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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람과 대화하라

by 한찬희

아무리 오랜 시간을 가까운 친구로 지내왔더라도, 속마음을 쉽사리 꺼내기 어려울 때가 있다. 혹시 그가 나를 안 좋게 생각할까, 언젠가 나의 약점을 이용해 배신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때문은 아니다.

우리는 점점 멀어진다.

학교를 같이 다닐 때는 친구에 대해서 모르는 게 없다. 좋아하는 음식부터 시작해서 주말에 혼자 즐기는 소소한 취미까지. 친구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이유는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이다. 방과 후에도 자주 노는 친구라면 하루에 10시간 이상을 붙어있으니, 그에 대해 모르는 게 있을 리가 없다.

적으면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매일 마주하다 보면, 그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몇 달 전에는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더니, 이제는 민트초코에 푹 빠졌네?", "어제까지만 해도 시큰둥하더니, 오늘은 저 영화에 푹 빠져있는 걸 보니, 요즘 관심사가 바뀌었나 보네." 항상 곁에 있기에 파악하기가 쉽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아무리 어릴 적에 친했더라도 나는 그에 대해서 100% 알지 못한다.

자주 연락을 해도 매일 보는 것이 아니기에, 나이가 들수록 1년에 한두 번 정도만 보는 사이가 되기에. 그가 현재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어릴 적의 모습만 기억한다.

아무리 새로운 정보를 주입해도, 내 머릿속엔 그의 어릴 적 모습이 더 강하게 남아있다.

어릴 적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많은 것이 변화한 상태이지만 친구는 그걸 모를 때가 있다. 여전히 나를 '어린 시절의 철없는 아이' 대하듯 행동하고,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그의 기대에 맞춰 예전처럼 행동하고 어린 말투를 사용하게 된다.

결국 오랜 친구는 '기억 속의 나'로 나를 대하기에, '현재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에 오래 알고 지내던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보다, 오히려 나를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뜻밖의 위로와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새로운 사람은 나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다. 오직 지금, 현재의 '나'라는 사람만을 담백하게 바라봐 준다. 설령 과거에 많은 실수를 하며 자라왔더라도, 바보 같은 삶을 살아왔더라도 상관없다.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죠~"
"누구나 실수는 하니까요."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으면 되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기 때문일까, 새로운 사람과의 대화 속에서는 현재의 모습을 편안하게 드러낼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경우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고 정신적으로 성숙하다고 생각되는 어른들께 내 이야기를 털어놓곤 한다. 심지어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 이야기까지 말이다.

"지금 이렇게 살고 있는 이유는 예전에 이러이러한 일 때문이고요, 그때 겪었던 일들을 다시 겪고 싶지 않고, 이제는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진심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울리지 않을 사람은 없다. 나라는 사람이 지금 어떤 사람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짜임새 있게 설명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이쯤 되면 떠오르는 의문 한 가지.

"새로운 사람을 어디서 만나나요?"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의 사람을 만나보기를 추천한다. 잘 몰라도 된다. 그저 좋아하는 마음 하나만으로 대화가 통할 테니까.

그림을 좋아하기에 그림 그리는 분들에게 말을 걸었다. 책을 읽어보고 싶기에 글 쓰는 분들이 모인 독서모임에 들어갔다.

그림? 그려본 적 없다.
책? 읽어본 적 없다.
그래도 괜찮더라. 오히려 좋아해 주시더라.

지난 1년간 새로운 사람을 20명 넘게 만났다. 정말 나와는 아무 관계없는, 가만히 있었다면 평생 알지 못할만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다.

보통 우리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과정은 생각보다 강제적인 경우가 많다.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되고, 군대, 회사 등 나의 의지로 만나게 된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과 다르다. 내 스스로 만들어낸 관계. 그렇기에 더욱 뜻깊다.


오랜 친구와의 관계는 소중하지만, 때로는 현재의 '나'를 온전히 비춰주지는 못한다. 과거의 모습에 갇힌 관계 속에서는 진정한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은, 현재의 '나'를 있는 그대로 투명하게 비춰준다. 과거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오직 현재의 모습과 미래의 가능성에 집중하는 대화는, 잊고 있었던 나 자신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오랜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만남을 통해 '현재의 나'를 끊임없이 탐색하고 성장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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