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겁게 밥을 하고, 재미있게 청소를 하고, 보람차게 정리를 할 수 없을까? 왜 나는 집안일을 하며 즐기지 못하는 것일까. 살림을 하며 아름다운 사람들도 많던데. 그래 나는 왜 아름답지 못한 걸까? 나는 왜 그저 한 끼 밥으로 배만 채우고 얼른 때가 지나가기만을 바랐을까. 집안일이란 빨리 해치워야 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가끔 혼자서 370밀리리터 캔 맥주 하나를 마신다. 한 캔이 다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 한 모금 한 모금을 얼마나 음미하며 마시던가. 한 잔 술을 마시며 먹어 없애는 안주 또한 얼마나 푸짐한가. 온 가족이 다 먹을 수 있는 어묵탕을 한 냄비 끓이기도 하고, 매콤한 닭발을 보글보글 끓여 온갖 야채를 넣고 모차렐라 치즈도 얹은 다음 혼자 야금야금 먹기도 한다. 한 캔 음주를 할 때면 음식이란 빨리 먹어 없애는 것이 아닌 즐기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매끼 먹는 밥이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나는 왜 가족들 모두에게 빨리 먹고 해치우고 얼른 설거지를 해야 한다고 다그쳤을까. 밥 하기를 야식 만들기와 같이 즐길 수 있다면, 밥 먹기를 야식 먹기와 같이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는 예쁜 그릇에 정갈하게 음식을 차려놓고 음식의 색깔도 보고 맛도 향도 느끼며 식사를 한다. 정말 나는 바빠서 그러지 못했나? 지금은 한 캔 맥주를 홀짝이며 충분히 안주의 맛을 음미하고 있으면서? 그래 가게에 널려 있는 도마를 가져와 과자 부스러기라도 얹어 놓고 먹어야겠다.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술안주 올려 둘 생각을 말고 밥을 예쁘게 먹을 생각을 좀 하자.
평소 아침 밥상을 차리고 시간을 잰다. 20분 만에 먹으라고 재촉한다. 점심 저녁 밥상을 차리고 들고 나며 교대로 먹는다. 아이들이 맛있게 먹었는지 묻기도 전에 식판을 다 걷어 개수대에 넣고 물을 받아 불린다. 밥 먹기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효율이다. 지금 나에게는 경제성, 빠르기가 가장 으뜸 가치다. 나는 일하며 아이들도 돌보는 주부이니까.
과연 효율이 최고인가? 그럴까? 나는 집안일에 너무 메몰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일과 씨름만 하면서 살림 그 이상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왜 사랑하는 가족들은 보지 못한 것일까. 아이들과 남편은 배만 채우면 만족하는 동물이 아니다. 나도 그렇지 않은가.
밥이 다가 아니다.
우리는 많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산다.
밥을 먹으며, 퇴근 후 집안에서, 빨래된 옷을 입으며 우리는 어떤 기분을 누리고 싶은가? 배부름 보다 더 나은 가치가 얼마든지 있다. 가족들도 밥과 더불어 사랑을 원하고, 맛있는 것을 원한다. 행복, 배려, 감사, 건강, 자유, 나눔 등 다양한 가치를 왜 밥상에 올릴 생각을 못했을까.
주부란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사람이다. 예쁜 그릇에 밥을 담아 아름다움을 먹는다. 자연식을 추구하며 건강을 먹는다. 나는 밥상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살림에 어떤 가치를 더할 것인가. 누가 시킨다고 될 것도 아니고 심사숙고해서 첨가해 보자.
음미할 수 있는 무언가를 살림에 더하고 싶다. 퇴근 후 늦은 밤 김치를 담그거나 정리를 하거나 다른 집안일을 해야 한다면 나는 골골거리며 팔다리를 두들기고 눈이 감겨 어쩔 줄 모를 것이 분명하다. 늦은 밤 야식은 하루의 피로를 풀어준다. 같은 시간 같은 살림을 하면서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임이 다르다. 마음먹기의 문제다.
주부가 만드는 가치는 삶의 모습을 바꾼다. 우리는 밥만 먹고사는 사람들이 아니다. 사랑도 먹고, 아름다움도 먹고, 꿈도 먹는다.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너무 집중하느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5년 후, 10년 후에도 나는 매일 당장의 밥을 하느라 시간에 쫓기며 허둥지둥 살아갈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미래를 설계한다. 주부라고 예외가 아니다. 가족의 중심에 선 주부라서 더더욱 중요하다.
삶에 주부의 가치를 입히자.
미래를 설계하자.
밥상에 무얼 올릴까.
그렇게 내 머릿속에는 유려한 나뭇결을 가진 장미목 원목 도마 위에 예쁘게 플레이팅 한 빵 한 조각을 놓고, 우아하게 티타임을 즐기는 모습이 그려졌다. 도마가 있다. 음식이 있다. 차 한 잔도 있다. 조합할 내 마음만 첨가하면 될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만나게 된 책 제인 구달의 <희망의 밥상>은 내게 말했다. 밥상 위에 희망을 놓아라? 나의 밥상은 어떻게 바뀌게 될까.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