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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이 May 26. 2024

나고야 성, 도쿠가와 미술관, 도쿠가와 정원 둘러보기

도쿠가와 스페셜 데이

나고야 성, 도쿠가와 미술관과 도쿠가와 정원 하루에 둘러보기

 최근 일본 전국시대를 그린 소설 '대망'을 읽기 시작했다. 

이 관심의 시작은 일본 역사에 대한 것으로부터가 아니라 그 반대, 이순신 장군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본 소설 '칼의 노래'를 읽으면서부터였다. 


임금이 나라 북쪽 끝까지 피란 간 동안 굶주리고 떠도는 백성들, 그 백성들을 지키겠다는 뚝심으로 하루하루를 일궈나가는 이순신 장군, 싸워서 살아남는 것만도 벅찬데 베어낸 적군의 머리를 소금에 절여 진상해 전공(戰功)을 증명해야 하는 미친 시대상칼의 노래의 인물과 장면을 떠올리며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영화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한산, 명량, 노량까지. 


천자의 나라라 자칭하며 조선을 속국 취급하는 중국과 정명가도(征明假道)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워 조선을 전쟁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일본, 두 나라 사이에서 전쟁의 모든 피해와 희생을 떠안으며 후세에게 물려줄 이 땅과 정신을 지킨 조선의 선조들. 

그들이 아니었다면 우린 지금 한글이 아닌 중국어 또는 일본어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당시 일본군의 진영에 대해 공통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 '각자도생(各自圖生)'. 

우리에게 이순신이라는 리더가 있었던 것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일원화된 명령체계 없이 각 부대의 대장이 서로 동등한 관계에서 서로 돕네 마네 하며 기싸움을 벌이는 형국이었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저 시대에 일본은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던 거야?' '왜 자기들끼리 돕지 않고 저러지?' 하는 의문이 생겨났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관백(関白)의 자리에 오르며 정권을 확립하였으나 각 지방은 다이묘(大名)라는 영주가 실질적으로 다스렸다고 한다. 다이묘들은 겉으로는 관백인 히데요시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결국 각자의 이득을 위해 '각자도생(各自圖生)'을 쫓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임진왜란도 참전했던 다이묘들에게 조선 8도를 영지로 하사하기로 약조했던 대가성 전쟁이었던 것이다. 즉, 나의 몫을 차지하기 위해 이겨야 하는 전쟁, 그러나 전쟁 후에도 내 세력을 유지할 군사와 힘을 남겨두어야 하는 철저하고 계산적이며 전략적인 참전.


'저런 개인주의적인 상황이니 더 협력하기가 어려웠겠구나. 반면 우린 의병에 승병까지 합쳐져 죽기 살기로 싸웠으니 수적 열세에도 하나의 마음으로 이겼던 것이구나.'


 몇 가지 깨달음을 얻으며 자연스럽게 또다시 나의 관심은 '그렇다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임진왜란이 끝난 이후의 일본은?'이란 질문에 닿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1542~1616). 

히데요시 사후 약 백 년간의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에도막부(江戶幕府)를 세워 메이지유신 전까지 260여 년간 평화의 시대를 연 최후의 승자


정략적으로 결혼하고 결국 같은 이유로 이혼한 부모와, 군사원조를 받을 목적으로 동맹가문에 인질로 보내지고 그 와중에 다른 가문에 납치되어 볼모살이를 한 어린 시절. 20대 젊은 나이에 어렵게 해낸 독립과 미카와국(三河国) 통일, 크고 작은 전투를 끊임없이 거듭했던 중년의 삶, 출신과 신분 어느 것에도 뒤지지 않으나 명분 싸움에서 패해 어쩔 수 없이 히데요시의 막하에서 보낸 2인자의 생활, 기존 풍요했던 영지를 회수 당하고 척박한 새 영지로 이주하여 현재의 동경(東京)지역을 훌륭하게 일궈내기까지 인내의 세월. 


여러 가지 서러움과 모욕, 고난을 극복한 후 세키가하라 전투의 승리를 끝으로 그는 마침내 일본 전국시대를 완전히 통일한다. 그렇게 그는 60세가 되어서야 모든 무사들의 우두머리, 에도막부의 통치자, 천황 다음의 최고 권력자인, 히데요시도 오르지 못했던 쇼군(将軍)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서두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신중하게 상황과 사람을 적절히 이용한 그의 처세술이 오늘날의 일본 경영인, 정치인들이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롤모델로 삼는 이유라고 한다. 


대망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위인으로서 극대화하기 위한 요소가 가미된 소설이긴 하지만, 여러 매체를 통해 수집한 그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들만으로도 그의 삶은 꽤 엿볼만하다고 여겨졌다. 


대망을 완독하고 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초반의 1~2권에 등장하는 어린 다케치요(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명)의 당돌함과 영리함은 그렇게 나의 호기심을 부추겨 이 여행의 첫 번째 도시인 나고야로 이끌었다. 



