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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Dec 16. 2024

양말의 전쟁

내 양말 어디 갔어!


“엄마 내가 양말 찾아서 여기 바닥에 뒀는데 누가 가지고 갔어. 엉엉엉. ”


양말을 찾아놓고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오빠들 중 누군가 양말을 가지고 갔다. 첫째 복동이는 자신은 절대 아니라며 발목을 걷어 양말을 확인시켜 준다.

“이봐 이 무늬가 아니지? 무슨 색 양말인데? “

“회색 양말. ”


주방에서 온 집안을 관망하는 자세로 훑어보는 엄마의 예리한 눈초리가 싱긋 살짝 입가에 웃음을 띠는 복이를 찾아냈다. 범인이 분명한데? 복이도 양말을 찾고 있다. 신은 것이 아니었나? 그 웃음의 정체는 무얼까?


지금에서야 생각났다. 마구 웃음이 난다. 범인이 나였다니. 오늘따라 거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양말들이 많았다. 복이에게 거실에 보이는 양말을 죄다 치우라고 하였다. 복이는  엄마의 부탁으로 신은 것과 안 신은 것 짝짝이 양말 구분 없이 한꺼번에 몰아가 세탁바구니에 던져버린 것이다. 자신의 행위를 그 상황에서 말할 수는 없고 그냥 씨익 웃은 것이다. 그도 양말을 찾고 있는 상황이니 걸릴 일은 없다 여겼을 것이다. 울고 불고 눈물을 짜내는 복실이가 웃길 뿐이다. 복이의 입장에서 보면 찡찡거리는 동생이 어이없을 뿐이다. 빨리 다른 것을 찾아 신으면 될 것을 왜 엄마에게 이르고 난리일까. 사악한 악마형 복이와 치매형 엄마의 콜라보가 만들어낸 아침의 전쟁터.


양말 전쟁의 요점은 우리의 발이 비슷한 수준의 크기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어린이 코딱지만 한 발사이즈를 벗어나 이제 어엿한 언니 발 반열에 오른 복실이도 230사이즈 신발을 신는다. 자그마한 아기 발은 앙증맞았다. 얼마나 귀여웠지 모른다. 이제는 머나먼 추억 속의 발이다. 큰아이들은 270 사이즈 신발을 신는다. 대발이 따로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 클 예정이다. 양말의 크기는 240과 270 사이즈를 따로 산다. 분명 나는 그렇게 산다. 하지만 건조기를 자꾸 돌리다 보면 270도 240과 마찬가지 사이즈가 되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발가락이 툭 튀어나온 것인지 270 사이즈 큰 양말은 하나씩 구멍이 나기 시작했다. 보통 발가락보다 뒤꿈치에 구멍이 먼저 생긴다. 뒤꿈치의 구멍이 더 커서 발가락 구멍은 나중에 발견되는 건지도 모른다. 구멍에 별 신경을 안쓰는 아들들은 엄마가 발견해서 정리를 해 주기 전까지 계속 감자 발 양말을 신는다. 양말도 내가 짝을 지어 정리를 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게 큰 양말들이 사라지면서 작은 양말로 눈을 돌린 복동이와 복이는 작은 양말의 신축성, 탄력성을 이용해 쭈욱 늘려서 신고 다닌다. 그리하여 우리는 급기야 모두 같은 양말을 신고 사는 사태에 직면했던 것이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 없다면 가끔 큰 아이들은 아빠의 양말통을 기웃거린다. 하지만 아빠의 양말은 스포츠 양말, 발가락 양말, 신사용 양말로 우리의 것과는 좀 많이 다르다. 아빠의 양말은 안전지대로 늘 양말 전쟁에서 제외된다. 부러움은 잠시 아이들은 양말을 찾아 오늘도 산을 뒤진다. 한 명은 양말통을 뒤진다. 한 명은 ‘홀로 양말’이 들어있는 캔버스 가방을 뒤진다. 양말 전쟁은 그 사이 뜸 하였다. 빨래 개기가 절찬리에 이루어지며 양말이 짝을 찾아 착착 양말 통에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말 빨래를 좀 게을리하였더니 양말이 안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빨래 개기 70여 일을 하며 양말을 한 번 안 샀으니 양말을 살 때도 되었다.


큰 녀석들은 적당한 양말을 신고 아침의 인사를 하고 아빠 차를 타고 떠났다. 남은 달복이와 복실이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이들의 전쟁은 정말 뺏고 빼앗기는 전쟁이다. 회색 단목 양말을 복실이가 쥐었다. 달복이는 힘으로 빼앗는다. 그것은 내가 목격한 장면이고 달복이 것을 복실이가 빼앗아서 달복이가 도로 빼앗아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복실이는 그것이 자신이 구비해 놓은 양말이라 생각했을 수도 있다. 승리자 달복이는 당당히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양말을 신었다. 그러나 엄마는 말했다. “복실이도 엄마도 양말을 신지 않으면 출발 못해. ” 매일 등교시간에 맞추기 위해 양말 찾기를 해주는 달복이는 오늘만은 양말을 찾아주기 싫다. 먼저 신발을 신고 현관에서 기다린다.  


복실이는 칭얼거리며 짝짝이 양말통을 뒤진다. 엄마는 양말통에서 회색이 아닌 멀쩡히 짝이 지어진 양말을 찾아 복실이에게 건네주었다. 양말을 다 신어야 끝나는 양말 전쟁.


이제 출발이다.


‘양말을 사야겠다’ 생각하고 쿠팡에 들어왔다. 단번에 찾았다. 사이즈가 참 좋다. 250~280mm 라니 모든 사이즈를 커버할 수 있겠다. 건조기에 들어가면 줄어드니 딱 맞춤이다. 쿠팡이가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있었던 것은 설마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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