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250점에서 아이엘츠 6.0 취득까지 (1)
어느 날 퇴근 후, 와이프가 토익 시험을 볼 거라는 얘기를 하며 저에게도 시험을 볼 생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나 토익 시험 칠 건데 오빠도 같이 칠래?"
"..."
"어때~ 오빠도 한 번 해봐 ㅋㅋ"
"어렵지 않아?"
"처음엔 다 그런 거지~ 우선 한 번 해봐 ㅎ"
와이프는 초등 교사인데 지역 이동을 위해서는 토익 점수가 필요했었습니다. 요구사항이 700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와이프는 교대에서도 영어교육과를 전공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간간히 영어를 접했던 터라 시험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아 보였습니다. 반면에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근 10년 동안 영어 시험에 관심조차 없었는데, 갑자기 말로만 듣던 토익을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집안 형편이 어려워 대학을 가지 못하고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며 집에 생활비를 보탰습니다. 같은 연장선 상으로 군 복무도 병역 특례를 받았고, 특례를 마친 후에는 그 경력으로 대기업 생산직에 경력으로 입사했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온 터라 일 이외에는 눈돌릴 틈이 없었기에 영어 시험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 나름 영어경시대회 우수상도 받고 했는데, 제 실력을 시험해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응 그래 어떻게 접수하는 건데?"
"여기서 이렇게..."
그래도 우리 부서(생산직)에서는 제가 영어를 좀 하는 편인데... 가끔 외국인 고객과도 비록 바디랭귀지를 섞지만 업무를 하며 잡담도 하고... 회사에서는 미국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고 나는 공정관리 담당자였기에 종종 미국인 감독관 또는 작업자와 대화를 나눠야만 했고요. 큰 부담은 없었습니다. ‘난 어차피 한국인이고 그들은 미국인이니까... 다 알지 서로 다른 말 쓰는 거...’ 이게 저의 자신감의 발로였나 봅니다.
"헤이 랜티스, 썸띵 드링크?"
Mr. 랜티스: "워러.."
"풋, 백.."
Mr. 알란: "Lantis, Use your feet. Step on it, and go in backward... Blabla..."
시험 당일 집 근처 대학교로 향했습니다(집이 대학교 앞이었어요). 좀 일찍 도착했는데 강의실이 좀 추웠듯 제 마음에도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책상, 의자, 필기구 같은 모든 것이 딱딱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시험 감독하시는 분이 들어오시고 문제지를 나눠주시고, 리스닝 시작을 알리는 방송과 함께 스피커에서는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가 흘러나왔어요. 저는 단어 하나라도 들으려고 노력했지만 그 정도로는 문제를 풀기 거의 불가능했죠. 그렇게 리스닝 방송이 끝나고 리딩 파트를 풀기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눈앞이 캄캄해졌어요. 정말 모르는 문제는 추억의 연필 굴리기로 찍기도 했습니다. ㅎㅎ 그렇게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고 시험지는 얼마 읽지도 못했는데 시간은 절반을 훌쩍 넘긴 상태였어요. 문제집이라도 한 권 풀고 올걸 ㅠㅠ, 영어가 나한테 안 맞는 건가 등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었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시험을 치르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결과는 뭐... 예상했지만, 영~ 별로였어요~ 250 몇 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신발 사이즈보다는 높을 줄 알았는데.. ㅎㅎ 남들한테 토익시험 쳤다고 얘기했다가는 찍어도 그만큼은 나오겠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았어요. 그 이후 영어는 한동안 저에게 잊혔습니다. 한 편으로는 자동번역기가 나오길 기다려보자 ㅋㅋ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저의 영어시험 첫 경험이었어요. 지금은 BBC 등 해외 언론을 시청하며 중동전쟁과 우크라이나전쟁 그리고 미국의 금리정책 등에 대해 정보를 접하고 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