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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의 공백 - 2

by 한찬희

오늘은 휴가 마지막날. 주7일로 일하고 있기에 쉽사리 휴가를 쓸 수 없다. 이번 휴가는 9일이라는 긴 기간을 받았는데, 어제까지는 일본여행을 다녀왔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몸이 지치긴했다만, 황금같은 휴가를 집에서 보낼순 없지 않은가. 여러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 약속을 잡아본다.


1편에서 이야기한 친구와 만나기로 한다. 앞서 2번은 우리 동네에 와줬으니, 이번엔 내가 간다.

사실 오늘 몸이 너무 안좋아서 약속을 취소할까했는데, 뭔가 느낌이 좋다. 왜 그럴때 있지 않은가. 신나게 놀고 나면 아픈게 사라지는 날. 오늘이 왠지 그런날이 될 것같아 아픈 몸을 이끌고 청량리로 향한다.

청량리. 친구가 사는 곳.
20살 때 참 많이 왔고, 추억이 셀 수 없이 남아있는 공간.

지하철에서 내려 출구로 향한다. 지도 어플을 켜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발걸음이 이끄는대로 자연스럽게 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번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거나 타면 된다는 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시립대입구앞에서 내리면 항상 가던 피시방이 나를 반긴다. 안타깝게도 이 곳은 문을 닫았다. 언제 폐업한걸까... 근처 다른 피시방으로 향한다.


피시방은 굉장히 오랜만이다.
이 친구랑 온게 마지막이니, 족히 3~4년만이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에 착석한다. 언제나처럼 내가 왼쪽, 친구는 오른쪽. 특별히 정해져있는건 아니다만, 우린 항상 이랬다. 내가 왼손잡이이기 때문일까.

목이 말라 정수기가 있나 두리번거리니, 친구가 미리 주문해둔 음료수를 건넨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같이 즐겼던 게임은 여러가지인데, "뭐 할까?" 라는 말도 없이 롤에 접속한다.

내가 그의 닉네임을 잊었을리 없다.
'웰시코기'
3년간 언제나 함께하고 싶었던 그 닉네임.
이제서야 같이 게임을 한다.

같이 게임을 하면 가장 좋은점은, 나의 진짜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 누구나 그렇겠지만, 평소에 욕을 한다거나 실 없는 장난, 멘트를 치지는 않지 않은가. 그와 게임을 하면 숨겨져있던 또 다른 내가 등장한다.

들어가주고~
죽여주고~~
아니 뭐해~~
캐리 인정? 어 인정~

평소에 사용하지도 않는 말들이 마구 튀어나온다. 순수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랄까. 사실 나라는 사람은 이런 가벼운 말투와 실없는 농담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오랜만에 편한 말들을 툭툭 던진 것 같다.

3년의 공백? 그런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린 언제나 합이 좋았으니까. 말을 하지않아도, 그의 움직임만 보더라도 어떤 플레이를 하고 싶은지 이미 잘 알고 있다.

내가 게임을 좋아했던 이유가 이거였지.
내가 이 친구를 그리워 했던 이유가 이거였지.
아무 생각없이 4~5시간동안 게임을 한다는건 이런거였지.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지.


이 친구를 정말 잊고 살았구나를 느낀 때가 있었는데, 게임을 하던 도중 "내가 장판파의 장비다!" 라는 말을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삼국지를 좋아하기에 당연히 아는말이지만, 이 친구도 삼국지를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오 너 삼국지도 아네?"

라는 말을 하려던 찰나, 머리속에서 삼국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 이 친구와 삼국지 게임을 같이하던 기억. 이것도 잊고 있었구나. 정말 이 친구와의 모든 추억을 잊고 살았구나. 대충 웃고 넘어갔지만 괜스레 미안해진 순간이었다.


피시방에서 나와 밥도 먹고, 노래방도 갔다가 헤어졌다. 참... 즐거웠다. 오랜만에 순수하게 놀았다.

지난번 만남때는 이 친구와의 만남을 굉장히 특별한 일로 생각했다. 3년만에 친구를 되찾은 셈이니 이 얼마나 특별하고 행복한 일인가.

하지만 오늘, 모든게 당연했다. 그와 함께하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닌 당연한 일이다.


친구와 피시방을 가는 건 초등학생때부터 20대 중반까지 언제나 나의 삶에 녹아있던 것이었다.

철없던 20살때로 돌아간 기분.
오늘 하루 정도는 이렇게 놀아도 괜찮지 않을까.

이런 소소한 행복들을 다 제쳐둔채로 나는 무엇을 위해 계속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걸까.


오늘 느꼈던 감정들을 세세하게 적어보고 싶었다. 이런식의 글쓰기를 참 좋아하지 않는데, 그와 함께한 순간을 잊고싶지 않다는 욕심이었을까, 장면 하나하나를 자세히 묘사하는 글을 한번 써보았다. 나름 재밌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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