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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화수집 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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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보나 May 13. 2024

화는 내 마음속에 있었다



한 번의 대폭발로 평화가 찾아왔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중학생 두 아이는 맘 편히 놀러 다닌다. 피시방에 갈 적에는 약속을 잡는다. 사회생활에서 약속은 중요하다. 그럼 그럼. 밥을 먹고 간다는 점도 칭찬할 일이다. 주말이면 형은 아우를 데리고 간다. 5 인큐를 하려면 한 명이 모자라단다. 형제애를 돈독하게 만들어주는 피시방이다.


복이는 편의점 음식을 밥 먹듯 한다. 모닝똥, 이브닝 똥에 이어 하교 후 틈새 똥까지 챙겨 싼다. 뱃속 염증이 심히 의심되지만 당최 채소란 먹지 않고 과일도 가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데코레이션이라고 식판에 놔주는 것도 한두 번이다. 이제는 약이라고 하며 야채, 과일 하나씩은 꼭 먹으라고 강조를 한다. 자전거는 늘 안전 모자 없이, 밤에는 불 없이 타고 다닌다. 요즘은 체인 채우는 법을 배워 손에 기름때를 묻혀 다닌다. 장갑을 끼라고 잔소리를 몇 번 하고 말았다. 기름 때는 잘 씻어지지 않으니 자신도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달복이는 여느 때와 같이 늘 밥을 안 먹는다. 이제는 입에 넣어주면 자신이 먹기 전에 엄마가 넣어주니 그런 거라며 엄마의 손을 가로막는다. 스스로 먹는 아이가 되어가는 4학년 꼬마. 밥이 싫고 고기가 싫을 뿐이다.


밥반찬으로 과일을 주면 한 그릇 금방 뚝딱이다. 과일을 가까이 두면 밥은 안 먹고 과일로 배를 채운다. 과일을 멀리 두면 밥을 작은 숟가락으로 퍼먹고 일어나서 과일을 집어 먹는다. 과일을 많이 먹으니 못 챙겨 먹일 때면 변비가 온다. 비싼 과일을 사 먹이려면 엄마가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과일 가격과 아이들 입맛은 무관하다. 채소, 과일 값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걸 아이가 알 턱이 있나. 하지만 과일이 없어도 괜찮다. 과일이 없으면 말에 밥을 말아먹는다. 또는 상상에 밥을 말아먹는다.


밥상에 실험실을 차리는 날도 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숟가락에 밥을 푸더니 밥그릇에 숟가락을 얹어 놓았다. 밥그릇 위쪽 동그라미 모서리에 한 곳에 숟가락을 올렸다. 양팔 저울이 된 숟가락이 기우뚱거린다. 밥이 든 숟가락 쪽이 무거울까 손잡이가 무거울까? 아슬아슬 무게 중심을 잡아 균형을 잡는 데 성공한 녀석은 환호성을 지른다.



복실이는 늘 생떼를 부린다. 늘 씻기 싫어한다. 천성이 어디 가겠는가. 아침에는 늘 기분이 저조하다. 아침에 기운이 달리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저녁형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밤에는 보통 멀쩡하다. 잠 자기를 싫어한다. 잠투정도 많이 하던 아이였는데 밤에 멀쩡한 게 어딘가.




요 며칠 격변과도 같은 마음의 동요를 겪은 이후 얼굴에 여드름이 한가득 올라왔고 흰머리가 늘어난 것 같다. 외부에서 무슨 일이 딱히 벌어진 것은 아니지만 내부에서는 폭풍이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간 것 같다.


커다란 폭풍 후 아이들이 일으키는 작은 바람은 살랑살랑 상쾌한 바람으로 느껴진다. 달라진 것 없는 날들, 평화로운 일상 속 잔소리 대잔치만이 계속되고 있다.



큰 화도 내 보아야 하는 걸까.
큰 화를 겪어봐야 작은 화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



화가 날 순간이 그저 헛웃음 한 번과 잔소리로 대체된 것 같다. 신기하다. 1년 365일을 꼬박 화를 수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내 화의 총합은 그리 많은 것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깊은 화산 속 마그마방이 비워졌는지 아닌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커다란 분화가 있었으니 당분간 분화가 없기를 바랄 뿐인가. 그리고 화의 벌건 기운이 차곡차곡 쌓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분출시키자.


무엇으로? 당분간은 잔소리로. 그리고 글로.


화나는 상황은 매사 널려있다. 외부의 어떤 상황 때문에 화가 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 붙잡고 집어 들어 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화는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화를 내고 안 내고는 내 마음에 달려 있다. 그러니 지금 내 상황을 탓하지 말자. 상황이 변한다고 화가 덜어지지 않는다. 화를 덜려면 스스로의 마음속에서 덜어내야 한다. 그것은 남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나 스스로 해야 한다.


내 마음을 비우자. 화는 내 마음속에 있었다.


 

그런데 마음은 대체 어떻게 비우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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