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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Dec 23. 2024

자가진단 오십견을 파헤쳐 보았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했다.


앗차, 오늘 병원에 가기로 한 것을 깜빡했다. 가게에 주차도 했는데 갈까 말까 망설여진다. 덜 아픈 것이 분명하다. 근처 약국으로 간다. 진통제나 염증 약을 달라고 해서 먹을까? 약국에 가려다 차로 돌아왔다.


코로나를 보내며 자가진단을 어설프게 배운 나. 팔이 아프고 나이가 오십이 다 되어가니 오십견으로 진단하였다. 팔을 위로 올리니 아프다. 만세 하기 힘들다. 밤에는 더 아프다. 건들기만 해도 아프다. 오십견이 확실하다. 대증치료도 배웠다. 아프면 진통소염제를 먹는다. 열나면 해열제. 설사하면 설사약. 설사는 안 한다. 다행이다. 증상에 따라 약을 먹을 거면 약국에 가도 되는데, 병원에 갈까 말까 망설이다 마음먹은 김에 병원에 가기로 했다. 가장 가까운 정형외과가 있는 병원으로 간다.


차로 5분도 안 걸리는 가까운 병원이다. 넓은 주차장이 매력적이다. 몇 해 전 오픈 주차장에 요금소를 설치했다. 병원 환자들만 사용한 후 주차가 더 편해졌다. 그런데 왜 공간이 없는 것일까. 아픈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좁은 주차장에 아슬아슬 주차를 했다.


팔이 아픈데 정형외과로 가는 게 맞겠지? 접수 데스크에서 신경외과로 가야 하나 잠시 고민해 본다. 접수처 직원의 안내에 따라 정형외과로 간다. 주차장도 차가 가득이었는데 병원 안도 만원이다. 과연 정형외과도 사람이 많다. 어르신들이 많다. 나는 아주 젊은 축에 속한다. 사람이 많아도 선생님이 여럿이면 금방 줄어들겠지 했다. 정형외과는 선생님 한 분이 진료를 봐준다. 사람이 안 줄어든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병원에 와서 출근이 늦는 날이니 마음이 느긋하다. 핸드폰 독서를 하다 꾸벅꾸벅 졸았다. 1시간을 대기 의자에 앉아 졸고 있으려니 이름을 불러준다.


“팔을 올려 보세요. ”

“오십견은 만세가 안 되는데... 잘 올라가네요. “


오십견은 말도 안 했는데 오십견이 아니라고 했다. 휴우 다행이다. 오십견 올 나이는 아니라고 했다.


“어디가 아프세요? ”


“어깨 목, 팔, 손목이 아프고, 손도 저릿저릿해요. ”


“엑스레이 찍어 볼게요. ”


팔 손목 등등 엑스레이 몇 장을 연달아 찍었다.


뼈는 아주 깨끗하다고 했다. 목이 좀 길다고 했다. 목이 좀 길어서 팔 통증이 잘 올 수 있다고 했다. 갑자기 목이 길어서 슬픈 짐승이 생각났다. 나 진짜 그런 사람이다. 목이 길어서 슬픈 사람. 목 통증 때문에 팔이 아프고 저릴 수 있다고 했다. 오십견은 절대 아니고 뼈는 깨끗하지만 약을 준다고 했다. 대체 저는 어디가 아픈 건가요? 약은 무슨 약인 거죠? 염증약, 신경통약, 위장약 세 알이 들어 있다. 일주일 후 다시 보기로 했다. 오십견이 아니라는 말에 벌써 안도감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의 절대 아니라는 말이 위안이 되었다.


나 아직 창창하다.

나 아직 안 늙었다.

나 아직 팔이 올라간다.

만세도 되는 사람이다.


병원을 안 가고 집에서 가게에서 혼자서 속을 끓였다. 아프다고 남편을 들볶고 아이들에게 짜증을 부렸다. 나이가 들면 고통은 만연하니 아픔을 참으며 사는 거라 다독였었다. 왜 그랬을까. 진작 병원에 와서 진단을 받으면 마음이 좀 가벼웠을 텐데.


내 나이 또래의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우리 나이가 아직 고통을 참을 나이는 아니지요. ” 그러니 전투적으로 치료하자고 했다. 진통제를 먹으라는 이야기인가. 맞는 것 같다. 어디가 안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아직 고통에 적응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치료하자는 말씀 같다. 이것저것 약을 쓰다 보면 하나 걸려들어 맞는 약이 나올지도 모른다. 우선은 아프니 아프지 않게 약을 주는 것이다.


병원은 좋다. 믿음직하다. 어디 아픈지는 모르지만 심각한 건 아닌가 보다. 별 일이 아니라니 덜 아픈 것 같다. 약을 먹어서 덜 아픈지도 모른다. 병원에 가기를 잘했다. 오십견이 아니라니 젊어진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청년이다.


고통에 익숙해지지 말자. 인내하지 말자. 진통제가 있지 않은가. 아프면 안 아프게 해주는 약을 먹으면 된다. 아프면 골골대지 말고 병원에 가자.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아프다고 징징거렸던 날들을 반성한다.


병원은 참 이상하다. 별 신통한 치료를 해 주는 것이 아닌데도 치료가 되는 것 같다. 약이 좋은 건지, 의사가 좋은 건지, 병원에 다녀오는 길 일상 탈출하는 기분이 좋은 건지 잘 모르겠다.


오랜만에 핸들에 왼손을 얹었다. 오십견이라 생각하고 조심하던 팔이 척하니 올라갔다. 자가진단은 신중해야 한다. 진단에 나의 몸을 맞추면 미리 몸이 굳어버릴 수 있다.


의사 선생님이 목통증 이야기를 해서 그런가 저녁이 되니 목이 더 아픈 것 같다. 목을 빳빳이 들고 핸드폰과 책을 봐야겠다. 주기적으로 스트레칭도 해줘야겠다. 선생님의 말씀 한 마디 들었다고 통증이 만들어지다니. 나의 마음이 통증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때로는 씩씩한 나도 가끔은 아프고 싶은지도 모른다. ‘나도 연약한 여자랍니다 ’이런 코스프레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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