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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온도

에세이

by 청현 김미숙 Feb 2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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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차가운 바람 못지않게 광화문에 설치된 나눔의 온도도 점점 떨어진다. 광화문에 격한 민심의 소용돌이 속에 나눔의 온도는 길을 잃고 영하로 뚝뚝 떨어져 가고, 묵묵히 내려다보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은 일그러져 간다. 열심히 모인 시위 군중의 함성 열기는 펄펄 끓고 있는데 왜 이렇게 양쪽 갈래머리가 되어 목청껏 외치는 상황까지 왔을까? 세계의 흐름의 경쟁 속에서  따라가기 바쁜 이 시기에 서로를 헐뜯으며 확성기 소리를 이 추운 하늘에 보내는 사람들을 보며 한숨과 걱정만 가득한 마음이다. 역사는 이 격동의 시기를 어떻게 기록할까?

착잡한 마음으로 에스킬레이터를 내리는데 웬 젊은 여자가 쪼그리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다. 지나가던 사람들은 힐끔힐끔 쳐다만 볼 뿐 아무도 그녀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쳐다본다는 것만 관심을 표할 뿐 냉랭한 눈으로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주저하며 나도 지나치며 걷다 뒤돌아보니 여전히 차가운 돌바닥에 주저앉아있다. 나는 다시 돌아가 도와드릴 일이 없는지 물어본다. 처음엔 술을 마셨나 생각했는데 다행히 음주는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갑자기 어지러워 일어날 수가 없다고 간신히 말한다. 시멘트바닥이 차가워 부축하며 근처 의자에 가기 위해 간신히 일으켜 걸었으나 몇 발자국 걷다가 다시 휘청거리며 주저앉는다. 퇴근길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우리의 행동을 구경거리처럼 보고 있다. 할 수 없이 119에 응급신고를 했다. 그녀의 집에 연락하려고 연락처를 물어보니 지방에서 올라와 도와줄 사람이 없다고 한다. 119 직원은 정확한 위치를 물어보고 곧 도착하겠다고 말해 안심이 되었다.

그런데 전화를 끊고 나자 바로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무슨 일이 있는지 119에 신고가 접수되었다고 연락 왔다고 걱정스럽고 놀란 목소리로 묻는다. 잠시 당황했으나 곧 사태를 알 수 있었다. 내가 신고를 하니 우리 가족들 모두에게 나의 신고상황을 알려준 것이다. 처음으로 119에 신고했는데 아마 신고하면 가족에게 연락이 바로 가나보다. 이번 사건을 지켜보며 우리를 지켜주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었구나 하고 잠시 안심이 된다.

여자를 다시 간신히 부축하여 의자에  앉아 있는데 한 여자가 다가와 그녀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밥은 언제 먹었는지, 이런 일이 언제 또 있었는지, 하며 묻는 그녀의 질문이 나와는 다른 전문적인 질문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일에 종사하는지 물어보니 간호사로 있다고 하며 구급대가 올 때까지 같이 있어주겠다고 말한다. 갑자기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반응에 우울했던 마음에 온기가 돌아온다.

구급대원은 도착하여 혈압등 기초검사와 질문을 몇 가지 물어보더니 병원으로 이송해야겠다고 말한다. 갑자기 걱정이 되었다. 옆에 돌봐줄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 따라갈 수도 없고, 구급대원에게 경제적인 문제이건 뭔가 도움이 필요하면 바로 연락을 해 돌라고 말하며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돌아선다.

고맙다고 간신히 말하며 떠나는 그녀를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나도 언제 어디서 갑자기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할 때 지나가던 사람이 도와줄까? 요즘은 어떤 사건에라도 휘말리기 싫어서 알고도 지나친다는 딸의 말에 씁쓸함을 느낀다. 옷이라도 잘 입고 있으면 도와줄까 하고 헛웃음을 웃어본다.

해외여행할 때도 한번 그런 경험이 있었다.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에서 식사하는데 한 중년여자가 음식을 뜨다 갑자기 쓰러졌다. 외국 여행지라 그런지 아무도 다가가지 않아 나는 너무 놀라 호텔 매니저에게 빨리 응급차를 불러 돌라고 요청했다. 우리 일행이 아니어서 수소문해서 가이드가 오기까지도 30분 정도 걸린 것 같다. 구급차도 한참뒤에 도착하여 실려가는 그녀의 얼굴이 반절은 뒤틀린 것 같았다. 여행을 자주 다니는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나이 들어 혼자 여행하면 나도 그럴 상황에 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가끔 매스컴에서 쓰러진 사람을 인공호흡으로 살리는 시민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방송을 볼 때마다 아직도 훈훈한 사회구나 했던 생각이, 이번 사건을 겪으며 무심한 사랍들의 눈초리 속에서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사람들의 마음을 본 것 같았다.

유난히 추운 올 겨울은 왜 이리 길기만 할까?  사회가 따뜻해야 주변의 시선도 부드러워질 텐데, 앞으로 나의 상황이 될지도 모르는 예기치 않은 미래에 두려운 생각이 든다. 아울러 빨리 사람의 마음에도 봄의 온기가 가득 차올라 나눔의 온도가 쑥쑥 올라가기를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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