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화수집 01화

화를 수집하기로 했다

by 눈항아리

화를 내는 나는 사랑스럽지 않다. 나는 목소리가 고운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늘 울분에 차 있다. 들끓는 가슴속에 쌓인 것이 무어 그리 많은 것인지. 파 보아야겠다.


혼자 화를 내고 속이 문드러지면 그러려니 하고 말겠지만 화가 빼꼼 열어 놓은 부엌 창문을 타고 바깥으로 날아간다. 바람을 타고 빠르게 마당을 지나고 나무 울타리를 넘어 작은 나무 덤불숲을 통과하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는 밀빛 잔디를 찬 목소리로 세차게 어루만지며 올려 차기를 한 뒤 옆집 새댁 귓가에 가 내리 꽂힌다. 아 부끄럽다. 그전에 옆집 문 앞을 지키고 선 개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반응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내 일상 속 꽥꽥거림이 개 녀석에게 이미 익숙한 것임에 틀림없다.


가족들은 이미 익숙해져 만성이 되었다.




새 학기 첫 주 금요일이었다. 막내 딸아이가 오리 꽥꽥이가 되어 아빠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우리 집에서 소리를 질러대는 것은 엄마뿐이니 내가 고성의 원인이 분명하다. 남편은 며칠 후 나에게 말했다.


“우리 함께 화를 다스려 보면 어떨까?”


남편은 화를 내지 않는다. 화가 나면 목소리가 근엄해진다. 염소 목소리에서 조금 뚱뚱한 양 목소리로 변할 뿐이지만 근엄한 건 근엄한 거다. 날 보고 소리 지르는 걸 어떻게 좀 해보라는 말이다. 그래서 간단히 정했다. 내 첫 이야기의 주제는 ‘화’이다. 늘 그런 상황을 써 내려가 별 다를 것도 없다.


찬찬한 성격의 남편과 달리 나는 덜렁이 암탉 같다. 본디 보고 배우는 바 딸아이가 뭘 보고 배웠겠는가. 화가 나고 짜증이 나면 마구 외치라고 가르쳐준 꼴이니 이 사태를 어찌할 것인가.


남편은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오리 꽥꽥이 딸아이를 어쩌지 못했다. 얌전하게 꾸짖어 보고 근엄하게 그러나 눈빛은 날카롭게 목소리를 깔아도 보았다. 마지막으로 간지럼 작전까지 실행했지만 아이는 멈출 줄 몰랐다.


내가 변해야 아이가 부드러워진다.




화가 쌓인 근원을 찾으려면 불우한 어린 시절부터 윗윗대까지 거슬러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를 일. 당장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에는 사안이 급박하다. 내 속에 깊숙이 쌓인 화는 차차 풀어내기로 하고 당장 화를 내는 순간을 포착해 그 순간을 정지시켜 보고자 한다.


왜 그 순간 화가 났을까? 기분이 어떤가? 다른 해결책은 없을까? 오늘 하루 몇 번의 화를 낼 기회가 있었나? 실태를 파악해 보자.


오늘 하루 몇 번의 화를 수집해 보았다. 실은 기분 나쁜 순간을 기억하는 일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그러나 순간을 멈추고 한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닌 아주 사소한 일인 경우가 많다.


실태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내 안에 갇힌 화를 다양하게 수집해 보자.




내 화가 모이면 더러운 기분이 바글바글 모여 강을 이루며 흘러갈까? 마녀의 마법약을 끓이는 둥글고 넓적한 항아리 모양 냄비 안에서 혼탁한 색깔의 액체가 되어 커다란 물방울을 만들며 부글거릴까? 일부는 악마가 혹은 죽은 자가 건너야 하는 강물로 흘러갈지도 모르겠다. 화를 수집해서 무엇을 할까. 악마와 거래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는 순간 나는 진정 악마 같기는 하다. 대마왕이 될 것도 아니고, 어디에 저축을 하거나 투자를 할 것도 아닌데 화를 모아서 무엇하게?


화를 수집하며 내가 무엇에 화가 난 것인지 알아나 보자. 화가 나는 표면적 이유와 진짜 속사정은 무언지 진지하게 나와 대화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또 화수집 품을 통해 다음번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미리 대비할 수 하는 마음자세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왜 화를 내는가? 화수집을 통해 화를 줄이고 미리 통제할 수 있을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