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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의 아픔


  

  설렘과 걱정을 가지고 캐나다에 있는 한국식품회사에 첫 출근을 하였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사원증을 발급받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인사를 하면서 나는 '영어를 잘 못하는데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사람이 오더니 나와 새로 입사한 다른 한 명을 데리고 물류센터로 이동했다. 아파트 6층 높이에 크기는 축구장만한 매우 큰 물류창고였다. 안에는 간장, 소금, 과자, 라면, 냉동식품 등 한국식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Warehouse distribution manager'라는 직함으로 면접을 보았지만 실제로는 물류센터에서 물건을 나르는 직원이었다. 매니저가 아니라 조금 서운하기도 했지만 영어를 못했기에 오히려 몸을 쓰는 게 낫겠다 생각하며 일을 시작했다. 나를 뽑아준 회사에 대한 감사함이 커서 일에 대한 열정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는 어느 열에 어느 품목이 있는지 외우고 다녔고, 냉동식품을 가지러 냉동고 안에도 거침없이 들어갔다. 어떤 때는 물류센터 내부에 있는 김치공장에 가서 배추 옮기는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나는 군대를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었다. 무엇을 못하겠냐라는 생각으로 일했지만 시간이 조금씩 지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먼저 허리에 문제가 발생했다. 간장의 경우 1박스에 2L짜리가 6개 들어있는데 연속적으로 허리를 굽혔다 드는 동작을 하니 허리에 무리가 갔다. 하체의 힘을 이용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허리힘으로 물건을 들었다. 소금 포대도 마찬가지였다. 20KG 정도 되는 소금 포대를 여러 번 들어 올리다 보니 퇴근할 때쯤 허리가 아팠고 자기 전에는 매일 스트레칭을 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1달 반이 지났을 무렵 아침에 일어났는데 더 이상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허리 통증이 몰려왔고 작업반장님에게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할 것 같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캐나다에 온 이유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것'인데 육체적인 노동은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당시 내가 물류센터에 직접 가서 언제까지 다니겠다고 말씀드리고 기간을 두고 그만두는 게 맞는 일이었으나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버티지 못할 시점이 되자 문자로만 그만둔다고 한 것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이자 아픔이었다.



  일을 그만둔 직후에는 영어학원을 다녔다. 일본, 대만, 브라질 등 다국적 사람들이 모여 영어회화를 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극복할 수 있었고 3개월 동안 학원을 다닌 이후에는 내가 영어로 말하는 일을 하려고 이력서를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직장은 캐나다 밴쿠버 스타벅스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는 것이었다. 며칠 동안 밴쿠버 도심은 물론 외곽지역에 있는 스타벅스 60여 곳에 이력서를 돌렸다. 눈이 쏟아지는 날에도 스타벅스 매장에 가서 이력서를 돌렸지만 연락은 오지 않았고 내 속은 점점 타들어갔다. '내가 이러려고 캐나다에 온 게 아닌데..' 스스로를 자책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평소처럼 스타벅스 매장에 이력서를 들고 갔을 때 점장을 만날 수 있었다. 점장은 만나서 반갑다고 해주며, 우리 가게에 한국인도 일하고 있다며 나를 환하게 맞이해 주었다. '나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오는 것인가!'라는 심정으로 대화를 이어나갈 무렵 점장은 현실적인 말을 해주었다. "네게 남아있는 워킹홀리데이 비자 유효기간이 6개월 정도인데 적응하는데 3개월 정도 걸릴 테고.. 일을 제대로 시작하게 될 때쯤이면 너는 한국으로 가야 할 거야." 이 말은 "안된다"라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것이었다. 슬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현실적으로 말을 해준 점장에게 고마웠다. 내가 캐나다 스타벅스에서 일을 못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자 귀국을 결심했다. 캐나다로 간 지 6개월 만의 일이다. 3월이면 대기업 신입공채가 뜨기 시작하기 때문에 시점도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비행기를 타고 2월 중순쯤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취업준비를 하며 새로운 아픔을 겪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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