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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아리 Jun 19. 2024

공부로 도피하는 부르주아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공부만 하고 살 때가 편한 거야~! 넌 공부만 하면 돼서 좋겠다."


학창 시절 엄마한테 지긋지긋하게 듣던 말이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마음속으로 매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정말 공부만 하고 살 던 학생  인생이 얼마나 편했나.



하루종일 일을 하고,

퇴근 후 아이와 놀이터에서 한 시간가량 놀아주고,

목욕하고,

 잠깐 책을 보려고 책상에 앉으면 우다다다 아이가 뛰어 오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 빠이(빨리)~~~!!!"


나와서 자기와 함께 놀자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역시나 퇴근하고 아이가 잠들기 전지 공부하는 것은 힘들다.


9시에서 10시쯤 아이가 잠이 들면 그때부터 마음이 급하다.

인강을 하나라도 들어보려고 책상 앞에 앉는다.


컨디션이 꽤 괜찮은 날은 두 개나 듣는 날도 있고,

유독 피곤한 날은 계속 졸다가 반도 제대로 못 듣고 잠들어버리기도 다.

보통은 꾸역꾸역 하루종일 써서 잘 굴러가지 않는 머리를 쥐어짜며 간신히 강의 하나를 듣고 기절한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출퇴근시간이다.

보통 반은 서서, 반은 앉아서 가는데, 앉으나 서나 내 손엔 항상 태블릿이 들려있다.

아주 운이 좋은 날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앉아서 가기도 한다.


이렇게 운 좋게 앉을 땐 졸음과의 또 다른 싸움 해야 한다.

정신을 차리면 졸고 있기 일쑤다.


너무 피곤한 날은 태블릿을 가방에서 꺼내지도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졸기도 한다.


호화롭게 공부만 하던 학생 때에 비하면 아주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많이 감사하다.

30대 중반이 돼서 고시공부라니~!

이 또한 큰 사치가 아닐 리 없다.

어릴 땐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이렇게 인생의 큰 기회를 이 나이에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리인지. 내가 이 기회를 얻기 위해서 내 주위 사람들이 어떤 희생을 하고 있는지.



마음이 힘든 날이면, 공부는 나의 좋은 도피처가 되어준다.

사랑이야기나 부부가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는 볼 수 없다. 미친 듯이 좋아하던 장르소설과 만화도 안된다.

나의 감성을 자극하는 그 어떤 미디어로도 도망갈 수 없을 때,

나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나의 감성을 단 한 톨도 건드리지 않고 이성만 사용해서 몰두하다 보면, 감정의 파고가 잦아든다.

한참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보면, 나를 괴롭히던 감정은 어느새 사라져 있고, 내가 공부한 결과만 남는다.


그러면 감정이 사라진 그 자리에 뿌듯함이 차오른다.


'공부로 도피할 수 있다니 정말 나 부르주아의 삶을 살고 있구나.'


 감사할 것이 넘쳐나는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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