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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3. 빛에 가까운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안.

by 슬로우소소 Feb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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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것들을 따라갑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지어지는 순간을 찾아요. 그런 요소들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들이 뿜어낸 빛은 한 사람을 살아나게도, 전진하게도 하지요. 그와 같은 존재는 다양한 형태로 주변을 채우고 있어요.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이가 될 수도, 늘 곁에 있는 익숙한 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존재를 더욱이 기억하고 싶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쓰게 하는 이유가 되어주니까요. 오늘은 이와 같은 것을 찾아 나섭니다.




1월 30일 아침, 잘 들지 않는 배낭을 꺼냈습니다. 이 속에 하나의 여정을 담아야 했어요. 책을 만들기로 이후 고군분투하는 날을 보내고 있거든요. 왠지 모르게 중독되는 싸움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흔적이 담긴 노트북을 이번 여행에 데려가기로 합니다. 목적지는 천안, 생소한 곳은 아니지만 발길을 두는 건 처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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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여 터미널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어요. 목적지까지 200번 버스를 타고 8정거장 정도를 가야 했습니다. 다른 지역에 오면 왜인지 시내버스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와요. 지역마다 버스 색깔이나, 디자인이 다른 건 알고 있지만 더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지요. 천안은 왔다 갔다 하는 연두색 셔틀버스가 참 귀엽게 보였습니다. 내려서 5분 정도를 걸으면 카페 <사사로이>가 보입니다. 우드 간판에는 '하루의 행복을 함께'라는 문구가 적혀있어요. 2층으로 올라가면 이 말이 그대로 실현된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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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분위기에 잔잔한 선곡들이 흘러나와요. 미세하게 들어오는 햇볕에 마음을 빼앗겼지요. 창가 옆에 자리를 잡고 밖을 내다봤습니다. 분명 평소에 보는 나무와 같은데 이를 보는 마음이 조금 새롭습니. 흐르고 있는 하천의 모습도, 산책하는 이들의 모습도, 날아가는 새들의 모습도 다르게 보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무 감흥 없던 소금빵은 또 왜 이리 맛있는지요. 가끔 이렇게 어딘가 떠나왔다는 것에서 오는 안도감이 참 좋습니다. 잠시 가만히 몸을 맡겨봤어요.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건 제게 사실 참 어려운 것입니다. 특히 밤이 되어 누우면 본격적으로 여러 생각들이 올라옵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빨리 낮이 되기를 기다립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기필코 움직여야 하는 상황을 기다리는 것이지요. 지금, 이 순간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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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이 흘러 다시 짐을 챙길 시간이 왔습니다. 목도리를 매다가 시선이 느껴져 옆을 돌아봤어요. 아빠와 함께 온 아기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습니다. 눈웃음을 보이는 아기에게 남몰래 표정으로 인사를 해요. 눈을 크게 떴다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똑같이 눈웃음을 보이면서 말입니다. 나가다 보니 아빠와 아기가 의자를 돌려 창밖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아기의 시선에 맞춰 아빠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포근합니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행복이 가득하길 작게 속삭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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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맞은편에는 독립서점이자 잡화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외관으로 보이는 큰 창에서부터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져요.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쪽에 앉아계신 사장님께서 인사를 해주셨어요. 공간과 잘 어울리는 포근한 목소리였지요. 짧은 순간이지만 처음 발을 들이는 순간은 아주 작은 것들도 크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편지지, 펜, 반지 도시락통- 그 외 다양한 소품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한 번쯤 접해봤던 제목의 책부터 사장님의 취향이 고스란히 보이는 책까지. 애정이 돋보이는 소품들에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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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정도를 걸어, 또 다른 독립서점 <책방주의>로 향했어요. 골목길로 진입하니 개성 있는 간판이 눈에 띄었습니다. 문을 열자마자 훅 들어오는 온기에 몸이 녹았어요.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그 안에 모든 것이 꽉 채워져 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중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옆에 마련된 작은 테이블이었어요. 몇 분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고 있었지요. 이 자리에 있으면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온전히 자신의 시간을 즐겁게 누리고 있다는 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책과 커피, 여유. 세 가지만으로 마음이 꽉 들어찼던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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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정거장 정도를 이동해 신부동 먹자골목으로 향했습니다. 많은 카페들 중 어디를 들어가야 할지 고민했어요. 걷다가 한 곳을 발견했는데, 유리창에 'Normal Crush'라는 문구가 보드마카로 적혀있었어요. 이곳의 이름인 듯 했습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카페 <노멀크러시>가 되었습니다. 찾아보니 '평범한 것에 반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생각해 보면 저 또한 그런 의미를 품고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요. 단순하면서도 흔하지 않은, 개성적인 느낌에 더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작은 노트에 쓰여 있는 메뉴를 살피다 안쪽 공간으로 들어갔어요. 5개 남짓의 테이블 중 두 자리만이 남아있었지요. 한 자리에 짐을 풀고 주변을 살펴봅니다. 첫 번째로 방문했던 카페와는 분위기가 조금 달랐어요. 새삼 연휴의 마지막 날이 끝나간다는 게 실감 났지요.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대로 주어진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반가운 웃음소리가 가득한 친구들과의 만남, 눈빛으로 알 수 있는 연인 간의 사랑. 서로가 서로에게 집중하며 나오는 에너지는 제 마음마저도 웃음 짓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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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소한 것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눈웃음이 빛났던 아기의 인사, 하루를 행복하게 해주던 소금빵의 맛, 문득 떠오른 카페의 독특한 향과 길을 알려주던 사람이 베푼 친절. 오늘 저에게 남은 건 이런 것입니다. 아마 그런 순간이 남아 저를 더욱 단단하게 해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는 강한 동력이 되어줄 거예요. 원하는 바람에 닿을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잠재운 건 바로 이런 따스함이었습니다.


고마운 분께서 언젠가 제게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빛에 가까운 사람임이 분명하다는 말이요. 끝이 어떻게 될지 몰라 막연히 달려가는 사람에게 그 말은 빛이 되었습니다. 빛을 받아 달려갈 힘을 얻기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겨요. 장애물에 걸려 넘어져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그 무언가. 오늘은 그 무언가를 기억하며 집에 갑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그와 같은 따스함이 전달되기를 바라면서요.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이 가진 빛을 나눈 적이 있을 테니까요. 그러니 당신도 빛에 가까운 사람임이 분명해요.


그렇게 오늘의 마지막 답을 적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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