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에 처음 만나 30살이 된 지금까지 언제나 함께하는, 그 누구보다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학창 시절 내내 등하교를 같이하기도 하고, 방과 후에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는 등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라 할 수 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마찬가지. 저녁에 술 한잔하고 새벽에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는, 일명 '새피'를 수도 없이 했으니.
나와 친구 둘 다 말이 많은 성격은 아니다. 만나도 거의 아무 말을 하지 않고, 밥 먹을 때도 묵묵히 밥만 먹으니까. 하지만 연락할 때는 서로 말이 많아지는 참 신기한 관계다. 매일 몇 시간 동안 휴대폰을 붙잡고 있을 만큼 연락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게임을 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시덥잖은 이야기가 주를 이뤘지만.
언제까지나 즐겁게 게임만 하며 살 줄 알았다.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게임에 대한 대화는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게임을 하지만 옛날만큼의 열정은 식었달까. 카톡방을 가득 메웠던 유튜브 링크나 커뮤니티 링크는 이제 더 이상 올라오지 않는다. 예전같이 도파민 넘치는 대화는 이제 없다.
게임 얘기를 안 하니 딱히 할 말이 없더라.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함께한 친구인데, 게임이 아니면 서로 할 얘기가 없다는 게 말이 되는 건가. 술 마시고 게임만 할 줄 알지, 그렇게 깊은 관계는 아니었던 건가. 과연 내가 이 친구와 친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락이 점점 뜸해진다. 일주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
연락을 안 하는 게 뭐라고, 친구를 오해하게 되더라. 얘는 왜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지? 혹시 내가 싫어진 건가.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있나? 사실 그는 별생각 없었을 텐데. 그냥 할 말이 없으니 연락을 안 하는 것일 텐데.
(혼자만의) 모든 오해가 풀린 건, 정말 오랜만에 그와 밥을 먹으러 만났을 때. 그를 보는 순간 그동안의 서운함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왜 연락이 없었냐며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그는 변함이 없었다. 얼굴, 표정, 목소리, 모두 그대로다. 나에게 그 어떤 불만도 없었고, 나를 피하려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나 혼자 오해하고 있었을 뿐. 그냥 그 친구를 보니 알겠더라. 나름의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있었다는걸.
이제 우리는 매일같이 연락하지 않아도, 정말 오랜만에 만나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관계가 되었다. 연락은 뜸해졌지만, 카톡 친구목록에 그의 이름이 보일 때마다 웃음이 난다. 언제든 아무렇지 않게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관계. 어쩌면 그게 진짜 친한 친구의 증거 아닐까. 연락하지 않아도 계속 이어지는 관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