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20년 전 하루가 멀다 하고 드나들던
대학가 싸구려 선술집 같은 곳이었다.
어렸던 때, 싸구려 술집에서조차 빛이 났었던
우리의 그 시절, 그 공기를 생각하며.
차가운 바람이 덜컹거리는
문틈 사이로 쏜살같이 들어와 발을 시리게 하여도
그것조차 웃음거리가 되고 낭만이 되던
늦은 가을밤이었던 것 같다.
밤늦도록 차가운 맥주에 소주에 마시는 술보다도
늘어놓는 이야기가 많았던 그 테이블에서
반짝거리는 눈을 맞추며 핑퐁처럼 이어지는 대화에
우린 분명 심취했었는데 말이야.
싸구려 선술집이라야만 만 느껴질 법한 깊고 진지한,
혹은 웃음이 깔깔깔 나던 그 이야기들 속에서
값진 것을 만들었다 느꼈었다.
사람 마음이 얇디얇은 종이 한 장과 같다.
써 내려가다 보면 공간이 모자라 마지막 줄은
글의 크기를 반의반으로 줄여야 할 만큼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갈 수도 있고,
그렇게 정성스럽게 써 내려간 글들이
아무 의미도 없었던 듯,
양 끝을 잡고 힘주어 찢어버리면
그저 한 줌의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깨알 같은 글씨로 차곡차곡 적어놓았었던 건
그날의 그 공기뿐이랴.
찢어버린 얇디얇은 그 종이는 가볍게 던져졌다.
매일 같이 쓰는 노트북의 한글 프로그램을 간단하게 열어
'새 글'이라는 창을 띄운다.
낭만이었고 값어치 있었던 것들이 무의미한 것이 되었다.
어깨 위에 돋아난 아프고 거슬리는 큰 뾰루지처럼
터트려 짜내야 할 것을 바라보면서
또다시 '새 글' 칸에 같은 것들을 적을 수 없지 않은가......
추억은 추억이라는 서랍 칸에 잘 넣어 두기로 한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나가면 서랍 칸에 넣어두었던 추억이
곱디고운 색으로 변해있으리라 기대라는 것을 해 보면서.
친했던, 가까웠던, 그리고 좋아했었던, 함께 하고 싶던 감정은
잘 옮겨 이다음에 어디에선가 써보려 한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리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없다.
내가 알고 네가 알고 있으니.
이전보다 한 뼘 더 커진 나를 칭찬하는 것으로 갈무리하려고 한다.
그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것이 나를 지키고 너와의 것들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