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전학 가기

니가 애비냐?

by 박아리

예민한 기질의 아이는 어린이집 적응을 좀 어려워했었다.

다른 아기들은 한 달 정도면 적응을 한다던데, 우리 아기는 3달을 꼭 채웠다.


처음엔 30분, 그다음엔 한 시간, 그다음엔 점심 먹고, 그다음엔 낮잠도 자고...


다른 아기들처럼 한 달쯤 걸려 적응을 끝낸 줄 알았던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


"어머님, 아이가 낮잠을 30분밖에 못 자요. 깨고 나면 다시 잠이 못 들고 다른 아기들도 다 깨울정도로 울어서요. 아무래도 적응기간을 좀 더 가져야 할 것 같아요."


그 뒤로 아이가 적응하길 기다리며 일찍 하원해서 데려오기를 두 달간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린이집 원장님이 전화가 오셨다.


"이제 아이가 적응을 다 끝낸 것 같아요. 내일부터는 다른 아이들처럼 일과시간 다 같이 보내도록 해봐요. 어머님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아이와 나와 어린이집 선생님이 세 달간 고생한 끝에 드디어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끝났다.

복직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운명의 장난처럼 갑작스러운 별거가 시작되었다.



내 삶이 온통 무너져서 정신이 없는 와중에, 어린이집에 연락을 드려야 했다.

도저히 뭐라고 설명을 해야 될지, 나도 아직 상황파악이 안 된 상황이라 어린이집 선생님께 어설프게 둘러댔다.


"선생님, 제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친정에 오게 돼서요. 아마 이번주까지는 여기서 지내게 될 것 같아요. 다음 주에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는데 일단 다음 주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결국 그다음 주에 어린이집 원장님께 전화를 걸어 거짓말을 해야 했다.

갑자기 복직을 하게 되었다고. 그런데 친정엄마가 도저히 못 도와주시는 상황인지라 아무래도 친정집에 들어와서 살아야 할 것 같다고. 겨우 아이도 어린이집 적응하고, 어린이집 너무 좋아했는데 이렇게 돼서 아쉽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원장님께 "사실 애아빠가 횡령을 해서요... 제가 그걸 오늘에야 알게 돼서 이혼을 하려고요... 그래서 저 원래 살던 집으로 도로 들어가요"라고 솔직하게 말하자니 입이 안 떨어졌다.




본가 근처에 어린이집은 당장 자리가 있는 곳이 없었다.

여기저기 전화해 본 끝에 감사하게도 2월에 받아주신다는 곳이 있었다.

내 복직은 1월 중순이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엄마에게 약 2주간의 독박육아를 부탁드렸다.

엄마 미안해 ㅠㅠ


이미 어린이집을 다녀본 경력직이라 그런가,

아이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아주 빠르게 적응을 끝마쳤다.


나는 초등학교를 4개 다녔다.

어릴 때 가족 사정으로 이사를 일 년에 한 번씩 했으니까.

내가 전학할 때마다 엄마가 날 끌어안고 우셨었다. 미안하다고.

그때의 우리 엄마도 이런 감정이었을까?


적응을 잘하는 아이가 기특하면서도,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갈 때마다 점점 더 빠르게 새 학교에 적응하던 나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쓰렸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쓰린 날은 (전) 남편에게 메신저로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니가 애비냐? 너 때문에 우리 딸은 이제 돌 갓 지난 애가 전학을 다 간다
넌 진짜 너 자신만 아는 이기적인 새끼임


물론 그가 사과의 답장을 보낸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기 때문에

몇 번 하다 그만두었지만.


어릴 적, 난 전학을 다니면서도 꽤 적응을 잘했다. 친구들도 금방 사귀었고, 새로운 동네에도 금방 적응했다.

그런데 오히려 나중에는 전학을 가지 않는 것이 어색해졌다.

작년까지 절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바로 옆 반에 있는데 새로운 친구를 새로운 반에서 사귀어야 하는 상황이 이상했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 원래 친했던 친구가 같은 반이 되면 그 해에는 아주 잘 지냈지만, 원래 친했던 친구가 옆반이 되는 해에는 반 친구들 중에 '절친'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웠다.

반 아이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기는 하지만 그중에 '진정한 친구'는 없는 것이다.

그때 알았다.

어릴 때 전학을 많이 다녔던 일이 이런 식으로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구나.


그래서 내 아이는 절대 전학을 시키고 싶지 않았는데...

인생은 참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이제부터라도 아이가 안정적인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도록, 내가 든든하게 버텨 주어야지.

절대 쓰러지지 않는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지.

다시 한번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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