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ilbreak
“Victory has a thousand fathers, but defeat is an orphan. “ (John F. Kennedy)
스타트업 대표님들 앞에서 스타트업이었던 LG를 이야기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나는 LG에서 오픈이노베이션담당 역할을 하고 있었고
우리 조직에서 스타트업 행사인 LG Connect를 기획하게 되었다.
코로나라서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를 하는 것에 대해 우려들이 많으셨지만
온라인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로 운영하겠다고 하며 허락을 받아냈다.
환영사의 Impact 있는 시작을 고민하다 이 문장을 생각해 냈다.
"LG used to be a startup."
지금은 4대 그룹이지만 시작은 1947년 국산 화장품 '럭키크림'이었다.
처음엔 크림을 등에 메고 다니며 주변 고객들의 손 등에 떠주면서 팔았다.
처음엔 용기가 잘 깨지는 고질적인 문제가 있었지만
1952년 직접 플라스틱 공장에 투자하면서
럭키크림을 안전한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 멀리까지 팔기 시작했다.
동네 장사가 비로소 사업이 될 수 있었다.
몇 년 후 그 플라스틱 기술을 활용하여 진출할 수 있는 신사업을 고민하다가
미국에서 유행하던 라디오의 외관이 플라스틱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아이디어를 냈고
창업주가 한번 해보자고 하면서
1959년, 개발 시작 후 1년 만에 국내 최초의 라디오 A-501을 만들어 출시하였다.
플라스틱이 있으니 라디오를 만들자고 한 건 엉뚱하지만
니즈가 있으니 의사결정하고 외국에서 기술자를 뽑아 진짜 라디오를 만들어 낸 것은 대단하다.
A-501 라디오 출시 초기에는 뭔지 잘 몰라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2년 뒤 박정희 정권에서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하면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전략만으로는 만들어 낼 수 없는 행운이 따랐다.
이렇게 LG화학과 LG전자가 탄생했다.
그러고 보면 LG는 태생이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성장해 온 스타트업이었다.
그때는 복잡하지 않았다.
이 편에는 아이디어 낸 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있고, 저편에는 돈 내는 고객이 있었다.
그게 사업의 본질이었다.
고객이 원하는 게 크림이면 그걸 만들어서 손 등에 발라준다.
멀리 있는 고객도 원하면 그걸 플라스틱 용기어 넣어 멀리까지 가져다준다.
라디오를 듣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내가 기술이 없더라도
내가 가진 것과 남이 가진 걸 조합하여 어떻게든 만들어 내서 그들에게 빨리 가져다준다.
이걸 빠르게 무한 반복한다.
그래서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그게 사업의 본질이다.
Y Combinator의 폴 그레이엄도 이렇게 말했다.
"사업은 커다란 미스터리가 아니다.
사용자들이 좋아하는 걸 만들고, 당신이 버는 것보다 적게 지출하라."
그랬다.
그게 사업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업이 커지고, 회사도 따라 커지고
다양한 사업들을 하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어떻게 하면 사업의 성공률을 높일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발품 팔며 뛰어다니는 것은 열정이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보이기 시작했고
혼자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전문성의 부재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하여 '전문성'이라는 미명 아래
사업의 기능들을 모두 쪼개고 사업을 고도화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난 후
공룡같이 몸집이 커져버린 대기업들의 흔한 조직 구조는 이러하다.
사업을 책임지는 사업부장이나 본부장이 있다.
그 옆으로는 전략, 인사, 상품기획, R&D, 디자인, 생산, 품질, 마케팅, 영업 등
사업에 필요한 기능들이 별도로 조직화되어 존재한다.
이 기능 조직들은 C-Level 최고 책임자를 두고 전문성을 고도화하며
서로 ‘수평적’인 관계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간다.
각자의 전문성을 발휘하되 서로 존중하고 협조한다.
반면 각 단위 조직 내에는 실제 일을 하는 멤버들이 있다.
그들 간에는 직급과 연차라는 단단한 ‘수직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최근 제도적으로는 이를 단순화하려는 시도도 많지만 여전히 내부적인 연차는 존재한다.
회사의 규모가 커질수록 전문성 강화의 미명 아래 ‘수평적’ 기능 조직은 늘어난다.
조직이 오래될수록 고령화가 일어나며 멤버들이 ‘수직적’ 직급에 머무르는 기간은 더 늘어난다.
시간이 흐를수록 본의 아니게
수직적, 수평적 관계가 점점 더 고착화되어 가는 것이다.
‘수평적’ 조직구조를 보자.
사업이 잘 되게 하기 위해서는 각 기능 조직들이 서로 얽히기 마련이다.
가령, 전략이 큰 그림을 그리면 상품기획은 이 부합하는 상품을 기획해야 한다.
혁신적 디자인을 구현하려니 R&D에서 이를 지원해야 한다.
마케팅이 잘해보려고 해도 품질 불량이 나면 소용이 없다.
영업이 고객을 찾아와도 생산이 일정을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
각자의 역할과 갑을 관계가 상황에 따라 서로 물고 물리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서로 ‘수평적’ 관계라서 합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함정.
합의는 좋은 것이지만 여러 이슈가 있다.
합의를 해주려면 상황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반복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평소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추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전문성으로 낸 의견이 충돌할 경우에는 조율에 추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엄청난 조직적 스트레스가 된다.
