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부대 아빠, 육아전쟁에 뛰어들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운동. 주로 예체능 쪽으로 인생을 살아왔다. 고등학교 시절은 공부보다는 운동을 책상에 앉아 있기보다 뛰었던 기억이 많다. 계속되는 운동으로 흘린 땀을 통해 나의 순진했던 얼굴은 날카로운 면도날처럼 변했고 이성친구에게 말도 못 붙이던 내성적인 성격은 자신감을 불어넣는 망토를 입은 것처럼 외향적으로 변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예체능 계열인 특수체육교육 전공을 선택해 대학 생활을 했다. 대학 생활 동안에도 웨이트 트레이닝에 미쳐 항상 헬스장 형들과 어울리고 PT(퍼스널트레이닝), 체육관 관리, 각 종 보디빌딩 대회를 나가면서 대학생활을 보냈다. 건강한 신체와 자신감 있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서 나라를 지키는 직업을 지원했고 나의 바람대로 대학교 졸업 후 바로 군대에 가게 되었다.
군대에서도 건강한 신체와 강인한 인상을 소유한 나는 임관 때부터 쭉 10년의 군 생활동안 특수부대에서만 근무를 했다. 군 생활을 하면서 좀 더 와일드한 성격의 상남자로 만들어졌다. 결혼 후에는 육아하고는 전혀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다. 거의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직업 특성상 1년 중 가족을 보는 시간은 30일 미만, 한 달에 한 번 2일 정도만 가족을 볼 수 있었다. 항상 사진과 영상통화를 통해 자녀의 커가는 모습을 보았다.
한 달에 한번 가족을 보는 시간에도 편도 250Km 장거리 운전으로 집에 도착하면 잠에 골아떨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니 육아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육아는 신생아부터 3살 때까지가 가장 힘들다. 그 시간을 혼자 견뎌 준 지금의 아내에게 너무 고마움을 느끼고 그 시절을 겪고 있거나 이겨낸 모든 부모들을 존경한다.
나는 나라를 지키는 직업이고 와이프는 대학병원 간호사로 10년 차 맞벌이 부부다. 와이프 이름은 백지연, 첫째 딸 이름은 박아름 8살, 둘째 딸 이름은 박아린 4살이다. 우리 가족 중 나만 남자.. 여성스러운 집안의 상남자로 10년 동안 살아가고 있다. 둘 다 직업이 있기에 나는 기러기 아빠로 살 수밖에 없었다. 와이프는 전문직인 직업에 자부심이 강하다. 나는 10년 동안 일을 그만두고 나를 따라다니며 육아에 전념하기를 수차례 권유 했지만 자기 커리어를 포기하지 않아 결국 내가 떨어져 주말부부를 선택했다.
둘째 4살 아린이의 육아 중간 와이프의 육아휴직 기간이 종료되어 복직해야 했다. 맞벌이 부부는 항상 겪는 일이겠지만 육아를 누군가 해야 했다. 애들을 누군가에게 일반 서민에게 아이 돌봄 서비스를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힘에 부친다. 그리고 내 아이를 남에 손에 온전하게 맡기긴 힘들다. 특히 자신의 의사표현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든 4살 이하의 어린아이라면 더욱이. 특히 그 시절에 아이 돌봄 서비스와 어린이집의 안 좋은 이슈들이 많았다. 와이프는 가족 아니면 안 된다고 선을 그었고 나는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제 내가 육아전쟁에 뛰어들 차례인 것이라는 걸...
그렇게 나는 갑자기 10개월의 육아휴직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육아를 어떻게 하지? 그냥 의지만 있으면 되는 건가?’... ‘안되면 되게 하라!’ 특수부대의 신조로 극복해야 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육아에 관련된 여러 책을 읽어봤지만 솔직히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공감할 수 없었다. 그 분야의 책을 읽음으로써 지식을 쌓고 준비는 할 수 있지만 아무리 많이 읽어도 직접 행하는 경험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어느 날 인터넷에 '육아' 키워드로 검색을 하다가 '육아전쟁'이라는 단어와 만났다. 육아전쟁(育兒戰爭)의 사전적 정의는 '어린아이를 기르는 것의 어려움과 그에 따른 고통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육아가 전쟁이라고? 인터넷 글들을 보니 '육아전쟁에 지친 패잔병'이라는 표현을 보았다. 나는 이대로 패잔병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육아를 전투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흔히 '지피지기(知彼知己) 면 백전백승'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정확히는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百戰不殆)'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 나는 육아와 육아 대상인 애들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가족을 1년에 30일도 못 보는 환경에서 육아 생활에 대해 어떻게 알겠는가... 물론 둘째 딸 아린이가 기저귀를 때서 다행이긴 하지만... 목욕은 어떻게 시키지? 애들 밥을 차려야 하는데 반찬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지? 애들이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하지? 군대 부하들처럼 대할 수는 없을 텐데? 등 끊임없는 궁금증들이 불안으로 바뀌어 내 심장을 쿡쿡 쑤셔왔다.
지금의 나로서는 육아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태로 시간을 흘렀고, 결국 충분한 준비 없이 나는 육아전쟁의 D-day를 맞이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