 나고야 성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생전에 축성하였다.

그는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1603년 쇼군에 임명된 후 그는 일본의 실권을 장악한 사실 상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1605년에는 쇼군의 자리를 아들인 히데타다에게 물려주었으나 중요 국정에 대해서는 이에야스 자신이 결정하고 처리했다고 전해진다. 오고쇼(大御所, 섭정)로 물러나서도 그만큼 그의 위세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나고야 성은 1609년 착공해 1612년에 완성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향력을 나타내는 상징과도 같은 건물이다. 일본의 성들 가운데서도 최초로 국보에 지정되었을 만큼 성이 내포하는 의미와 가치가 상당함을 알 수 있다. 

나고야 성을 드넓게 둘러싸고 있는 해자(垓子)와 모퉁이에서 적의 침입을 탐지하는 요새를 구경하며 발을 들였다. 실제로 보면 더욱 웅장해 성의 드넓은 규모를 해자를 보며 간접적으로 가늠할 수 있다. 

다들 이 금빛으로 장식된 건물 앞에서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와리 번주의 저택인 '혼마루 어전'이다. 번주의 공식 접견실, 에도막부 쇼군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숙박시설이 갖추어진 화려한 곳이다.

방문객이 혼마루 어전에 발을 들이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맹장지에 그린 '죽림표호도'이다. 금빛 배경에 대숲과 폭포를 끼고 용맹한 표정으로 살아서 숨쉬는 것 같은 호랑이와 표범 그림에 나도 모르게 압도된다. 

번주를 만나러 가기 전 방문객으로 하여금 이 나고야 성과 번주의 위엄을 느끼게 하려는 의도도 있는 것이라 한다. 한참 들여다보고 있자면 호랑이와 표범의 털 무늬와 살결이 만져질 것만 같은 느낌이다.

번주의 정식 알현실인 오모테쇼인이 가장 아름다웠던 방으로 기억에 남는다. 주(主)와 객(客)의 지위 차이를 두기 위해 번주가 앉는 방을 한층 더 높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특히 이 방의 소나무 그림이 혼마루 어전에서 제일 인상 깊었던 그림 중 하나이다. '푸른 소나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닌가 싶다. 보고만 있어도 눈에 청량감이 더해졌다.

넓은 건물 곳곳을 장식한 다양한 그림과 무늬들을 보면서 17세기 일본 최고 권력 가문의 힘을 체감했다. 천장에 한 장 한 장 동식물을 그려 넣은 섬세함과 수수하면서도 과하지 않은 화려함이 특히 감탄스러웠다. 

혼마루 어전 내부의 감상을 모두 마치고 나오면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천수각이 맞아준다. 공사 중이라 입장을 할 수 없어 아쉽지만 밖에서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대신 천수각과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 금빛 긴샤치, 나고야 성을 상징하는 모든 것을 총망라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뿌듯했다. 

성의 뒷편에서 오른쪽으로 출구를 향해 돌아나오면서 마지막으로 나고야 성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보았다. '다음에 오게 되면 그땐 천수각에 들어가볼 수 있겠지?' 언제가 될지 모를 작은 희망을 품으며 나고야 성을 나섰다. 


내친 김에 오늘 하루는 도쿠가와 스페셜 데이로 자칭하기로 했다.

'도쿠가와 미술관'과 '도쿠가와 정원' 두 곳에 더 들렀다. 


한국에 돌아갔을 때 소설 '대망'의 장면 장면을 실감 나는 상상을 하면서 읽기 위해 사무라이의 검과 갑옷, 그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과 정원 속의 자연을 실컷 감상해두었다. 

도쿠가와 미술관, 가문의 문장과 함께 장식된 사무라이 갑옷과 검
도쿠가와 미술관, 지붕 위에서의 전투와 두 남녀의 밀회를 그린 그림
도쿠가와 미술관, 동백꽃의 금빛 병풍과 벚꽃나무 아래를 노니는 여인들
도쿠가와 정원(德川園), 정원의 전경과 폭포
도쿠가와 정원(德川園), 화려함이 깃든 색색의 화원의 동백꽃
도쿠가와 정원(德川園), 인간이 조성한 자연 안에서 삶을 즐기는 동물들

이렇게 나고야에서의 하루를 '도쿠가와'라는 한 사람과 '에도'라는 한 시대의 역사로 가득 채우며 보냈다.  


앞으로 읽을 대망의 내용들이 내 눈앞에 어떤 그림으로 펼쳐질지 기대가 되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귀국하고 집에 도착하면 대망의 읽다가 덮었던 부분부터 펼쳐보아야겠다.


p.s. 한국에 도착해 대망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나고야 성의 혼마루 어전과 도쿠가와 박물관에서 보았던 방과 가구, 여러 가지 일상용품들에 대한 기억 덕분에 더욱 풍성한 즐거움을 느끼며 읽어나가는 중이다. 역시 하루를 도쿠가와 스페셜 데이로 보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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