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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티어넌 (2)

44. Die Hard

by 제이크 Jan 11. 2025

1988년은 대한민국이 서울올림픽을 치르던 해였다. 서울올림픽이 그렇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많은 젊은 선수들이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메달 시상식에 올라갔던 시절을 생각하면 분명 가슴이 벅차오른다. 하지만 이런 서울올림픽 유치도 다분히 정치적이었던 시절이었다. 5공시절에 체육부 장관이자 차기 황태자라고 불렸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업적을 올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것이 사실이니까 말이다. 세계 평화의 상징도 대한민국에 오면 정권의 이용물이 되던 시기였다.


세계는 어땠을까? 레이거 노믹스로 미국 경제를 최고의 호황으로 몰아넣었던 레이건 행정부는 그 고삐를 늦추지 않고 소련(옛 러시아의 국가명)과 중국에 대한 개방 압력을 공개적으로 혹은 물 밑으로 진행하던 때였다. 그중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관의 글라스노스트 (정보공개) 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는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의 몰락을 가져오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1989년부터 1991년까지 많은 공산국가들이 자본주의로 체제 변화를 일으키는 세계 냉전지형의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진다. 소련도 국토가 자치 독립으로 쪼개지며 지금의 러시아가 된다. 단지 고요하게 물 밑 개방을 추진하던 중국만이 공산당 정권을 유지하며 지금의 겉만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헐리웃은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냉전시대 (Cold War)의 주적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항상 나오던 소련의 스파이들은 붕괴 직전이었고, 서방세계를 위협하던 동유럽 국가들은 몰락의 길로 가고 있었다. 그때 나온 영화가 바로 이 < 다이 하드 > 다.

그래서, 이 영화가 당시에 굉장히 신선한 액션 영화 중 하나였다.


첫째로 주적과 주적의 목표가 바뀌었다. 전 세계의 공산화를 꿈꾸며 전체주의의 환상 속에 살던 소련의 빌런들은 오로지 한탕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들로 바뀐다.

둘째로 잘 생기거나 근육질로 무장한 최전선의 요원이나 군인이 아니라 이혼 위기에 놓인 처절한 생계형 형사가 나와 주차 딱지를 걱정한다.

마지막으로 무대가 바로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고층 빌딩이라는 것이다. 액션 영화마다 단골로 나오는 자동차 추격씬은 없다. 건물 내에 테러리스트들을 피해 몸을 숨겨야 되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총격씬이 나오는 장면에서 거대한 자동화기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마지막에 주인공은 남은 총알 2발로 적을 사살해야 한다.

이런 현실적인 캐릭터와 상황이 맞물려 이 영화는 역대급 흥행을 기록하는 액션 영화가 된다. 무려 제작비의 5배를 흥행으로 거둬들인 것이다. 고작 2천8백만 달러만 든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1억4천4백만 달러를 벌어들인다.


< 다이 하드 >의 엄청난 성공은 그 시리즈물을 15년 동안 5편까지 내놓게 만들었고, 브루스 윌리스를 탑 흥행 배우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헐리웃은 작정한 듯 이후에 아류작들을 쉴 새 없이 내놓는다.

< 언더 시즈 >, < 머니 트레인 >, < 스피드 >, < 클리프 행어 >, < 서든 데쓰 >, < 에어포스 원 > 등 형사가 주인공이면서도 어떤 제한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테러물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게 된 것이다. 아마 B급 액션 영화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가 어마어마할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지는 가장 큰 미덕은 액션과 스릴러가 결합한 장르에 유머를 넣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배경은 서양 사회에서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다. 캐롤이 나오는 흥겨움이 영화 전체를 사로잡는다. 가족과 크리스마스라는 소재를 적절히 양념처럼 뿌려댄 것이다.

당시에 고층 빌딩 액션 영화는 옛날에 나온 < 타워링 >이라는 재난 영화가 다였다. < 타워링 >이 화재로 건물을 붕괴시켰다면 < 다이 하드 >에서는 C4라는 폭발물로 건물을 부순다.

이 영화가 영리한 것은 총기 액션에 있어서 멋을 부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1편부터 5편까지 시작과 더불어 점점 너덜거리는 주인공의 런닝구가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을 정도로 주인공은 중산층이 근무하는 사무실들을 마구 잡이로 부셔대며 현실적인 액션들을 선보인다. 한정된 공간으로 스릴감을 올리고, 총알이 난무하는 사무실 공간을 맨발로 뛰어다니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액션을 꽉 채운다.


당시에 브루스 윌리스는 < 블루문 특급 >이라는 시리즈물로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헐리웃에서는 그저 코미디 배우 정도로만 인식되던 배우였다. 그리고, 맥티어넌 감독은 브루스 윌리스보다는 < 프레데터 >에서 같이 했던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더 원했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이 영화는 그야말로 존 맥클레인이라는 액션 영화에 있어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를 창조하게 된다. 'yipeee-ki-yai mother fXXXXX'를 외치며 그 험난한 생사의 기로에서도 미소와 농담을 잃지 않으면서도 죽어라 두통약을 챙기는 그 캐릭터는 액션 영화사에서 가장 특별한 캐릭터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근육 하나 없이 말이다.


이후에 < 다이 하드 2 >, < 다이 하드 ; with a vengeance >, < Live Free or 다이 하드 >, < A Good Day to 다이 하드 > 까지 만들어지는데, 존 맥티어넌 감독이 1편과 3편을, < 클리프 행어 >, < 마인드 헌터 > 의 레니 할린이 2편을, < 언더 월드 > 시리즈로 유명한 렌 와이즈먼이 4편을, 그리고 < 에너미 라인스 >< 맥스 페인 >을 감독했던 존 무어가 5편을 찍으며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이 중에 1,2,4편은 흥행을 하지만 3편과 5편은 그다지 큰 흥행을 이루지 못하면서 시리즈로서 명맥을 다하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3편이다. 존 맥티어넌 감독은 이 3편에서 제한된 공간보다는 수수께끼 풀이로 스릴감을 올리려 하지만 그 부분이 정말 흥미를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한정된 공간에서 죽도록 고생을 하는 영화가 트레이드 마크인데, 마지막에 가서는 헬기까지 타고 날라 가서 총 한방으로 빌런을 처치하는 장면은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러면서 존 맥티어넌 감독은 다시는 < 다이 하드 > 시리즈를 연출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 이후에 만든 블럭버스터들이 하나 같이 폭망 한다. 특히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함께 한 < 라스트 액션 히어로 >는 그야말로 망작에 속하게 되고 역대 액션 블럭버스터 중 가장 망한 영화 중 하나가 된다.   


그래도 이 1편은 꼭 보시길 바란다. 존 맥티어넌 감독의 연출이 가장 화려했던 시절의 이 영화는 감독의 연출과 배우의 캐스팅이 완벽히 맞아떨어진 질 좋은 크리스마스 영화이다. 게다가 이 영화로 인해 헐리웃에서 공포 영화와 더불어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했던 액션 영화 장르들이 확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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