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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Jangs May 12. 2024

육 남매 중 첫째 딸의 이야기 #3

"니네 엄마가 다 낳으신거니"

라때는ㅋㅋ 학교에서 새학기가 시작되면 항상 호구조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의 학력부터 가족관계까지 모두 적어서 담임선생님 께 제출해야했던 그 시절에 나는 항상 '칸'이 모자랐다.

엄마 한칸 아빠 한칸 그리고 형제자매 세칸

회색빛 종이 마지막에 자리잡고 있는 가족관계 정보 기입란. 그 표 안에 칸은 넉넉히 세 칸이 준비되어 있었고 나는 늘 그 밑으로 칸을 더 그려넣어서 동생들의 정보를 기입해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들과 '다른'것이 '틀린'것으로 인식되는 사춘기 시절 그 질풍노도의 시기, 중 2때 담임선생님이 나를 부르셔서 물으셨던 ,

"이거(동생정보를 가리키며)... 너네 엄마가 다 낳으신거니?"

 그 날 이후로 그 선생님은, 성함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지독하게 골치아픈 학생을 상대해야만 했다.

내 사춘기는 필연적으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 집에는 항상 아기가 있었을거고 엄마는 늘 바빴을텐데 솔직히 나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남들은 내가 동생들을 다 키웠을 것이라 당연히 생각하지만 정작 나는 동생들 기저귀 한번 갈아준 적이 없다.

첫째가 잘 되어야 줄줄이 잘 된다는 아버지의 지론 덕분에 나는 엄청난 지원과 관심을 받았었고 나름 영특했던지라 내가 배우고 싶다는건 뭐든지 다 해주셨기에 초등학교때에는 한창 학원 다니느라 바빴고, 중학교 들어와서는 저렇듯 사춘기가 시작되어서 친구들과 밖으로 나돌기에 바빴기에 나는 우리 집안에서 무언가 그때를 기억하면 떠오르는 것, 추억할만한 것이 없다.


늘 그나마 둘째동생이랑만 이야기를 했었다. 둘째도 나와 다섯살 터울이라 (그 뒤로는 다 한두살 터울인데 나와 둘째 사이에 한번의 유산이 있었다) 그 밑으로는 다 너무 어려서 관계가 없었다. 이렇듯 동생들을 봐주지도 상대하지도 않았기에 자라는 동안 내내 동생들과 나는 서로 잘 몰랐다.

(그러니 이렇게 잘 지내는 것은 전적으로 엄마의 역할이 아주 크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 비로소 동생들을 만나고 차차 알게 되었는데 크는 동안은 정말 바람 잘 날 없었고 다들 뭐랄까.. 보통이 아닌 이상한 애들 같았는데 그 비바람을 다 맞고 지난 후 애들이 다 크고 이제와서 보니 우리 애들이 다들 참 괜찮다. 

대가족의 특징이랄까

1. 사회성이 특출나다

2. 눈치가 빠르고 위기대처능력이 있다

3. 사람이 만만하지 않지만 어렵지도 않다

4. 아래 위로 열살 정도씩은 가뿐하게 어울린다

5. 여유가 있다

이런 기본값이 있어서 어디 나가면 다들 항상 "요즘 애들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는단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공감을 잘 한다. 왜냐면 이해를 하니까. 남들보다 이해심이 많아서가 아니라 경험적으로 아니까 이해가 되니까 일거다. 왠만한 일은 아 그렇구나 라고 납득이 되고 그것도 아니면 순응이라도 하니까.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 라든지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어!'라든지 뭐 그런 어떤 상식선이 굉장히 넓은거다.

바꿔 말하면, 상식 밖의 일을 많이 겪어서 이해의 폭이 넓어진거지. 아 이런 일도 일어나는구나 그렇다면 이것도 가능하겠구나

그래서 순진할 수 없었던 어린이들은 똑똑하고 이해심이 많은 어른이 되었으니 세상에는 아주 나쁜것도 아주 좋기만 한것도 없는 것이다.


작년 독립기념일의 폭죽 like 박 터지는 우리집
가족단톡방에서 자주 쓰이는 무도짤
둘째아들이 만든 만국기
둘째동생이랑 갔던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
단톡방 지분 8할인 우리 조카
내 생일선물로 형제들이 돈 모아서 사준 스피커
우리 엄마. 넷째딸 출국하는 날 공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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