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아리 Jun 21. 2024

어린이집 전학 가기

니가 애비냐?

예민한 기질의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을 좀 어려워했었다.

다른 아기들은 한 달 정도면 적응을 한다던데, 우리 아기는 3달을 꼭 채웠다.


처음엔 30분, 그다음엔 한 시간, 그다음엔 점심 먹고, 그다음엔 낮잠도 자고...


다른 아기들처럼 한 달쯤 걸려 적응을 끝낸 줄 알았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아이가 낮잠을 30분밖에 못 자요. 깨고 나면 다시 잠이 못 들고 다른 아기들도 다 깨울정도로 울어서요. 아무래도 적응기간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그 뒤로 아이가 적응하길 기다리며 일찍 하원해서 데려오기를 두 달간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이집 원장님이 전화가 오셨다.


"이제 아이가 적응을 다 끝낸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다른 아이들처럼 일과시간 다 같이 보내도록 해봐요. 어머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와 나와 어린이집 선생님이 세 달간 고생한 끝에 드디어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끝났다.

복직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운명의 장난처럼 갑작스러운 별거가 시작되었다.



내 삶이 온통 무너져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어린이집에 연락을 드려야 했다.

도저히 뭐라고 설명을 해야 될지, 나도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상황이라 어린이집 선생님께 어설프게 둘러댔다.


"선생님, 제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친정에 오게 돼서요. 아마 이번주까지는 여기서 지내게 될 것 같아요. 다음 주에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일단 다음 주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결국 그다음 주에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해야 했다.

갑자기 복직을 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친정엄마가 도저히 못 도와주시는 상황인지라 아무래도 친정집에 들어와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겨우 아이도 어린이집 적응하고, 어린이집 너무 좋아했는데 이렇게 돼서 아쉽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원장님께 "사실 애아빠가 횡령을 해서요... 제가 그걸 오늘에야 알게 돼서 이혼을 하려고요... 그래서 원래 살던 집으로 도로 들어가요"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입이 안 떨어졌다.




본가 근처에 어린이집은 당장 자리가 있는 곳이 없었다.

여기저기 전화해 본 끝에 감사하게도 2월에 받아주신다는 곳이 있었다.

내 복직은 1월 중순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엄마에게 약 2주간의 독박육아를 부탁드렸다.

엄마 미안해 ㅠㅠ


이미 어린이집을 다녀본 경력직이라 그런가,

아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아주 빠르게 적응을 끝마쳤다.


나는 초등학교를 4개 다녔다.

어릴 때 가족 사정으로 이사를 일 년에 한 번씩 했으니까.

내가 전학할 때마다 엄마가 날 끌어안고 우셨었다. 미안하다고.

그때의 우리 엄마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적응을 잘하는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갈 때마다 점점 빠르게 학교에 적응하던 나의 어릴 모습을 보는 같아 마음이 쓰렸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쓰린 날은 (전) 남편에게 메신저로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니가 애비냐? 너 때문에 우리 딸은 이제 돌 갓 지난 애가 전학을 다 간다
넌 진짜 너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새끼임


물론 그가 사과의 답장을 보낸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기 때문에

몇 번 하다 그만두었지만.


어릴 적, 난 전학을 다니면서도 꽤 적응을 잘했다. 친구들도 금방 사귀었고, 새로운 동네에도 금방 적응했다.

그런데 오히려 나중에는 전학을 가지 않는 것이 어색해졌다.

작년까지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바로 옆 반에 있는데 새로운 친구를 새로운 반에서 사귀어야 하는 상황이 이상했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 원래 친했던 친구가 같은 반이 되면 그 해에는 아주 잘 지냈지만, 원래 친했던 친구가 옆반이 되는 해에는 반 친구들 중에 '절친'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반 아이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기는 하지만 그중에 '진정한 친구'는 없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어릴 때 전학을 많이 다녔던 일이 이런 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구나.


그래서 내 아이는 절대 전학을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인생은 참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아이가 안정적인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내가 든든하게 버텨 주어야지.

절대 쓰러지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지.

다시 한번 다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