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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07. 2024

구멍 난 풍선 포장


그동안은 내 가정이라는 테두리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로 내 안의 끓어오르는 화를 어쩌지 못해 발발거렸다. 이번에는 반대로 밖에서 커다란 폭탄이 날아와 내 마음에 떨어졌다. 피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의 근원이라 생각되는 것을 하나씩 없애다 보면 언젠가 화가 없어질까? 어린 시절의 불안이 화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른 핑계가 아닐까. 잘못을 어린 시절 탓으로 돌리는 비겁하고 나쁜 사람. 그러나 그렇든 아니든 매듭짓고 넘어가야 할 일이란 것은 분명하다.


숨겨지고 억누르기만 했던 감정들을 분출시켜야만 할 것 같다. 밖으로 끄집어내 정체를 파헤쳐 밝혀 보아야 한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진득한 것이 내 안에서 오랜 세월 맴돌며 무의식의 어느 한 귀퉁이에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마음이 허할 때마다 불쑥불쑥 나타나 이곳저곳을 쿡쿡 쑤시고 다닌다.


많이도 잊힌 어린 시절의 나와 만나고, 돌아가신 부모와의 화해, 소원한 부모와의 화해.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슬프고 아픈 기억은 가두고 살아왔다. 진정, 슬픔은 기억에 없다. 아름다운 추억들만 머릿속에 배치해 두고 거짓에 취해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거짓에 취한 것이 아니라 진정 행복하게 살았는지도 모른다.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마음을 꾸미고 치장했는지도 모른다.


구멍나 바람 빠지는 풍선을 메우고 메우고 메우면서 아등바등 살았다. 풍선에 바람이 다 빠지면 쪼그라든 삶이 너무 구차해 보일까 봐 참 모질게도 나를 다그치며 살아왔다. 나마저도 알아채지 못하도록 꽁꽁 감추었다. 그것이 살면서 삐져나올 줄은 생각도 못해봤다. 무의식이란 언제든 분출될 수 있다는 걸 몰랐다.



엄마가 없는 사람도 있다. 사춘기 또한 엄마 없이 지나갔다. 엄마가 없어서 짜증도, 싫은 소리도 없었다. 원망의 감정도 잃었다. 당연 사춘기의 반항은 생각도 못해봤다. 착한 어린이가 되기 위해 나쁜 마음은 상자에 넣어 자물쇠를 채워버렸다. 인지하고 해 버린 일은 아니다. 살기 위한 스스로의 방어기제였을 테다. 나의 방황은 대학 시절 잠시 겪은 것도 같다. 그 시기 나는 감추어진 내 안의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궁금했다. 그래서 다니던 과를 관두고 고심한 끝에 철학과를 들어갔다. 그때가 나의 사춘기였을까. 무엇이 나인지 찾지도 못한 채 보내버렸지만 그 힘으로 지금 내 속을 들쑤시고 다니는 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없었던 나는 내 아이의 사춘기가 낯설다. 남자아이는 아빠에게 상의나 하지, 딸아이의 사춘기와도 같은 히스테리는 감당하기 어렵다.


짜증 한 번 부려보지 못하고 착함으로 무장했던 단단한 마음. 닳고 닳아 맨들맨들해진 마음은 참으로 무정하고 냉정하고 돌덩이 같다. 개그 프로를 봐도 웃지 못하는 공감이 턱없이 부족한 나.


희로애락에 너무 많이 노출이 되면 사람이 무뎌진다. 좋은 말로 순화하면 무던해진다. 말이란 이렇게 쉽게 휙휙 바꿀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못할 일이란 없다. 못난 나를 감추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다. 이런 가짜 같은 모습으로 그래도 그럴듯하게 살고 있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메마른 감정도 살아 있다고 신고를 하는지 가끔 폭발을 한다. 맞다. 폭발은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아주 좋은 징조다.



내 모습이 본래 무엇이었는지 모른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호불호를 알 수 없는 허상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남아있는 알량한 자존심 하나 부여잡고 40 평생을 살아왔다. 이런 허깨비 같은 존재. 나 같은 존재감을 만들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사랑을 듬뿍 줘서 키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  추악한 모습도 포장을 해 거짓은 아니지만 예쁘게 만들어 저장을 할 수 있다. 왜곡된 기억이 쌓이면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저 오래된 희미한 기억을 갖고 나는 행복하다는 두루뭉술한 단어에 의존해 그저 살아간다. 행복이란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거짓으로 가득한 인생


잘 포장된 거짓 삶


착한 딸로 나는 꽤 사랑받으며 자랐다. 그렇게 포장하면서 견뎌왔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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