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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박아리
Jun 12. 2024
너 뭐 돼?
포시즌스, 티파니 앤 코 그리고 마카롱
우리는 결혼한 날, 포시즌스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하루를 보내고 신혼여행을 떠났었다.
결혼한 날이니까 하루쯤은 그런 사치를 누려볼까 했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사치를 매일 하고 싶었나 보다.
그리고 일 년 뒤, 첫 번째 결혼기념일에 전남편은 다시 그 호텔 그 방에 묵고 싶어 했다.
결혼기념일이니까 호캉스를 하자는 거다.
그 당시 우리 형편에 그렇게 비싼 호텔의 스위트룸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내가 반대를 했다.
외벌이를 하고 있었을 때라, 그는 홀로 직장생활을 하는 고단함을 토로했다.
기분전환을 너무 하고 싶다고.
거기만 다녀와서 우리 꼭 절약하면서 살자고.
직장생활을 하지 않고 있던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돈벌이 얘기만 나오면 나는 약자가 되었으니까.
그래서 그에게 당부했다.
그러면 우리 먹을 것도 그냥 근처에서 저렴한 식사를 하고, 선물도 서로 생략하자고.
꽃 한 송이도 안된다고. 정말 딱 호캉스만 하고 오자고.
그는 동의했다.
그렇게 호캉스가 결정되고 호텔에 도착하자 그가 가방에서 민트색 쇼핑백을 꺼냈다.
티파니 앤 코 로고가 쓰여있었다.
아...
그의 서프라이즈가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때 당시 나는 용돈을 한 달에 30만 원 정도만 쓰는 극도로 아끼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내가 돈을 못 버니까 아껴서라도 만회를 해보려고 발버둥 치고 있을 때였다.
친구들을 만나도 집으로 불러서 밥을 해먹이고,
결혼 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사들였던 옷이나 화장품, 액세서리 쇼핑은 일절 안 하고...
그런데 티파니라니? 저것도 분명 카드로 샀을 텐데...
솔직히 화가 났다.
하지만 나를 위해 준비한 서프라이즈니까 최대한 좋은 어조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고마워. 고마운데 마음만 받을게. 목걸이는 필요 없어. 이거 얼마야? 우리 이거 환불하자."
그는 얼마인지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환불도 안된다고 우겼다.
끈질긴 추궁 끝에 목걸이가 50만 원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너무 서운해했다.
자기는 날 위해서 준비한 건데, 내가 전혀 좋아하지도 않고 환불하자고만 해서 마음이 상했단다.
난 원래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데. 그는 내가 아무리 말해도 변하지 않았다.
그와는 항상 이렇게 엇박자였다. 연애 때부터 결혼 이후까지 꾸준히.
결국 언제나 그랬듯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그렇게 나에게 티파니 목걸이가 생겼다.
결혼기념일이니까. 기왕 돈 써서 비싼 호텔에 왔으니까. 그만 싸우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사과하고, 그의 기분을 최선을 다해서 풀어주고 그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 체크아웃을 한 뒤 그가 잠깐 1층 베이커리에 들리자고 했다.
팀원들한테 줄 기념품을 산단다.
이해가 안 됐다. 팀원들한테 왜?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왜 팀원들한테 선물을 주지?
굳이 호텔 로고가 박힌 상자에 담긴 마카롱을 6세트나 샀다.
베이커리 직원분에게 호텔 로고가 있는 쇼핑백에 담아서 포장해 달라고 부탁도 했다.
정확한 가격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상당히 비쌌었다.
(내 기억엔 10만 원을 넘겼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난 폭발해 버렸다.
전날부터 꾹꾹 눌러왔던, 아니 지난 일 년 동안 크고 작게 참아왔던 화가 한순간에 폭발해 버렸다.
야 너 미쳤어? 니가 이재용이야?????!!!!!!!!
너 정신 차려 미친놈아!!!! 니가 재벌이야??
왜 우리 결혼기념일인데 니 팀원들한테 선물을 줘???
너 뭐 돼?? 어???
호텔 로비 한가운데에서
난 진짜 미친년처럼 소리 질렀다.
도저히 분노로 진정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잘못했다고 했다.
이미 오늘은 샀으니까 가져가겠다고. 근데 이게 마지막이라고.
자기가 잘못생각했다고. 미안하다고.
나는 그가 반성한 줄 알았다.
후일담 1.
알고 보니 티파니 목걸이는 50만 원이 아니었다.
작년에 목걸이 줄이 끊어져서 A/S를 맡기며 내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아니 무슨 50만 원짜리 목걸이가 이렇게 툭 끊어져요? 저 이 목걸이 착용 10번도 안 했어요."
"고객님... 이거 50만 원 아닌데요..."
알고 보니 그 목걸이는 80만 원이었다.
(이것도 정확하겐 기억이 안 난다 대충 그 정도 금액이었다.)
티파니
목걸이는
이혼할 때
그에게
결혼예물과
함께
돌려줬다.
진짜 꼴도 보기 싫었으니까.
후일담 2.
알고 보니 그가 직장에서 재벌 행세를 하고 다녔다고 한다.
아마 포시즌스 호텔 로고가 박힌 마카롱도 그의 재벌행세에 필요한 도구였나 보다.
결혼기념일에 포시즌스 호텔 스위트룸에 간 것도.
와이프에게 티파니 앤 코 목걸이를 선물한 것도.
어쩐지 나한테 선물하는 거면서 지 인스타에 인증샷을 열심히 올리더라.
후일담 3.
난 그 뒤로 포시즌스를 다시는 가지 않는다.
로비에서 소리 질렀던 기억이 좋지 않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하니까.
근데 그는 그 호텔이 너무 좋았나 보다.
그 호텔 중식당에서 회사 동료들에게 돔페리뇽을 사주기도 했던걸 보니.
참고로, 난 돔페리뇽 한 번도 못 마셔봤다.
그거 맛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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