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태산을 옮기다’의 내용은 막내 딸아이 하나만의 에피소드이다. 둘이 합치면 에너지가 배가 되고 셋넷이 더해지면 시장터가 된다. 그 속에서 발산하는 대장 엄마의 목소리는 정말 우렁찰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는 진정 고운 목소리를 가지고 싶다.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숫자에 관계없이 어느 부모나 아침 등교 시간 화를 참고 삼킬 테다. 아니라면 이미 성인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존경합니다!) 어느 날은 수월하다가 또 어느 날은 학교에 안 가겠다고도 하고, 날씨에 따라 기분에 따라 아이들의 돌발 행동에 부모의 화 온도가 오르내린다.
그 화를 삼키기만 한다면 몸 안을 휘젓는 화가 정처 없이 하루 종일 내 안을 떠돌며 온몸이 터져라 아우성을 칠지도 모른다. 아이가 학교에 가고 나서도 불쾌한 마음이 멈출 줄을 모른다. 화는 어디 가지 않고 내 안에 머물며 쌓이고 쌓였다. 이것저것 이런저런 일들이 쌓였지만 터뜨리지 못했다. 터뜨리지 못했을까? 아니다. 말 못 하는 아이들에게 그 화가 돌아갔다. 엄마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의 음역대를 넘나들며 곡예를 펼쳤다. 아이들도 따라 곡예사가 되었다. 이를 어쩔 것인가.
화의 근원을 찾아 원인을 뿌리 뽑아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할 형편이라면 사용하라. 나처럼. 임시방편 반창고 역할은 해 줄 것이다. 간편하게 일회용 밴드로 살짝 붙여둔 뒤 시간을 내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라. 지금 당장 떠돌이 약장수의 임시처방이라도 받고 싶은가?
그렇다면 화를 수집하라.
화나는 순간 화면을 정지시키고 머릿속에 사진을 찍어 두자. 메모가 좋겠다. 수집한 화를 기록하라. 그리고 그 순간을 곱씹어 보라. 그러면 화의 순간은 그리 대수로울 것 없는 여러 순간들 중 하나로 대상화해 볼 수 있다. 화나는 바로 그 순간 그 장소에서 정지 상태로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반복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이후에 기록한 것을 되뇌어 본다면 다음번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화를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고성을 지르고 화를 내는지 알아나 보자. 순간을 찾고 나면 진정 무엇에 화가 난 것인지 생각해 보자.
분명 내일은 오늘 보다 더 나아진다. 쌓이는 화수집만큼 내 화가 줄면 좋겠다.
화수집은 중국집에서 시작되었다.
오랜만에 자장면을 먹으러 갔다. 4인 테이블이라 세 명씩 나누어 앉았다. 내 앞에 앉은 큰아이가 매너 좋게 물을 따라 준다. 하얀색 종이컵을 세 개 꺼내 첫 번째로 물을 따르는 순간 종이컵이 물병 무게에 밀리면서 물이 탁자에 쏟아졌다. 집에서는 묵직한 머그컵을 주로 사용하던 터라 종이컵의 무게를 생각 못한 아이의 작은 실수였다. 물이 사방으로 천천히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더 퍼져라. 한 소리 해주겠다.’
‘바닥까지 흘러가기만 해 봐라. 혼내 줄 테다.’
물이 더 흐르지 않고 정지 상태에서 멈추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잠시의 정지 상태에서 든 생각에 그제야 기가 막혔다.
엄마는 혼낼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고 있었다. 무려 중학교 3학년이나 된 아이에게 말이다. 내가 이렇게 사악한 사람이었다니. 아이가 그동안 엄마의 자잘한 잔소리에 얼마나 숨이 막혔을까. 아이는 당황해 잠시 어쩔 줄 몰라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의식이 정지되고 물이 잠시 흐름을 멈추며 그 순간을 붙들 수 있었다. 소리를 치고 나무라는 대신 아이에게 냅킨을 쥐여 주었다. 천만다행이다.
“아이의 작은 실수를 용납 못하는 나야, 너 자신을 돌아봐라. 너는 얼마나 많은 실수를 하며 사는지 한 번 돌아나 봐라.”
작은 잔소리가 아이를 작게 만든다. 큰 소리만이 아이를 작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아이 앞에서는 한숨 소리도 조심하는 엄마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