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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09. 2024

아빠 사랑해요

오늘 어버이날인데 뭐 없어? 1등으로 하교한 달복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있지”


가방을 열더니 주섬주섬 뭘 꺼낸다.


“학교에서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어. 쓰라고 해서 짜증 났어.”


아들의 진심 어린 말을 들으며 편지를 받았다. 아주 현실적인 감사를 한다.


엄마 저에게 용돈과 사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 제가 심심하지 않게 게임기를 사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 사랑과 용돈 중 용돈이 최고다. 올해에는 엄마를 먼저 언급해 주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지난해 편지에는 엄마가 없었다. 게임하고 같이 놀아주는 아빠가 최고였다.


4학년이 되며 용돈을 올려준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다.  




큰 아이 둘은 어린이날 받은 용돈을 들고나가 탐험과도 같은 첫 버스 타기를 했다. 버스 타고 시내 서점에 갔다. 소년들은 탐험 끝에 책 네 권을 서점 이름이 찍힌 봉다리에 넣어 달랑달랑 들고 왔다. 몇 번 버스를 타야 했다며 저희들끼리 활기가 넘친다.


지난 내 생일도 그냥 넘어가버려 얼마나 속이 상했던가. 기념일을 잘 챙기지는 않지만 그날 하루 기분이 많이도 저조했다. 그래서 선물을 주는 것도 연습이라며 부러 보냈다. 커서도 부모의 생일을 잊지 말라는 무언의 교육. 참 이기적인 엄마다. 제 아버지의 생신은 신경도 안 쓰면서.


그러나 아들이 건네주는 책 선물보다 소년들의 첫 버스 타기에 더 관심이 가는 엄마다.


나는 책을 좋아한다. 그래도 책 보다 아들이 더 좋은가보다.





어버이날 아침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어버이날을 축하합니다! 오늘 재미나게 보내세요. 그리고 죄송해요. “


언제 기분이 상했었냐는 듯 평소 목소리 그대로 이런저런 말씀을 한다.


일을 하다 저녁 시간에 또 전화를 하니 이리저리 시골장터 구경도 다니고 드라이브하고 맛난 것도 드셨단다. 시내 나오셨다길래 들러 가시라고 했다.


10년  커피숍을 하면서도 아버지가 오신 건 열 손가락이 안 꼽힌다.


노랑 봉지 믹스커피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시럽을 조금 넣은 따뜻한 라떼를, 어머니는 수제 유자차를 내 드렸다. 함께 오신 친척어르신 내외분도 나란히 앉으셨다. 남편과 내가 다 만든거라니 부른 배로 케이크 한 조각을 서로 미루며 다 나눠 드신다. 목까지 음식이 찼다고 하시며 다 드신다. 평소처럼 말씀은 없어도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인다. 커피를 드시는 내내 빙긋한 미소가 입 가에 잔잔하다.




지은 죄가 있어 당분간 전화통 불이 나게 아버지에게 전화를 해야 한다. 아이들 키우면서 눈치가 백 단이 된 줄 알았는데 아버지 기분 살피는 데는 눈치코치고 뭐고 없다. 기분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다.


휴~~


사실 나는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다. 아버지는 무슨. 그리고 아빠는 어머니가 안 계실 때면 수다쟁이가 된다. 아빠랑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 못 간다고 투정 부리지 말고 전화라도 자주 드리자.


아빠 건강하세요. 어머니도 건강하세요.
죄송해요. 예쁘게 사니까 좀 봐주세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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