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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로 그 아이 Sep 03. 2024

가을바람 들어오게



처서 지나 귀뚜리 울어 젖히니

문득 가을바람 그립다



문을 꼭 닫아야 에너지가 절약된다고

문이란 문 모두 빗장 걸어 두던 여름

절기는 계절을 앞서 가도

에어컨은 아직 열일 



가을바람 들어오게

문 빼꼼히 열어 둔다



그 사람 그랬다

에너지 뺏어 갔다

거침없는 언변에

물 먹은 솜이 된 날

마음의 빗장 질러 버렸다



수평이 기울면 좋은 사이 아니지

상대가 가벼워지고

그 무게 내가 받는다면

더는 견딜 수 없다며

굳은 결심 했는데



"음 날 때 언제든지 연락해요."



귀뚜리가 실 온

억지로 문을 열지 않고 기다리는 

가을바람 같은 한 마디



빗장이 헐거워지

마음의 문

빼꼼히 어 두고 싶어



처서가 막 지난

어느 이른 가을날








올해는 처서가 8월 22일이었다. 글 쓰는 지금은 9월 2일 가을이지만, 여름 끝자락과 가을의 시작이 만나는 처서 무렵의 일상을 시로 옮겨 보았다.


처서(處暑)는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라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고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낮에는 여전히 더워서 에어컨을 틀기는 마찬가지이다.


여름내 불볕더위에 시달리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신묘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처서가 온 줄 알고 그에 맞게 기후 변화가 나타날까. 선득한 새벽 기운에 홑이불을 끌어다 덮으며, 한편으론 떠나가는 계절이 아쉬운 마음도 느껴진다.


여름 내내 에어컨을 틀면서 창문이며 방문이며 꼭꼭 닫아 두었다.

나는 폐쇄된 것을 싫어한다. 폐쇄공포증이 좀 있다. 전기세 아끼라고 문 닫으라고 하는 사람은 대개 주부이지만 우리집은 애들이 내게 잔소리를 한다. 나는 문이 꼭 닫혀있는 것보다 1센티라도 열려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기분상 그렇다.


실내에선 여전히 에어컨이 돌아가도 밖에는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니 문을 살짝 열어 두어야  명분 생겼다.


인간관계에서도 손절, 유통기한이란 말이 흔하게 사용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도저히 맞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관계를 꽉 닫아버리지 말고, 살짝 여지를 열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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