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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화수집 30화

마음먹기에 달렸다

by 눈항아리


나는 엄마이고, 아내이고, 딸이자, 며느리, 누나, 동생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갈등은 내면의 화를 불러일으킨다. 화는 상대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 마음의 크기, 집착에 따라온다. 불같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르고 엉엉 울기도 한다. 그러나 내 마음의 상태에 따라 허허 웃으며 너그럽게 넘어가기도 한다.


관계에서 오는 갈등이 화를 불러오는 것이 아닌 내 마음이 화를 불러온다. 화는 내 마음속에 있으니.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러온 ‘화신’이라는 녀석도 그래서 늘 내 마음속에서 나갈지 말지 기웃거리고 있었다. 어디 안 간다. 오늘의 화가 지나가면 내일의 화가 온다. 화수집을 하며 같은 일에 화를 내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또 다른 모양을 하고 다음 날 나타났다.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녀석인 척하면 못 알아볼 줄 알고? 이제는 그 녀석이 그 녀석인 줄 다 안다. 화수집에 도사가 됐다.


화수집을 하며 알아챈 가장 큰 화는 나에 대한 실망 때문이었다. 나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기대를 저버렸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느껴졌다. 아버지의 생신을 잊었을 때 이전의 화들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 느껴졌다.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무관심으로 일관한, 나이 든 부모님을 챙기지 않는 어리석은 나에게 화가 났다.


그 후로 챙기지도 않던 효라는 말이 얼마나 눈에 들어오던지. 도리를 다하지 않는 딸자식에게 얼마나 원망이 클 것인가. 그러나 아버지는 고요한 얼굴로 말없이 나를 수용해 주셨다. 늙은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안아주고 배려해 주셨다. 어른이 된 나보다 늘 더 어른인 아버지.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화만 가득한 줄 알았다. 1년 지내며 365쪽 책을 쓰면 좋겠다 싶었다. 그러나 화수집을 하는 순간을 제외한 수많은 순간들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기쁨, 즐거움, 행복, 사랑, 고요, 평화, 슬픔, 연민, 애처로움, 혼란, 환호.... 헤아릴 수 없는 이름을 가진 마음들이 커다란 세계 속에 둥둥 떠다녔다.


마음이라는 세계 속에서 살고 있는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한 것. 그것이 ‘화’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의 마음이다.


화만이 내 마음이 아니었다. 그즈음이었을 거다. 마음속에 피어나는 작은 기쁨들을 그래서 같이 수집하기 시작했다. <설탕 한 스푼>은 그렇게 화수집과 같이 쓰였다. 화가 있는 만큼 남기고 싶은 기쁨과 즐거움도 내 안에 있었다. 작정하고 수집하면 훨씬 더 크기가 클지도 모른다. 그건 내 마음에 달려있다는 걸 안다.



온 우주에서 가장 큰 것이 마음이라는 세상이라고 한다.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내 마음의 크기를 크고 작게 만드는 것도
마음속 여러 이름을 가진
감정의 크기를 정하는 것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만드는 것도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화와 마주하게 된다면 그 누구에게든 변명의 기회를 주자. 귀한 복을 타고나신 어느 작가님이 말씀해 주셨다. ’ 그럴 수 있지. 무슨 일이 있겠지.‘ 잠시 마음을 멈추고 생각하자.


그럴 수 있지.
무슨 일이 있겠지.


기다리고 들어주고 배려하자. 상대에게뿐만 아니라 나에게 화가 날 때에도 괜찮다고 위로하고 변명의 기회를 주자.


아버지의 팔순을 잊었을 때는 나에 대한 용서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너무 쉽게 용서해 버린 것 같아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이웃님들이 용기를 주고 다독여 주었다.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르는 변명. 나에게도 그것을 허락해 주자.


가만히 생각해 보면 화는 나에게 나는 화가 대부분인 것도 같다. 그런 상황을 만든 나. 나에게서 비롯된 것을 남 탓으로 돌려 버리고 회피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늘 화를 내고 반성을 했던 것일까.


등교 준비가 늦어지면 아이들 탓을 했다. 조금 일찍 깨우면 될 것을 글을 쓴다고 아이들 깨우는 시간을 최대한으로 미뤄서 준비 시간은 최소한으로 타이트하게 잡았다. 그러니 정신이 없을 수밖에.


그러니 남에게 화를 돌려 화낸 후 후회하지 말자. 남을 탓하지 말자. 나로부터 비롯된 화이니 내가 감당하자. 그리고 빠르게 용서하자. 괜찮아. 괜찮아.




<화수집의 성과>


1. 아이들에게 화를 내는 나를 보며 반성하고 양육태도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2. 가장 큰 성과는 내 마음속 화의 존재이다.


3. 하나 더 꼽자면 무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어린 나와 부모와의 연결을 확인한 것이다. 끈끈하게 연결된 고리. 그 길을 찾아 내 심연으로 더 들어가 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커다란 성과다.


화수집을 마지막으로 어머니와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심령술사는 아니니 그저 혼자만의 넋두리에 불과하지만 쏟아내고 나면 후련할 것 같다.



화는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다. 화는 언제나 다른 모습을 하고 내 앞에 나타난다. 그 화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는 내 마음에 달려있다.


고난과 고통도 언제나 다가온다. 그 모습만 바꿀 뿐이다. 고통의 순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도 내 마음에 달려있다. 용기를 가지고 아픔의 순간으로 뛰어들기로 했다. 그것이 고통을 가로지르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고 한다. 헤세 님이 가르쳐 주셨다.


나는 <화수집>을 통해 고운 목소리를 가지고 싶었다. 목소리도 내 마음에서 우러난다. 마음을 곱게 가지자.





그동안 <화수집>을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365쪽을 채우고 싶었으나 30회가 마지막이라 많이 아쉽습니다. 더욱 열심히 삶에 대해 고민하며 치열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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