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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May 06. 2024

하필 외삼촌 집에서 지도를 그리다

세계지도를

시린 손을 호호 불던 어느 겨울날, 둘째 외삼촌의 대학 졸업식에 가기 위해 엄마 나 시외버스에 올랐다. 외가 식구들은 대부분 같은 지역에서 살았다. 평소 같았으면 외할머니댁에 갔겠지만 친척들이 많아서 우리는 둘째 외삼촌의 자취방에서 이틀을 묵게 되었다.


자취방에는 막내 외삼촌도 함께 살고 있었다. 3남 4녀 중 막내인 외삼촌은 성격이 활발하고 재밌었다. 조카들을 예뻐해서 내게 과자도 잘 사 고, 분홍색 손뜨개 벙어리장갑도 사 주었다. 그런데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장난을 잘 친다는 이었다.


"정아는 돼지코."


나는 그 말이 그렇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데 엄마는 표정이 별로 안 좋았다.

"정아가 뭐가 돼지코니, 너 참."

거기까진 좋았는데 한 술 더 떴다.

"코드를 꽂아도 되겠어." 

하며 라디오 코드를 내 코에 꽂으려는 시늉을 했다. 나는 식겁했다.

"전기 통하면 어떡해요."

그 말에 외삼촌은

"여기는 전기 통하는 데가 아냐, 봐봐."

하며 자신의 코에 코드를 대며 안심을 시켰다.

엄마와 열 살이 훨씬 넘게 차이가 나니 이십 대 초반. 외삼촌도 아직 어리다면 어린 나이기도 했다.


저녁을 먹고 모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졸업식에 가려면 일찍 일어나야 했다.

천지도 모르고 잠을 자고 있는데 엄마가 나를 깨우셨다. 내가 요에 실수를 한 것이었다.

막내 외삼촌이 부스스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고 마, 정아 아직도 오줌 싸?"

둘째 외삼촌도 한마디 다.

"날 새면 옆집 가서 소금 얻어 와야 되겠네."

미안해하는 엄마와 달리 나는 무덤덤했다. 오줌을 싸니까 아이지요 말입니다.

엄마는 이 상황을 얼른 종결시키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이셨다.


다음 날 우리는 둘째 외삼촌 졸업식에 갔다. 외할머니와 친척들을 만나서 졸업식도 보고 추운 캠퍼스를 누비며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는 외할머니댁에 가서 늦게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와서 곯아떨어졌다.


나는 목욕탕인지 수영장인지 모를, 바닥에 물이 자박자박한 곳에 앉아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다. 바닥이 차가워서 이제 그만겠다 어 일어나다가 눈을 떴다. 꿈이었다. 그런데 가 이상했다.

'이 차가운 느낌은 어째서 도시 사라지지 않는 거지?'

아뿔싸, 눈앞이 캄캄했다. 가 또?


어둠 속에서 나는 홀로 고뇌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이제 어떤 수모를 당할 것인가. 차라리 집에 갈 때까지 자는 척을 해 버릴까, 아니면 물을 한 컵 먹는 척하고 쏟아부어야 하나. 하지만 시간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 뽀송한 목화솜 속으로 노란 액체가 널리 널리 번져 나가는 것만은 막아야 했다.

엄마를 흔들었다. 엄마는 잠결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요를 더듬어 보고탄식하셨다.

"아이구야아아..."

오늘에 비하면 어제는 개미 눈물이었다. 그러게 왜 나는 꿈속에서 물장난을 쳤을까. 저번에도 물장난 치다가 실수를 했건만...


엄마는 옷을 갈아입히고 불을 덮어주고 요를 들고 밖으로 나가셨다. 두툼해서 물기를 야무지게 빨아들인 목화솜 요를 엄마는 어떻게 뒤처리하실는지, 그것은 온전히 엄마의 량에 달려 있었다.


불을 끄고 나가셨지만 부엌에서 불빛이 새어 들어오고 외삼촌들은 잠이 다 깨어 버렸다. 둘째 외삼촌은 그래도 말이라도 다. 

"오늘은 한강을 만들었구나."

그런데 막내 외삼촌은 말이 없었다. 공기가 천근 같았다. 차라리 무슨 말이라도 하면 막히지 않을 텐데, 코드를 들고 오든, 소금을 한 됫박 얻어 오라 하든 놀리기라도 하면 달게 받겠는데 침묵이 더 무웠다. '말없이 내보내려나?' 화를 내도 이상할 것 없었다. 나는 이러고 나서 집에 가면 그만이지만 그 후유증은 고스란히 외삼촌들이 떠안아야 다.


엄마가 들어오셨다. 막내 외삼촌은 그제야 내가 안 들리도록 나지막이 말했다.

"정아 매일매일 이러면, 기저귀를 다시 채워야 하는 거 아니에요?" 걱정스레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기저귀를 졸업한 나에청천벽력이었다. 여섯 살인데 기저귀라니요, 어찌 그런 말을 하시나요,

님하, 그 말만은 하지 마오......

다음날 우리는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그날 이후 엄마는 나를 훈련시키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저녁에는 물을 많이 못 마시게 하시고, 자기 전에 꼭 소변을 누이셨다. 자는 중에 수시로 엄마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뒤척이면 깨워 소변을 보게 하셨다. 소변이 차 있으면 숙면을 못해 뒤척거리는 수가 있다.


나는 엄마의 그 부단한 노력으로, 그 후에 비록 집에서는 실수를 아주 가끔 했을지언정 외할머니댁, 외삼촌댁, 이모댁에서 실수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엄마는 내가 실수를 해도 주눅이 들까 봐 결코 야단을 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엄마 스스로에게 원인을 돌리셨다. '내가 짜게 먹여서, 내가 소변 누이는 걸 잊어서...'

나는 엄마의 그런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엄마의 사랑임을. 


'엄마,

우린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힘내세요,

정아를 믿어요.

고마워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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