또한 각자 맡은 기능 고도화를 위해 더 열심히 일을 할수록 사업과는 더 멀어지기도 한다.
교육부서가 전사의 98%를 교육 이수 시켰다고 사업이 잘 되지는 않는다.
품질부서가 엄격히 검사하여 계속 Fail을 시킨다고 사업이 잘 되지는 않는다.
기획부서가 매달 회의체를 잘 운영한다고 사업이 잘 되지는 않는다.
재경부서가 숫자 KPI를 만들고 매달 집계한다고 사업이 잘 되지는 않는다.
기능 조직이 KPI를 모두 달성해도 사업이 잘 되지는 않는다.
부분 최적화의 합이 전체 최적화가 아닌 것이다.
대기업에서는 많은 기능 조직들이 서로 협조한다.
하지만 때로는 그 협조라는 것이 매우 무책임한 것이 될 수 있다.
각자 협조를 안 해주고 내 입장에서의 리스크만 외치고 있는 동안 고객은 떠나간다.
회사는 사업을 하려고 모여 있는 곳인데 사업을 하지 않고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다.
또 이런 이유로 대기업에서 혁신은 어렵다.
세상에 없던 것은 증명하기 어렵고 비교 대상도 없다.
그 상황에서 많은 조직들이 각자 입장에서 코멘트를 준다면
컨센서스 과정에서 '이만하면 됐어.'라고 깎고 다듬어진 사업이 혁신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그렇게 합의한 일이 잘 못 되는 경우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점이다.
모두가 공범이다.
‘수직적’ 인사구조를 보자.
사람들의 능력은 탁월하다.
하지만 그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내적 동기가 필수적으로 필요하다.
내적 동기를 위해서는 분명한 책임과 권한이 중요하다.
자율성에 대한 보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성과에 대한 인정과 보상도 필요하다.
자신이 중요하다고 믿는 일을 자율적으로 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신바람 나게 도전할 것이다.
어떻게 든 해내려고 할 것이다.
성과를 인정받아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누구든 깨어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은 목표가 손에 잡힐 듯할 때 초인적 힘을 내는 법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직급, 연차라는 ‘수직적’ 관계에 꽁꽁 묶여 있다는 것이 함정.
조직이라는 것은 매우 배타적이라서 한번 어떤 부서에 배치를 받게 되면 그 팀 멤버가 된다.
그 팀에서 직급에 걸맞은 역할을 부여받고 그 일을 잘 해내는 것이 최대의 과제가 된다.
그걸 잘해야 인정받는다.
사업을 위해 탁월한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내 업무가 아니면 기회가 없다.
직급 상 내 차례가 올 때까지 묵혀 두어야 할 때도 있다.
점프력이 좋은 훌륭한 개구리들을 골라 뽑아 놓고
더 높은 연차, 직급이 될 때까지 냄비 뚜껑을 닫고 가둬 두는 격이다.
조직과 인간의 속성을 볼 때, 이는 절대 최선이 아니다.
‘수평적’ 관계와 ‘수직적’ 관계를 뒤집어 보자.
기능 조직은 "수직적’ 관계가 된다.
회사의 본질과 존재 이유는 사업이다. 그러므로 사업조직이 사업의 총괄 감독으로서 총대를 멘다.
그리고 모든 기능 조직에 공동의 목표와 각자의 역할을 나눠주는 것이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 기능조직들은 전문성을 발휘한다.
세부 기능 구현 및 달성 방법은 기능 전문가에게 맡긴다.
총괄 감독은 궁극적인 사업목표 달성여부를 챙긴다.
총괄 감독이 모든 기능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는 대신
최종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내 역할은 다 했는데 왜 사업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나?” 는 통하지 않는다.
더 이상 공동의 책임이 아니다. 명확하게 총괄 감독의 책임이다.
조직적인 불평불만을 줄일 수 있다.
멤버들은 서로 ‘수평적’ 관계가 된다.
후배라고 선배가 했던 방법을 똑같이 배울 필요도 없다.
연차를 기다렸다가 리더를 맡을 필요도 없다.
3년 차든 20년 차든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모두가 열정을 쏟는다.
그 열정이 성과로 나타나면 더 큰 일을 맡게 된다.
성과가 반복되면 더 큰 책임을 질 수 있는 총괄 감독에 점점 다가간다.
누구든, 언제든 자신이 한 일로써 사업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내가 매일 하는 일이 우리 조직에, 그리고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Motivation은 없다.
이런 Motivation을 통해 개인들의 역량 발휘를 극대화할 수 있다.
개인 역량이 최대로 발휘되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1947년, 진주에서 LG의 창업주가 처음 럭키크림을 팔기 시작했을 때,
그땐 오로지 제품과 고객만 있었을 것이다. 그게 사업이었다.
시간이 가며 그걸 더 잘하기 위해
기술자도 뽑고, 장사꾼도 뽑고, 숫자쟁이도 뽑고, 법률쟁이도 뽑고 했겠지만
그들이 서로 합의하고 협조하고 하는 사이에 제품과 고객은 점점 멀어져 간다. 사업도 멀어져 간다.
창업주의 마음으로 사업하는 사람이 계속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플라스틱 공장에 과감히 투자할 수 있고
엉뚱하더라도 플라스틱으로 어떻게든 라디오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영광의 면류관을 쓰든 비난의 화살을 맞든
사업을 하는 한 사람이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한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