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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유 Sep 21. 2024

[단편소설] 참새와 여름비

비 오는 날엔 왜 참새가 보이지 않을까?

 참새와 여름비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데도 청바지 밑단이 젖어 어두워졌다. 발등이 따가웠다. 맨발에 쓸린 슬리퍼 때문이었다.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비 오는 날엔 왜 참새가 보이지 않을까?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 그래. 우선 새를 찾으러 가야겠다.


 내가 지금 죽으러 가고 있다는 사실보다, 새가 어디로 갔느냐는 궁금증이 더 컸기에.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리고 새를 찾아 나섰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무작정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기분은. 어렸을 땐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그걸 찾아다니는 것에 시간이 아깝지 않았는데, 지금은 소중히 여기는 것도. 시간도. 모조리 없었다.


 오래 걸어 발이 아팠고 신발을 벗으면 쓸린 발등이 부어오를 것이 뻔했지만 나는 걸었다. 그건 더는 상관없었으니까.


 아파트 건물 주위를 살펴보고. 화단 안쪽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옷이 더러워졌다. 온몸은 빗물투성이었다. 우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급기야 차량 밑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차에 사람이 있었나 보다. 딱 봐도 수상한 나를 보고 차량 주인이 기함하며 차에서 내렸다.


 -저기요. 뭐 하시는 겁니까?


 나는 돌려 말할 기운이 없어 사실대로 고했다.


 -새를 찾고 있어요.


 -…새요? ……아, 앵무새 키우시는구나. 맞죠.


 -아니요. 앵무새가 아니라 참새를 찾고 있어요. 비 오는 날엔 안 보이길래.


 상대는 나를 미친놈 보듯이 바라보다가 정신이 안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는지 굳은 얼굴로 끄덕였다. 그리곤 억지로 웃는 게 명백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정말 새가 안 보이네요. 아파트 주위는 살펴보셨어요? 보통 거기에 집 지어놓고 산다던데.


 -예.


 -아, 그러시구나……. 음…. 그게….


 나는 내 머리 위로 올려진 우산을 바라봤다. 남자는 내게 우산을 씌워 주곤 말을 이었다.


 -무슨 힘든 일 있으신가 해서요.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서도….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이쪽으론 눈치가 빨라요.


 -…….


 -그런 게 있어요. 비 오는 날 우산 쓰고 걷는 사람은 천천히 걷는데, 우산이 없는 사람은 막 뛰어다니는 거죠. 우산이 없으니까. 막아줄 게 없으니까 빨리 뛰다가 다 젖고 쓸리고 그러는 거거든요. 그쪽처럼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 당장 보호해 줄 것도 없고 막아줄 게 없다고 해서 너무 좌절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었어요.


 -아…….


 내 얼빠진 대답을 듣고 상대가 쿡쿡하고 웃었다. 그는 내게 우산을 쥐여주곤 쓰고 다니라며, 새는 보이지 않는 것 같으니 집에 돌아가라고 했다.


 내가 그 말을 들은 것은 그저……새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 말 때문일 거다.


 집에 돌아와 보니 슬리퍼에 쓸린 발등이 부어오른 게 보였다. 아파서 연고를 발랐다. 이런 행동이 우스웠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마지막을 생각하던 사람이, 미래를 기약하며 연고를 바른다는 사실이.


 비가 바닥에 낙하하는 규칙적인 소리가 들렸다. 툭. 툭, 툭. 빗소리는 경쾌했다. 새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태양은 없었다.


 그래도 비 오는 날에 참새를 찾을 때까지는 살아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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