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를 위하여, 클로뤼셰 성

위대한 천재의 놀이터

by 빠리누나

지난 편에 소개했던 앙부아즈성에서 600m 정도

거리에 위치한 클로뤼셰성은

프랑수아 1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하사한 성이다. 다빈치의 사망 후 몇 차례 성의 주인이 바뀌었지만,

현재는 다빈치의 여러 가지 작품과 발명품으로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앙부아즈 성 에서 바라본 클로뤼셰 성 (구글이미지)과 클로뤼셰 성 정원에서 보이는 앙부아즈 성 의 모습

클로뤼셰성의 역사


15세기부터 클로뤼셰는 프랑스 왕가의 소유였고, 그 이전은 앙부아즈 영주가문의 소유였다.

(당시의 성의 이름은

Chateau du Clos Amboise이다.)

1471년 루이 11세는 에티엔 르 룹이라는 귀족에게 성을 하사하였고,

그 당시 만들어진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둘기 장중 하나가 여전히 남아있다.

클로뤼셰 성의 비둘기장 외관 과 내부의 모습


1516년부터 1519년까지는 프랑수아 1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초대하여 이곳에 머물게 하였다.

파리국립기록보관소에는 프랑수아 1세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연금으로

성을 하사한 지급증명서가 있다고 한다.

다빈치는 생에 마지막 3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왕의 첫 번째 화가, 건축가, 기술가로 명명되어

학생들에 둘러싸여 프랑수아 1세를 위한 수많은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러기에 프랑수아 1세와 다빈치는 거의 매일 왕래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위해 앙부아즈성과 클로뤼셰를

연결하는 지하통로가 마련되었다. 클로뤼셰에서는 지하통로의 첫 진입로 일부가 남아있어 관람객들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해 준다.

앙부아즈 성과 연결된 지하통로의 진입로에 설치한 다빈치의 동상과 그들의 모습을 상상으로 재현한 홀로그램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519년 2월 클로뤼셰의 자신의 방에서 프랑수아 1세의 팔에 안겨 사망했다고 전해진다.


<다빈치의 최후> 그림이 걸린 다빈치가 실제 사용했던 침실
다빈치의 무덤이 있는 앙부아즈성의 생튀베르 예배당이 최근 복원을 마치고 대중에게 다시 공개되었다 2024.06.07 촬영

17세기말부터는 오늘날의 Chateau du Clos Lucé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서,

다시 앙부아즈 가문의 소유가 되었고 혁명의 대혼란 시기로부터 성을 구해냈다.

그 이후 1854년부터 현재까지 Saint Bris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



천재의 공간을 재현하다

입장권을 구매하고, 별관에 위치한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위와 같이 클로뤼세와 연결된 통로를 지나게 된다

성의 내부 관람동선은 가장 위층에서 시작하고 천천히 지하까지 보면서 내려오게 되어있다.

성 자체는 큰 규모는 아니지만, 내부에 가득 차있는 다빈치의 흔적들은 클로뤼셰를 방문할 이유로 충분하다.


실제로 다빈치가 사용했던 방외에도 프랑수아 1세의 누나인 마거리트 드 나바르의 방과

샤를 8세의 아내인 안느 드 브레타뉴의 방 등 다양한 공간도 존재하지만,

다빈치의 서재만큼 특색 있는 공간은 없다.

다빈치의 서재

프랑스의 어떤 고성에도 없는 클로뤼셰만의 특징이 가득 담긴 공간이며, 위의 공간에서 펼쳐진 다빈치의 천재성은 클로뤼셰 성의 내부와 정원 곳곳에 재현되어 있다.

실제로 다빈치의 사망 후, 이곳에 남겨진 다빈치의 작품들을 프랑수아 1세가 모두 구매하였고,

그중에는 세계적 명화 <모나리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이탈리가 화가가 그린 <모나리자>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중심부에 당당히 전시되어 있는 이유이다.



프랑스에 있던 3년동안 다빈치가 이렇다할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모나리자>,<세례자요한> 만으로도 프랑스에 아주 큰 선물을 했다고 생각한다.


다빈치가 설계한 각종 무기 및 기계를 재현해 놓은 지하 공간

성의 지하로 내려오면서 다빈치가 설계한 다양한 발명품들을 만나 볼 수 있고,

그의 발명품을 오늘날의 학자들이 얼마나 깊게 연구하고 있는지도 알 게 된다.


보물찾기 시작!

클로뤼셰 성 안내지도


성의 내부관람을 마치고 정원을 향해 걸어 나오면서 본격적인 보물 찾기가 시작된다.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성의 크기에 비해 커다란 정원과 부속건물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클로뤼셰의 모든 공간은 다빈치의 유산으로 가득 차있고, 관람객들은 그것들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사실 성 자체의 의미도 크지만, 클로뤼셰 방문하는 이들이 정원을 보지 않는다면,

성이 가진 진정한 매력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프랑스 고성에 관심이 생겨 앙부아즈시를 방문하는 이들이 있다면, 앙부아즈성 관람후 클로뤼셰 성도

꼭! 방문하기를 바란다.

다빈치의 설계대로 만든 각종 복원품들

정원의 한 곳에 위치한 갤러리에서는 다빈치의 그림 작품들의 영상이미지와

그가 설계한 건축물의 복원모형과 3D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곳곳에 전시되어 있는 작품들과 발명품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흥미로웠고, 교육적으로도 훌륭한 공간이기에 현재 학기가 끝나가는 프랑스 학교들이 수학여행 장소로도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실제로 최근에 방문했을 때에도, 선생님이 나눠준 학습지를 들고 다니면서,

클로뤼셰 곳곳을 관람하고 직접 체험하면서 과제를 하는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바쁜 하루는 좋은 잠을 주고, 바쁜 삶은 편안한 죽음을 준다"

클로뤼셰성을 관람하는 내내 다빈치의 어록 중 하나인 위의 문장이 가슴속 깊이 와닿았다.

화가, 발명가, 엔지니어, 과학자, 인문주의자, 철학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고향 토스카나에 태어나 클로뤼셰에서 사망할 때까지

그의 작품의 기초가 된 자연과 물리학의 비밀을 밝히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의 하루는 보통 인간의 상상이상으로 바빴을 것이며,

다빈치가 외계인이라는 설도 괜히 나온 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불현듯 들게 되었다.

1519년 2월 어느 날, 이곳 클로뤼셰 성에서, 그는 그의 바쁜 삶을 마치며 편안한 죽음에 이르렀지만,

500년이 지난 지금도 다빈치는 그의 유산을 통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에 관한 이야기는

소설, 영화, 비디오 게임 산업까지 영감을 주며 불멸의 존재처럼 현재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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