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면 가끔씩 당황스러운 질문을 받곤 한다. "여기서 먹고 가도 되나요?" 혹은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가도 될까요?" 손님이 많아 자리가 부족하거나 매장 관리에 특별한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라면 이해가 간다. 하지만 텅 빈 테이블을 앞에 두고, 텅 빈 전자레인지를 앞에 두고 묻는 그들의 모습은 묘한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물건을 훔치는 것도 아니고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닌, 너무나 당연한 행동 앞에서 왜 그들은 나의 허락을 구하는 걸까?
처음에는 그저 예의 바른 손님이라고 생각했다. 본인의 행동이 혹여나 피해를 끼치진 않을까 하는 친절함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비슷한 질문이 반복될수록, 단순한 친절함 이상의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들은 마치 아주 사소한 행동조차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없는 듯 보였다.
그들의 표정을 살펴본다. 그들의 얼굴에는 망설임과 불안이 깃들어 있다. 마치 자신이 해도 되는 일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듯한 태도다. 물론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일 수 있다. 하지만 분명 예의의 영역을 넘어, 굳이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는 일까지 누군가의 확인을 거쳐야만 안심이 되는듯하다. 먹고 싶으면 먹고, 버리고 싶으면 버리면 되는 것을...
우리는 언제부터 허락을 받지 않으면 불안한 존재가 되어버렸을까?
문득 어린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화장실에 가려면 선생님께 손을 들고 허락을 맡아야 했고, 발표를 하거나 질문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무언가를 하기 전에 "해도 될까요?"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왔다.
학교뿐만 아니라 가정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허락을 구하며 자랐다. "엄마, 친구랑 놀러 가도 돼?" "아빠, 이 옷 사도 돼?"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모든 선택을 부모에게 의지했다. 부모는 때로는 허락을, 때로는 거절을 내리며 우리의 행동을 조율했다. 물론 부모의 입장에서는 아이가 안전하고 바르게 자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겠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힘을 충분히 기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어른이 된 후에도 이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회사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이렇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고, 식당에서는 "이걸 먹어도 괜찮을까요?"하며 눈치를 본다. 심지어는 옷을 입으면서도 "이 옷 입고 나가도 괜찮을까?"라며 스스로에게조차 허락을 구한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대한 허락이 필요했던 어린시절의 경험이, 당연한 일에도 타인의 허락을 구해야만하는 어른의 모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우리는 자유를 배우기 전에 통제를 먼저 익혔다. 정해진 규칙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익숙했고, 그 틀을 벗어나는 행동은 어색하거나 불안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율적인 행동보다는, 권위 있는 존재의 승인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하고 편안한 길이라고 무의식적으로 학습했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켜야 할 예절과 규칙이 존재한다. 하지만 편의점에서 음식을 먹거나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극히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허락을 구하는 모습은, 오랫동안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갇혀 살아온 우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편의점에서 "먹고 가도 되나요?"라고 묻는 그들의 질문 속에는 오랜 시간 억눌려온 작은 외침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혹시라도 타인에게 불편을 줄까 염려하는 마음일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냥 하셔도 돼요." 이 한마디가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자유를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도 괜찮다고, 어린 시절의 통제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판단을 믿고 자유롭게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은 사소한 허락을 구하는 법이 아니라, 스스로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용기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용기는, "네, 드세요."라는 아주 작은 나의 대답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