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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근영 Dec 19. 2024

겨울은 기다림이다


깜깜해지면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눈송이가 금방이라도 온 세상을 덮을 것 같만 같았다. 눈은 사뿐히 도로에 내려앉고, 차 지붕에 내려앉고, 건물 지붕을 덮었다. 하얗고 커다란 눈송이가 퇴근길에도 우아하게 하늘에서 내려왔다. 올 듯 말 듯 찔끔거렸다.  


다행이다.


눈이 쌓이면 집에 차를 끌고 갈 일이 걱정이다. 눈아 녹아라. 간절히 기도했다. 절대 신은 간절한 기도를 들어줄 리 없으나 도로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 찔끔 거리는 눈을 보며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달복이와 복실이는 칙칙한 도로를 보며 눈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절대 엄마가 간절히 기도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얘들아. 복실이는 퇴근차를 타려다 말고 차 위에 살포시 쌓인 눈을 긁어댔다. 어떻게라도 얼음이 된 눈을 느껴보려고 했다.


”밤새 내릴 거야. 집에 가면 엄청 쌓여 있을걸? “


대설주의보가 떴으니 펑펑 내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복실이는 아쉬운 마음을 고이 접고선 차에 탔다. 내일 눈 밭에서 뛰어다닐 생각을 하며 꾹 참았다. 아이들을 모두 태우고 눈이 녹아 물이 되어 살짝 빙판이 되어버린 도로 위로 살살 차를 몰았다. 어둠을 타고 하얀 눈꽃송이가 살포시 날렸다. 집에 도착해서도 복실이는 눈 쌓인 차 앞을 떠나지 못했다. 맨손으로 차량 머리 앞쪽 너른 평원과 같은 보닛에 손을 얹었다. 느껴지니? 복실아? 하얀 눈의 즐거운 감촉이 손을 타고 올라오니?


아침이 되었다.


차 앞 유리창에 붙은 하얀 눈얼음이 녹기를 기다린다. 눈이 아닌 얼음이다. 녹아라 얼음아. 줄줄 흘러내려라. 차 시동을 켜고 핸들을 녹이고 운전석 난방도 켰다. 데워져라, 따뜻해져라. 엔진을 돌렸다. 작은 차 안 공간을 훈훈하게 해 주어라. 따뜻하기를 기다린다. 시동을 걸었으니 곧 따뜻해질 것이 확실하다. 시동이 안 걸리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 한 내 차는 곧 달리며 더 따뜻해질 테다. 시동을 걸어놓고 꼬마 둘을 태우러 집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벌써 나와 차에 타고 있다. 복실이가 투덜거리며 차에 올라탄다.


차에도 마당에도 지붕 위에도 눈이 없다.


어제 내려졌던 대설주의보는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밤 사이 소복하게 쌓일 줄 알았건만 그 눈이 다 어디로 갔을까. 눈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아이는 아쉬운 마음에 산을 둘러보고 하늘을 둘러보고 한숨을 푹 내쉰다. 어젯밤에 보닛 위에 있던 얼어붙은 눈이라도 맨손으로 더 긁어볼 것을. 엄마 말을 믿는 게 아니었다. 또 언제까지 눈을 기다려야 할까. 토요일에 눈이 또 온다는 소식을 오빠에게 전해 듣고선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는 언제 내릴지 모를 눈을 기다린다. 눈이 펑펑 내리기를 바란다. 하늘만 바라본다. 헛된 희망을 준 엄마를 원망도 하며 가끔 오빠에게 날씨 정보도 얻어 듣는다. 기상 예보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가끔 들어맞는 경우도 있다.


눈이 오면 우리 가족은 모두 중무장을 하고 마당으로 나간다. 꼬마 둘은 신나게 뛰어논다. 남은 넷은 눈삽을 든다. 그래서 그런가 꼬마 둘만 눈을 기다린다.


그런데 때로는

확실히 오고야 말 따뜻함을 기다리는 나 보다

기약없이 눈을 기다리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다.


그리고 가끔 나도 눈 오는 풍경을 즐긴다.

눈밭에 뒹구는 걸 즐기지 않을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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