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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사직서를 낸 이유


회사에 휴직서를 내기 전 회사 동료들에게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은 숨겼다.


단지 허리디스크가 심해서 휴식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팀장님과 면담과정에서 팀장님은 나의 건강을 걱정하셨고


1개월은 너무 짧으니 좀 더 기간을 두고 충분히 회복한 다음 


복귀하는 게 좋지 않겠냐며 진심 어리게 말씀해 주셨다.


하지만 나는 1개월의 시간 동안 나라는 존재가 잊혀지지 않을까,


나중에 불이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1개월이면 괜찮다고 말씀드렸다.




회사 휴직기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이사준비에 할애했다.


결혼 후 주말부부로 약 1년간 지냈고


둘만의 시간이 부족했기에 얼른 주말부부를 끝내고 싶었다.


나의 우울증을 돌보기 위해 휴직을 결정했지만


이사준비에 몰두하다 보니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못했다.




이사집을 알아보는 과정에 아내와 크고 작은 갈등이 많이 있었다.


나는 대출금이 클 경우 힘들 수 있으니 적정한 가격의 아파트를 원했다.


하지만 아내는 서울의 집값 오르는 속도는 월급 인상률보다 높으니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좀 더 비싼 곳으로 가자고 했다.


아내가 어떤 의미로 이야기하는지는 이해했지만 


혹시나 누군가가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 대출금을 갚기 어려울 수 있으니 부담스럽다고 했다.


30년간 꾸준하게 일하면서 일정의 금액을 지속적으로 갚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생을 살면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큰 대출을 받는 것은 위험하다 생각했다.




이사집의 위치와 관련해서도 갈등이 있었다.


나는 아내와 내가 일하는 곳의 중간지점을 원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중에 아기가 있을 경우를 생각해 처가댁과 가까운 곳을 원했다.


나는 양가부모님의 도움을 최소한으로 받고자 하는 생각이 컸지만


아내는 친구들을 사례로 들며 부모님이 가까이 있는 게 좋다고 이야기했다.


최종적으로 처가댁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전에 살던 집과 이사 갈 집에서 나의 통근시간은 달라진 게 없었다.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처가댁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겠다는 장점 외에 


내가 얻는 장점은 없었다.


이사집을 마련할 때 3:1 비율로 내가 더 준비를 해왔지만


결정은 아내가 이야기한 대로 흘러가서 내심 아쉬웠다.


그리고 아내는 통근거리도 가까워지고 근처에 가족이 있으니 부러운 마음도 있었다.




아내는 장모님이 나중에 아기를 돌봐준다고 이야기했지만


처가댁에 가서 이야기를 나눌 때 장모님이 일정 금액의 돈을 달라고 하셨다.


물론 장모님이 아기를 돌봐주시면 소정의 금액을 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대출금을 더 크게 하고 이사 온 상황에서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나는 장모님의 이야기를 듣고 아기를 키운다면 우리 둘이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와 육아휴직을 번갈아 쓰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서 


아프거나 정말 급할 때만 장모님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최대한 가족의 품에서 자라길 원했고 어린이집에 빨리 보내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내의 말에 공감은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보니 조금 더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사 과정에서 크고 작은 갈등을 겪었지만 어쨌든 주말부부를 청산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아내와 앞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면 지금까지 겪었던 아내와 시댁의 갈등이 조금씩 나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 후에도 시댁에 대한 비판은 지속되었다.


아내가 시부모님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 


내가 자라온 환경과 가치관들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아 몹시 괴로웠다.


나의 우울증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울증 탓인지 예민해져서 회사의 한 동료와 갈등을 겪었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었다.


회사를 다니는 이유는 월급을 받고 대출금을 갚는 것 외에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부모님은 남해안의 지방 도시에 살고 계신다.


새로 이사 온 서울 집에 부모님을 초대하였고


식사를 한 후 나는 아버지와 거실에 나와 소파에 앉아있었다.


아내는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너네는 아이를 언제 생각하고 있어?"


아내는 말했다.


"남편이 준비가 안되었어요. 회사를 언제 그만둘지도 모르고요."


아내는 내가 못 들었겠다 생각했지만 


나는 거실에서 아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큰 무력감에 빠졌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부모님에게 말씀드리지 않고 있었고


그 안에서 아내가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는 상황을 오롯이 나에게 핑계 삼는 것 같아 화가 났다.


부모님이 내려가시고 나는 아내와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웠다.




나의 우울증은 더 심해졌고 회사를 더 다닐만한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주말부부를 청산했지만 아내의 시댁에 대한 불만은 지속되었다.


회사에서 받은 월급을 대출금 갚는데 대부분 사용하니


일을 하면서 작은 보람을 느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과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아내와 부모님은 모두 회사를 그만두면 안된다고 말했다.


나는 평생 일을 안 할 것도 아니며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아내와 부모님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정말 힘든 상황인데, 왜 나를 오롯이 이해해주지 못할까 라는 생각에


혼자 눈물을 삼키는 시간이 많았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인생을 사는 것이며


책임도 직접 지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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