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동이는 중 3이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된다. 수학, 영어,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 얼마 전 아이는 피아노 학원을 이번 주까지 다니고 관두겠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꾸준히 다니던 피아노 학원이었다. 친구 덕분에 시작해 덩달아 동생들도 줄줄이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 콩쿠르 한 번 나간 적이 없는 피아노. 음악 전공을 할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섬세한 성격에 나름 도움이 되었던 모양인지 한 번도 그만두겠다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런 학원을 그만둔다니 조금 아쉽기도 했다. 매일 시간을 쪼개 다니던 것이 이제는 힘에 부치는가 보다. 저녁을 못 먹고 대충 간식으로 때우고, 10시 학원이 끝나고 밥 먹는 날이 많았다.
고등 과정에 맞춰 1월부터 수학 학원이 더 늦게 끝난다고 했다. 11시가 넘어서 끝난다고 했다. 우리의 퇴근은 9시이고 늦어도 10시면 정리가 끝난다.
“아들아 학원을 꼭 다녀야겠니? 아빠는 언제 쉬냐. ” 그 말 끝에 엄마가 자신을 태우고 늦게 들어가면 안 되냐고 한다.
“그럼 당연히 안 된단다. 엄마는 집에 가서 할 일이 많거든.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고 또 운동도 하고 잘 준비를 해야지. 동생들은 누가 재우냐. ”
고등학생이 된 자녀를 둔 엄마들이 늦게까지 아이를 태우러 다닌다더니 남의 말이 아니었다. 당장 다음 주부터 복동이를 11시에 태워야 한다.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는 게 끝이 아니었다. 아이의 정서적 안정이 문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학원 픽업 시간이 문제가 되었다. 집이 가까우면 아들 스스로 집에 오면 되지만 우리는 로망을 찾아 가까운 학교를 두고 먼 시골로 들어가지 않았던가. 고등학생이 된다는 것은 부모의 시간을 갈아 넣는 것이었다. 아빠의 건강이 염려되어 아이에게 말해본 것인데 남편에게 말하면 당연히 기다렸다 태우고 간다고 할 것이 뻔했다.
엄마와 한창 실랑이를 하던 복동이에게 엄마는 태우고 집에 올 수 없으니 아빠와 상의하라고 했다. 아들의 말을 들은 남편은 망설임 없이 긍정의 답을 했다. 쪼잔하고 자기만 아는 엄마가 된 것 같았다.
당장 다음 주부터 주 3일은 11시까지 아들을 기다려야 하는 남편. 가게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남편이 할 일이야 뻔하다. 즐겨보던 드라마를 보거나 운동을 할 테지. 남편은 그다음 날부터 자전거를 옮기기 시작했다. 당근에서 무료로 나눔 받아온 거치형 로라도 하나 가게로 옮겨 놨다. 이제 운동은 주 3일 가게에서 하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복동이가 내년에 고등학생이 되고 2년 후에 복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또 3년 후 달복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또 2년 후 복실이가 고등학생이 된다. 앞으로 몇 년 동안 11시 퇴근을 하게 되는 걸까. 복실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0년. 우리의 출퇴근도 아이들의 등하교와 함께 10년은 계속되어야 한다. 남편 앞으로 10년 동안 우리는 달려야 해요. 깜빡이는 주황 점멸등을 안내등 삼아 달려야 해요. 우리 할 수 있을까요?
달복이는 아직 수학 학원을 안 다닌다. 지금은 공부에 관심을 안 가지지만 그 녀석도 형들처럼 어느 학원이든 보내달라고 할 것이 뻔하다. 얘들아 요즘은 인터넷 강의도 많더구나. 이비에스가 좋다고 하더구나. 학원 맛을 들인 큰 녀석 둘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달복이부터는 어찌어찌 가정학습으로 인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얘들아 집에서 스스로 학습이 최고 아니겠니? 아니라고? 공부를 꼭 해야 할까? 이건 아닌 것 같고. 앞날이 어둡다. 퇴근 길이 어둡다. 얘들아 엄마, 아빠 노안이 오는데 밤 운전할 때 침침해서 앞이 잘 안 보인단다. 이런 약한 모드로 어필해 볼까?
공부는 학교에서 할 일이지 왜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공부를 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생이 되면 12시까지 학원 수업을 한다는 고등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설마설마했다. 금방 나에게 이런 날들이 닥칠 줄 몰랐다.
앞으로 10년은 아이들을 태우고 달려야 한다.
지금도 10시에 학원이 끝나는 복동이에게 어느 날 물었다.
“저녁도 늦게 먹고 안 힘들어? ”
영어 공부를 해 보겠다고 영어 학원을 다닌 지 2개월쯤 되던 때였다.
“안 힘들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뭐. ”
기어코 혼자 공부할 방법을 모르겠다며 보내달라고 해 다니게 된 학원이었다. 수학 학원도 1학년 중간고사를 보고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나도 남편도 학원에 다니는 것을 반대했다. 그런데 부모가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학교와 사회가 공부를 하라고 하는 분위기 인가보다. 수학과 영어 공부를 잘해서 대학 가는 것이 목표인 아이는 밥을 거르고 운동을 거르고 시간을 죽여가며 공부를 한다. 수학과 영어 공부에 투자하는 아이의 방과 후 시간이 나는 아깝기만 하다.
아이는 자신이 가는 길이 어떤 길인지 알지 못하지만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겠지?) 얘들아 너희들의 등하굣길은 엄마, 아빠가 책임지겠다. 초를 치는 엄마는 되지 않으마.
어제는 몸이 안 좋아 10시에 끝나는 복동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집으로 갔다. 가는 길에 복동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는 집에 가는 길이라니 복동이가 서글프게 말했다.
“그럼 내 밥은? ”
맞다, 복동이의 저녁밥을 깜빡하고 있었다. 저녁으로 다섯 명이서 짜장면을 맛나게 시켜 먹고 퇴근 시간에 맞춰 꼬마들만 태우고 출발한 것이었다.
‘미안하다 복동아. 엄마가 너를 잠시 잊었다. ’
청소하느라 바쁜 남편에게 밥 차려달라 하기는 뭣하고 복동이에게 아빠랑 오랜만에 치킨집에 가서 따끈따끈한 치킨 외식을 하고 오라고 했다. 복동이와 복이 남편은 신이 나서 문 연 치킨 집을 물색했다고 한다.
11시에 끝나면 저녁밥은 어쩌지? 대한민국이여. 아이 밥은 먹이고 굴려야 할 것 아닙니까. 다행히 피아노 학원을 끊고 수학 학원 시간이 뒤로 밀리면 밥 먹을 시간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고등학교 입학을 해 보면 알 일이다. 미리 걱정하지는 말자. 엄마는 밥 걱정, 잠자는 것이 걱정이다. 남편과 아이는 별 걱정이 없어 보인다. 아빠와 아들이 합체하면 뭔 일인들 못하겠는가.
복동아 너의 등하교는 아빠가 책임진다.
남편 앞으로 10년은 달려야 해요.
열심히 운동해야 해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