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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려다니지 말자

by 김병화 Mar 19. 2025

시한부 판정을 받고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와 현재 메밀국수 가게로 

큰 성공을 거둔 고명환이 34살 무렵 

15톤 트럭과의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에 있었을 때 

신기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고명환의 뇌가 생사를 오갈 때

보여주고 싶은 것만 

일주일 내내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뇌가 계속적으로 보여준 내용은 

과거의 일이다.

재수하던 시절, 

연극 영화과에 가고 싶어 

4개월 동안 땅바닥에 누워서 

잠을 청한 적이 단한 번도 없을 만큼 

하루 17시간을 공부에 매진했다고 한다. 

생사를 오가던 병원에서 뇌는 

그 시절의 경험만을 반복적으로 

일주일 내내 보여주었다고 한다. 

왜 뇌가 그 4개월 남짓한 그 시간만 

반복적으로 보여주었을까? 하고 

진지하게 고찰하던 와중에 

"내가 살아온 34년 중에 

그 4개월이 유일하게 

1000% 끌려다니지 않으면서 

산 시간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한다. 

뇌가 보여준 기준이 그것이었다. 

유일하게 끌려다니지 않았던 시간.

학교 다니던 시절과 

천직이라 여겼던 개그맨 활동조차 

환경에 휩쓸려 살았었다고 했다.

뇌가 보여준 과거의 시간은 달랐다.

그래서 고명환은 

그 시간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 끌려다니면서 살지 말아야겠다."

죽음 앞에서는 

더 나답게 살 걸 

주변 사람들을 더 사랑할 걸 하는 

후회가 든다고 했다.

좀 더 나를 사랑하지 못한 것과

그동안 살아온 삶이 

잘못되었구나를 알게 된 후

삶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고명환은 그 뒤로 

어떻게 하면 

주도적으로 살 수 있을까를 찾기 위해 

수많은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독서에 파고든 고명환은 

지금까지 읽은 책만 

수천 권에 이른다고 한다. 

그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고 말하는 

고명환은 현재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메밀국수 가게를 운영하며 

큰 인기를 얻어 

많은 부동산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고명환이 사고 이후로

재산을 많이 축적했다는 것보다 

자신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 

누구에게도 끌려다니지 않는 

주체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이 

가장 와닿았다.

어린 시절에는 

안전이나 건강 그리고 

교육을 위해 

부모님이나 주 양육자에 의해 

필히 끌려다녀야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도 

우리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결정에 자신을 갖지 못하거나 

남들이 하는 결정을 따라가는 등의 

끌려다니는 모습들이 많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혼자 키우지 못하는 사람, 

경제력이 부족하여 

부모에게 손을 벌리는 사람, 

회사에 들어가서 

타인들의 이목이나 평판이 두려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사람. 

심지어는 자신의 적성과 맞지도 않지만 

주변 사람들이 괜찮다고 하는 

직업군을 선택하여 

평생 업으로 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고명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야말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머리가 어지러웠던 사람이 아닌가 싶었다.

중학교 때는 그림이 그리고 싶어서 

미술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주요 과목이 아니면 인정하지 않는 

집안 분위기 덕에 

그렇게 좋아하던 책도, 미술도 

단번에 거절당하고 

책상 밑으로 숨겨서 책을 보던

시절이 기억이 난다.

대학교를 가지 않고 

학원에 가서 요리를 배워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던 

고2 무렵인가 때에는 

그야말로 집 밖으로 쫓겨나지 않은 게 

다행인 적도 있었다. 

하루 이틀 고민한 게 아니라 

내 재능과 적성에 맞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말했을 뿐이었지만 

미술은 도움이 안 되고 

요리사는 고돼서 안되고 

선생님이나 교수나 

법조계가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하게 하는 

부모님의 열성(?) 덕에 

끌려가는 인생이 어떤 맛인지

누구보다 잘 알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나의 의견을 묵살해버리는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른 지방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고3이 되기 전 2~3개월 동안 

독서실을 끊어서 

고명환처럼 열심히 

공부했던 시기가 있었다.

학습 스케줄을 미리 정해놓고 

그날 할당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면 

그날은 집에 가서 샤워도 머리 감기도 

하지 않고 자기로 했다. 

좀 극단적인 방법이었지만 

결벽증이 조금 있는 나에게는 

제대로 된 벌칙이었는지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서 

커스터드 같은 소리가 나지 않는 

과자류로 식사를 때울 정도로 

열정을 쏟아부었다. 

고3 올라가자마자 치른

모의고사에서 이전보다 

100점이 향상되었다.

43살 먹은 나에게 

가장 열정적이었던 

한때를 꼽으라면 

행정고시 준비하던 

신림동 시절도 아니고 

회사에서 밤 12시까지 

일하던 때도 아니었다. 

고3이 되기 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진 것.

그때의 기억이 

평생의 나를 키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때의 일로 

웬만한 일은 못할 것도 없지라는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그때의 의지와 열정이 계속 

생각이 나고 또다시

끌려다니지 않는 나로 살고 싶다고

바라고 바랬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참 많이 끌려다니던 것에 

적응이 된 건지 

익숙한 그 패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누군가에게 끌려다녔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인지가 안 될 정도였다.

결혼도 직업도 

부모님이 선택해 준 대로 

결정을 하였다. 

결혼을 하고 나니 

이제는 남편의 그늘에서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다.

나도 물론 공포가 있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잘못되면 어쩌지 혹은 

내가 하는 행동이 

잘못된 것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좀 더 조심스럽게 살아온 것도 맞다. 

얼마나 오랜 시간 

끌려다님에 담금질 당했던지

원래 순수했던 내 모습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이제서야 시간이 생겨 

책을 더 가까이하게 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동안 내가 느꼈던 배고픔이 

그리고

평탄한 일상이 고리타분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의 배고픔의 이유를 알게 되면서 

삶의 목적이 좀 더 분명해지고 

달라진  것 같다. 

껍질을 깨고 나가기가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하지만 

아픈 사람이 

병명이라도 알게 되면 

속이 시원한 것처럼 

지금은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가야 할 길을 알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하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제2의 인생이 시작되었다고 했던 

고명환처럼, 

나도 세상이 조금씩 달라 보인다. 

편협했던 시야가 넓어졌고 

주체적인 것 내 삶을 

내가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당연하고 맞는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

끌려다니며 어지럽던 상황을 갈무리하고 

깔끔하게 정리하고픈

강렬한 의지가 든다는 것이다.

'내 삶은 내 것이다. 

끌려다니지 않을 것이다.'라는 

고명환의 말이 가장 와닿는다.

내가 가장 소망했던 것. 

그리 어렵지도 않지만 

또 그렇게나 어렵게 느껴지던 것. 

"끌려다니지 말자."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까. 

나는 나로 살 때 가장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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