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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주부가 되기로 했다

by 눈항아리 Feb 27. 2025
살림 잘하는 주부 말고
열심히만 하는 주부 말고
생색 내자.
티를 팍팍 내자.
영리한 주부가 되자.


나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고 골골대는 사람이다. 집안일은 더욱 그렇다. ‘아이고 허리야, 다리야.’하면서 아픈 척을 한다. 척이 아니고 진짜 아프다. 입에서 줄줄이 하소연이 나온다. 하도 자주 아프다고 하니 이제는 가족 누구도 꿈쩍을 안 한다. 그 소리가 좋을 리가 없다. 결혼 후 얼마 동안은 그게 먹혔다. 소중한 아내, 소중한 엄마의 건강은 중요하다. 그러나 매번 그러니 그러려니 한다. 허약하고 빌빌대는 주부라는 이미지를 쓰게 되었다.


나는 집안일을 하고선 왜 아프다고 골골댔을까? 정말 아파서? 대개는 나는 일을 많이 했으니 알아달라는 의미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공감능력이 부족한 남자들은 그 의미를 모른다. 나도 모른 걸 누굴 탓할까.


집안일은 반복되는 노동이 많다. 제사, 잔치나 김장과 같은 굵직한 일이 아니더라도 손과 허리를 반복해서 쓰다 보면 몸에 무리가 간다. 손가락은 저릿저릿하다. 손목은 터널증후군. 허리 통증, 발, 다리 저림, 발목 시림 등 출산과 육아와 더불어 동반되는 집안일은 세월의 힘을 더해 주부의 몸상태를 망친다. 아파서 골골댔을까? 그것도 좀 있겠으나 ‘나는 아파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있다. 아픈데도 집안이 반짝반짝 빛나도록(일부) 쓸고, 닦고, 설거지도 했다!’ 라고 외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왜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방법으로 계속 어필한 것일까. 나는 왜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보지 않았을까? ‘열심히’만 아는 미련 곰탱이.


집안일이란 안 한 티는 나도, 일한 티는 잘 안 나는 법이다. 매사 잘 돌아가는 살림살이인데, 집 안에 숨어 있는 우렁각시를 굳이 알 필요가 없다. 심지어 내가 하루 이틀 집을 비우면 남편 덕분에 더욱 즐겁고 화기애애하게 잘 굴러가는 집안이다.


그리하여 나는 방법을 바꿨다. 아프다 하지 말고 집안일했다고 열심히 티를 내기로 했다. 한 포기의 김치를 담글 때도 요란하게, 빨래 개기는 엄청나 보이는 프로젝트로, 이불 개기도 사진을 찍어 가면서. 밥을 할 땐 메인 메뉴에 힘을 준다. 미뤘다 한꺼번에 하기, 가끔 하기, 그리고 일부 아이들에게 전수한다.


열심히 말고 영리하게 일하자. 그리하여 자주 주방을 내어준다. 내가 내어줄 때도 있지만 때론 아이들이 점령하기도 한다.


점심밥을 하며 오랜만에 우리의 얼갈이배춧국을 끓였다. 국거리 2개를 넣고 물을 넣었다. 보글보글 끓어오른다.

“복동아 된장 2숟가락만 넣어줘. ”

“이만큼 넣으면 돼?”

된장 한 숟가락이란 정말 애매하다. 된장 몇 그램이 아니다. 숟가락을 깎아서 사용할 수도, 소복하게 담을 수도 있다. 액체나 가루라면 좀 더 수월하겠으나 된장은 액체인지 고체인지 구분이 안 된다. 고봉으로 올려서 한 술 뜰 수도 있다. 예쁘게 한 숟가락 담기도 힘들다. 형체가 불분명한 된장 같으니. 아이는 적당히 떠서 보여준다.

“이만큼?”

우리의 아름다운 대화 법, 복동이는 숟가락으로 떠서 보여주고 나는 된장 숟가락을 그윽하게 보아준다.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해준다.

“된장 풀어야 하니까, 냄비벽으로 몰아서 숟가락 등으로 풀어줘. ”

“안 보여, 아래쪽에 가라앉았나 봐. ”

“아래쪽까지 잘 저어봐. ”

된장국을 한참 휘저은 복동이에게 또 말했다. “간이 맞는지 맛 좀 봐봐. ” 맛볼 줄 알리가. 나는 장금이로 빙의해 국물을 한 숟가락 떠서 호로록 맛봤다. 복동이에게 된장 반 술을 더 넣으라고 했다. 그리고 소금을 약간 솔솔 뿌려 마법의 된장국을 만들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국물 호로록, 소금 솔솔이 전부다. 주부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아들이 요리를 할 때 주부의 역할이란 간 보기, 맛보기, 엄지 척하기이다.


모든 집안일을 주부가 다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아니면 집안이 안 돌아간다 생각지 말아야 한다. 잘 굴러간다. 즐겁고 흥겹고 재미나다.


12시가 넘은 한밤중에 운동을 하고 돌아온 복이는 출출했다. 복이가 만두를 구웠다. 온 집안에 군만두 향을 입혔다.  유튜브 어느 채널을 시청하더니 체다 치즈를 올렸다. 치즈가 프라이팬에 달라붙었다. 뒤집개로 계속 긁어서 뜯어먹었다. 치즈를 튀겨 먹어도 맛있겠다며 다음 요리를 예고했다. 군만두를 모두 하나씩 먹었다. 맛있었다. 거실과 방까지 뿌연 연기가 공중에 떠다녔다. 추운 겨울밤 창문을 모두 열어 환기를 했다. 설거지는 한가득 쌓였다. 그러나 저녁밥 설거지가 끝나면 나는 주방에 참견을 안 한다. 야식 설거지는 내일로 미룬다.


영리한 주부의 규칙이 하나씩 생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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