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화의 시작은 아침이다. 촉박한 시간, 늦은 등교, 느린 아이, 움직이지 않는 아이, 천하태평인 아이.
아침에는 시계를 보지 말라. 분 단위로 확인한다고 아이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아이를 보라. 울화통이 치미는가? 그렇다면 아이의 얼굴을 보지 말고 손을 잡아라. 고운 목소리로 설득하라. 아이의 자립심 운운하지 말라.
내 아침 화에 오늘 가족의 명운이 달려 있다.
아이는 칫솔을 물기 전에 최대한 시간을 끈다. 밥 먹은 식탁이 깨끗하게 치워졌는데도 아이는 하염없이 앉아 입안의 음식물을 씹는다. 양 볼은 홀쭉한데 아직 입에 무엇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다음에는 물을 마신다. 칫솔을 입에 물기까지 과정이 참 길다. 양치질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얼굴은 눈곱만 떼고 나오니 양치 시간과 세수 시간을 합해 대충 평균을 내 그럭저럭 넘어가 본다.
제 옷을 찾다 책을 펼치고, 양말을 찾다 피아노 앞에 가 앉아 있다. 이 정도면 집중력이 무지 떨어지는 것 아닐까 걱정도 된다. 셋째 오빠는 겉옷까지 입고 대기 중인데 딸아이는 아직 잠옷차림이다. 지각이 걱정인 오빠는 자기 전 옷을 골라 놓았다고 한다. 그러곤 친절하게 동생의 준비를 돕는다. 양말을 찾아준다. 엄마 발에 맞는 양말이다. 그래 어제도 엄마가 신었는데 오늘도 엄마가 신으면 된단다. 그럼 너는 저 바닥에 굴러다니는 너의 잠옷을 좀 걸어주겠니? 엄마는 꼬마 양말을 찾을 테니.
그 사이 막내는 양말이 안 보인다며 한껏 짜증을 내고 있다. 오늘따라 더 높은 산이 된 소파 위 빨래 더미는 주말을 맞아 세탁기가 종일 돌며 세탁해 둔 것이다. 높은 산에 기가 질려 짜증이 배가 된 것은 아니다. 그저 아침에는 기분이 별로인 아이다. 어젯밤에는 좀비 꿈을 꿔서 무섭다는 아이를 아침에 한참을 안고 있었다. 밥솥에서 힘차게 김이 올라오는 동안 블로그 놀이하는 엄마 옆에 기대앉아 중국신화 만화책을 읽었다. 그저 앉아서 누워서 편하게 쉬는 주말이면 좋겠다는 아이는 움직이기 싫다. 식탁 말고 빨래 쌓인 소파를 엄마만큼이나 애정하는 아이다. 소파를 떡하니 차지한 옷가지가 아이눈에도 이뻐 보일리가 있나.
산에서 양말 찾기라는 말을 들어나 봤는가. 우리 집에서 매일 벌어지는 일이다. 오늘은 친근한 산, 태산에서 양말 찾기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학창 시절 줄기차게 외우던 높고 높은 태산을 우리 집 소파에서 찾았다. 태산 골짜기마다 뒤져 보아도 같은 짝을 찾을 수가 없자 한참을 성의 없이 뒤적거리던 아이는 양말 서랍장 앞을 서성인다.
엄마는 큰 마음을 먹고 아침부터 태산을 옮기기로 한다. 태산을 오르는 일도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태산을 옮기는 일이 어디 쉬우랴. 옮길 마음을 먹기까지 수많은 고민을 하고 거친 마음을 다스려야 함이라. 마음을 먹기가 힘들지 결심한 후에는 일사천리로 이루어진다. 가장 높은 곳부터 묵묵히 양손에 삽자루를 쥔 것처럼 조금씩 떠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될 일이다. 골짜기 굽이굽이 숨어 있는 양말을 찾으려면 한아름 안아서 내리거나 밀어서 태산을 통째로 무너뜨리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천천히 산을 옮겨 겨우 한 켤레 양말을 찾았으나 아이는 이미 양말을 택한 뒤였다. 한 짝은 진한 회색, 다른 한 짝은 연한 회색이다. 색깔 차이가 그리 나지 않아서 아이 눈에 안 띄었는지 명암 구분이 안 되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분명 다른 색인데 아이에게 선택되었으니 그것으로 족하다. 태산을 옮겼으나 허탕을 친 어미는 내일 신자며 양말 한 켤레를 잘 말아 꿍친... 뒤 어디 뒀더라? 급히 나오느라 생각이 안 난다. 산으로 다시 들어간 것은 아니겠지?
오늘은 퇴근 후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태산을 분해해 장롱에 차곡차곡 넣어야겠다. 혼자 보다 여럿이 옮기면 금세 옮길 수 있을 테다. 내일 태산이 다시 쌓인다고 해도 나는 오늘의 태산을 옮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