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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가 골목길

by 김병화 Mar 19. 2025

녹이 슬었던 슬레이트 지붕 

초라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구시가.

어르신들의 발왕래도 없고

쪽창들이 굳게 닫힌 좁은 골목에서

내 구둣발 소리만 크게 들려 

살금살금 걸음으로 

골목이 깨지 않게 뒤꿈치를 들어야 했다.

집집마다 벽에는 깨진 병을 꽂아 

시멘트로 단단히 발라놓았다.

 곁눈으로 이방인을 지켜보고 있을까?

갈비뼈가 보일 것 같은 작은 고양이가 

딱 그런 눈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창문들이 꼭 닫힌 곳마다 

말소리도 불빛도 사라진 

어두운 움집들이 켜켜이 붙어 있다.

내 발자국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무릎 높이의 낮은 창에 

비로소 옅은 등불 하나 느껴졌다.

끝이 찢어진 시트지로 

꽤 단단히 마음을 닫았다.

찢어진 틈을 끝까지 메우지 않은 것을 보니

인간미가 있는 걸까, 호탕한 걸까?

내 시선에 호탕한 이가 소심해질까 

얼른 시선을 거둬들였다.

체온이 느껴지는 가까운 느낌에 

골목 호걸들에게 궁금증이 끊이지 않는다.

왼쪽도 오른쪽도 

째진 눈을 한 

인간미 흘러넘치는 호인들을 가둬놓은 

작은 집들을 

살짝 눈으로 만지며 지나갔다.

호다닥 튀어나온 

두 번째 고양이 덕분에 

뱃속에서 '헉'하고 놀라움을 뱉자마자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도망치듯 골목을 기어 나왔다. 

궁금증 때문에 가둬놨던 무서움이 

녹슨 슬레이트 지붕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움막에서 나온 구척 장신이 

내 앞을 가로막을까 두려웠을까.

깨진 모습으로 

거꾸로 박혀있는 유리병이 내 가슴을 찌른다. 

가까워서, 좁아서, 

작은 소리도 큰 소리가 돼서 더 쑤셔온다.

병이 먼저 꽂힌 건지. 

내가 먼저 소리친 건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위에서 날 보고 있는 고양이가 

가장 미웠던 구시가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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