗사람에게 건네는 공경이 아니었다. 나의 높임 표현은 상대방의 지위나 사회적 요소를 막론하고, 그저 당신이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양식화된 예의였다. 또한, 이는 상대방으로도 하여금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일정한 거리감을 전제하였다.

몇 년 후, 나는 입대를 하게 되었고, 논산의 한 연대 내에서 122번을 부여받은 훈련병이 되었다. 당시 막사 내에는, 군 전형으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후 곧바로 입대한 20살 친구들이 열 명 남짓 있었다. 극심했던 코로나로 인해 자주 생활관을 이동해야 했지만, 같이 지냈던 2주가량 동안 나는 그들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썼다. 머리카락과 의복, 나이와 직업 등이 제거된 채 동등한 조건 속에서, 훈련소는 본연의 기질이 가장 크게 발현되는 집단이다. 그렇기에, 그 속에서 대상의 외적 요소를 논하는 것은 되레 화를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사회에서 한 가닥 했다며 목에 힘을 주고 거드름을 피웠다가는 냉소와 비웃음을 사기 딱 좋은 것이다. 나의 존댓말은, 그러한 점에서 대상 자체에 대한 공경과 더불어 타인과의 거리감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는 나름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는, 별별 일이 일어나던 막사 내에서 서로 좋은 기억으로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는 마무리로 귀결되었다.

다시 몇 년 후, 교단에 서서 수업 시간이 되면 나는 아이들에게 역시 높임 표현을 사용한다. 물론, 혼을 낼 상황이거나 반의 분위기를 다스려야 할 경우엔 여전히 반말이 튀어나온다. 어쩔 수 없는 그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반말로 아이들을 지도하고 나면 왠지 모를 불편함이 마음에 남는다. 점차 시간이 흐르고, 어느덧 나도 내가 혐오했던 그 선배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 간다. 당시 내가 그렇게도 비난했던 그와 나는 과연 다른가. 매일 나의 언어 사용을 되짚으며, 껍질 아래 자리한 대상 자체를 바라보고자 오늘도 눈과 목에 힘을 준다.



#전시


엄마가 여수에 오셔서, 조퇴 후 예약한 호텔 근처에서 커피를 마셨다. 엄마와 헤어진 후, 차를 몰고 가던 도중 근처 갤러리에서 전시회가 열린다는 플래카드 속 문구를 발견하고 방향을 틀었다. 곳곳에 게시된 교육 박람회 홍보 포스터를 지나고 나자, 세 명의 젊은 작가로 이루어진 전시회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마감 시간에 임박하여 갤러리 안은 한산했다. 나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스태프분의 안내를 받아 전시 공간에 입장했다.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전시회의 이름이었다. <무방향 운동>. 이 제목은 언뜻 모순처럼 들린다. 운동은 움직임을 전제한다. 움직임은 존재의 위치 변화를 나타내며, 이 과정에서 방향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렇다면, 저 ‘무방향’이라는 용어는, 방향의 규칙성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인가. 혹은, 방향 자체가 없는 정지 상태를 하나의 운동으로 표상한 것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작품들을 감상하였다.

세 젊은 작가는 저마다 개성 있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노한솔 작가는 구복행위의 몰개성 속에서 관념적 염원의 개별성을 표상화하여 나타낸다. 박영지 작가는 찰나의 순간을 그림으로 나타냄으로써, 뒤틀린 시공간을 프레임 속에 가둬둔다.  이향아 작가는 한지와 먹을 이용해 불규칙한 운동성의 순환을 그려낸다. 이 세 작가가 통찰한 삶은 획일적인 방향성을 지니지 않는다. 우연의 법칙 아래 이리저리 휘날리는 존재와 관념은,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인다. 마치 물속에서 퍼지는 잉크처럼, 무작위로 퍼지는 운동은 방향의 의미를 소거한다.

작품 감상 후, 전시 공간을 나서며 제목을 다시금 읽었다. <무방향 운동>. 그들의 움직임에 방향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삶의 일정한 양식, 규칙과 기준, 규율을 벗어난 그들의 펜과 붓은 자유롭게 차원의 공간 속에서 춤을 춘다. 그러나, 그들의 움직임 자체만은 뚜렷하다. 알 수 없는 방향과 의미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운동은 영원히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 삶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없다‘는 뜻의 ‘무’는 방향이라는 양식화된 관념을 끌어안지만, 그 뒤에 생동하는 ‘운동’마저 가둬둘 수는 없는 것이다. 밖을 나서며, 나는 그들의 운동에 대해 생각했다. 예상할 수 없는, 그러나 생경하게 느껴지는 그 파닥거림은 마음 한구석에도 어떤 진동과 파장을 일으켰다.



24.04.23, <무방향 운동>, 여수 엑스포아트갤러리(노한솔, 박영지, 이향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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