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라... 1~2년 전까지만 해도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고작 태어난 날일 뿐인데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날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왜 그걸 축하하는 거지.'
'평소와 똑같은 하루이지 않나?'
나는 남들의 생일을 축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장 친한 친구 한두 명 정도에게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별말 없이 넘어간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생일 축하 메시지를 안 보낸 적이 꽤나 많은 것 같다. 부모님은 음력을 사용해서 알게 모르게 생신이 지나가버리는 경우도 많고, 누나는 뭐... 그냥 별 관심 없으니까.
형식적인 선물 주고받기에 질린 게 한몫했다.
선물을 주고 싶지 않은데도 반강제적으로 주고받는 관계도 꽤나 많지 않은가.
상대방이 선물을 주면, 나도 주는 게 예의니까.
받았는데 안 주기도 뭐하고... 주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상대방 입장에서는 '나는 선물을 줬는데 얘는 안주네... ' 하며 실망하는 경우도 있을 테고 말이다.
'선물'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사용되는 게 적합한가에 대해 생각을 해봤을 때, 이건 아니지 않나 싶어서 하나씩 끊어냈던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선물은 고작 이런 게 아니니까.
27살의 한 해가 거의 다 지나갈 무렵.
나이가 들어서일까,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져서 일까,
이제야 완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어서일까.
한 사람에게 쏟았던 에너지를 골고루 분산하기 시작한다. 사람을 많이 만났고, 지인이 많이 생겨났다.
그동안은 '지인'이라는 말을 잘 이해 못 했었다.
친구면 친구고 아니면 아닌 거지 지인은 또 뭐람.
엄청 친하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또 어색하지는 않은, 자주 연락하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보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아무 계산 관계없는, 서로의 이익을 쫓지 않는 관계.
나라는 사람을 생각 이상으로 존중해 주시는 분들. 나는 그들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누군가를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게 되었다.
생일은 참 의미 있는 날이다.
태어났기 때문에?
사람은 사랑받는 존재니까?
내가 생일을 축하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태어났기에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없었다면, 태어나지 않았다면, 나는 그를 만나지 못하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없었겠지.
태어남으로써 나와 좋은 관계를 가져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생일을 축하한다.
사람의 힘, 인간관계의 힘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된 나는, 그들에게 언제나 고마운 마음뿐이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준 그들이 있기에 내가 존재한다.
생일을 축하하는 건, 나를 살게 해준 그들이 기분 좋기를 바라는 작은 마음일 뿐이다.
축하하는 마음이 커지면서, 의미 있는 생일선물을 해주고 싶은 마음도 커졌다.
치킨 한 마리 보내는 건 너무 성의 없지 않은가.
두고두고 볼 수 있고,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크다.
주로 선물하는 건 작고 귀여운 것들.
작년엔 생일 선물로 아주 알맞은 아이템을 찾게 돼서 귀여운 오뚝이를 선물로 많이 줬던 것 같다.
주는 사람 입장에서도 큰 부담이 되지 않고, 받는 사람도 부담되지 않는.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누군가가 보더라도 미소가 절로 피어오르는.
많은 곳에서 팔지 않기에 흔하지도 않은.
직접 만날 수 있는 지인들에게는 주로 이것을 선물하는 편이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고.
20대 중후반은 기쁜 일들이 참 많이 생기는 나이다.
졸업을 한다거나,
취업을 한다거나,
결혼을 한다거나.
축하하는 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당장 친하지 않더라도 기억 속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다면, 꼭 축하 메시지를 보내보기를. 선물을 보내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에게 큰 힘이 될 수 있으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을 축하해 줬으면 좋겠다.
아무 이유 없이 축하를 받으며 기분이 좋아지는 날이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지금 내가 어떤 상황이어도 상관없다.
취업이 안돼서 힘들어하는 상황일지라도,
누군가와 이별로 인해 인류애가 박살 났더라도,
당장 회사에 출근해 일할 생각에 힘들더라도,
오늘은 나를 위한 날이다.
단 하루 정도는 그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축하를 받는 날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