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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월 반 만에 새로운 회사를 퇴사한 이유


아내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이로 인해 다니고 싶던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주말에 친구를 만나러 갈 때 교복을 입고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집안 형편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아내의 걱정이 심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사업을 할 생각이 없었고, 괜찮아지는 대로 빠르게 일을 구하겠다고 말했다.


대책 없이 그만둔 게 아니고 아내의 수입이 없더라도 퇴직금과 모아둔 돈을 보았을 때 6개월은 버틸 수 있는 돈이 있었다.


아내를 안심시키려 했지만 아내의 과거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에 몹시 괴로워했다.


하지만 나는 우울증 회복이 우선이라 생각했고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루틴을 만들고자 영어학원과 헬스장을 다녔다. 


물론 집에 있을 때는 우울해서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우울증이라는 어두운 터널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아내는 우울증 관련된 모든 도서를 구매해서 읽고 유튜브 영상을 보면서 나의 우울증 회복에 최선을 다해주었다.


나는 아내를 보며 미안한 마음에 빠르게 나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둔 지 1개월 후에 이력서를 올리고 이직할 회사를 알아보았다.


전 회사를 그만 둔지 2개월 반쯤이 지나 결국 나는 빠르게 이직에 성공했다.


대기업 그룹의 신생회사 이직에 성공했고 연봉도 전보다 높여서 갔다.


출퇴근 왕복에 3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었지만 나는 앞으로 희망만이 가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시댁과 처가댁에 기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앞으로 열심히 살겠다고 말씀드렸다.


무엇보다 내 옆에서 나를 지켜봐 주고 도와준 아내에게 제일 고맙고 감사했다.


회사를 그만둔 지 약 2개월 반 만에 이직에 성공했지만 한 가지 우려스러웠던 것은 우울증이 완치되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 적응에 신경 쓰다 보면 우울증도 잘 극복할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새로운 회사에 출근한 첫날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뽑힌 자리는 업계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있던 분이 와서 일하다가 해고를 당한 자리였다. 


그리고 2가지가 나를 힘들게 했다.


첫째, 업무 시스템이 전혀 잡혀있지 않았다.


구매업무는 무엇보다 시스템이 중요하다.


생산 물량이 많아졌을 때 대응하기 위해선 시스템으로 움직여야 하며


실물과 전산의 재고수량이 일치하지 않으면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회사는 재고를 수기로 관리하고 있었고 재고조사를 했을 때 전산과 실제 재고 수량의 차이는 매우 컸다.


나는 시스템 정립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고 IT팀에 문의하였으나 결과는 시스템을 정립할 계획이 없다고 했다.


내 사비를 써서라도 시스템을 들여와야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유관부서 및 윗 분들은 이 상황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번째로 힘들었던 점은 몇몇의 사람들이 나를 괴롭게 했다.


회계팀장은 구매업무에 대해 잘 모르면서 3만 원 정도의 부자재를 구매하는 것부터 트집을 잡았다.


생산에 필요한 부자재가 부족하면 발주를 빠르게 진행해야 했으나


회계팀장은 이상한 이유를 들며 결재를 반려했고


발주 한 번을 진행하기 위해 그를 매번 설득해야 했다.


사소한 것을 구매하는 것에도 그를 설득해야 했고 이는 내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발주를 하기 위해선 매번 엑셀로 문서를 작성하고 인쇄하여 결재를 받고 스캔을 하고 업체에 메일을 하나씩 보냈다. 


수기로 하나씩 작성을 해야 하고 결재를 승인하는 회계팀장과 대화가 통하지 않으니 매번 스트레스였다.


그 와중에 내 옆에 있던 직속상사는 처음에 나를 챙겨주는 척하더니 뒤에서는 나를 흉보는 것을 목격했다.


그 상사는 사장님과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는 굽신굽신 대면서, 나를 따로 불러 "대리님한테 이야기하기 조금 창피한데, 전 회사에서도 이랬어요?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죠." 라며 나만 따로 불러 이야기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한마디로 강약약강이었고 주위 사람들의 평판을 얻기 위해 굽실대는 치졸한 사람이었다.




나는 이직한 회사에서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고 적응해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특히 직속상사가 뒤에서 업무적인 이유로 다른 사람과 내 흉을 보고 비웃는 일을 목격했을 때 나의 우울증은 더 악화되었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티며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아 보려 했지만 내가 여기를 계속해서 다니다가는 정말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에게 회사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했지만 아내는 과거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트라우마가 있다 보니 회사를 그만두는 것만큼은 안된다고 나에게 조금만 더 다녀보라고 했다.


나는 우울증이 다 낫지도 않은 상황에 이직을 해서 최악의 사람들과 일하다 보니 너무나도 괴로웠다.


회사를 퇴직 2개월 반 만에 새로운 회사에 입사했지만 1개월 반 만에 그만두는 것은 나로서도 힘든 선택이었다.


나는 출근을 하기 전 아내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아내는 시어머니에게 전화해 내가 회사를 그만두려 하는데 막아달라고 전화했다.


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해서 지금 회사 그만두면 낙오자가 된다고 하셨다.


나의 상황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었고,


나는 살고 싶었기에 퇴사를 하겠다고 했다.


순간 주위에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고 느꼈다.


아내도, 어머니도..


내가 죽어야만 내가 이렇게 힘들었다는 것을 알아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고층 건물을 보았다.


저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고


나는 혼자서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가서 3주 뒤에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다.




내가 그만둔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직속상사와 회계팀장과의 갈등은 지속되었다.


나는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뒤척였고


출근 전 나는 아내에게 오늘 가서 인사팀이랑 이야기해 보고 가능하면 오늘 퇴사하고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아내는 조금이라도 더 버텨볼 것을 이야기했지만


나는 아내의 말을 들을 만한 여유도, 힘도 없었다.


그리고 출근하자마자 인사팀에 메신저를 했다.


제가 자살할 것 같은 생각이 심하게 드는데 당일에도 회사를 그만둘 수 있나요?


인사팀에서는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직속상사에게 퇴사를 말씀드리려 메신저로 시간 되는지 물어보았으나,


직속상사는 "나 바쁜 거 안 보여요? 이따 시간 되면 이야기해요."라고 했다.


내가 그 직속상사를 보았을 때 바쁘지 않아 보였는데 나를 마지막까지 갖고 노는 것만 같았다.


시간이 지나자 그 상사는 나를 따로 불렀다.


빈 회의실에서 나는 상사에게 이야기했다.


"사실 우울증이 있었는데 회사에 와서 더 심해졌습니다. 더 이상 다니면 안 될 것 같아 회사를 오늘까지만 다니기로 했습니다."


"우울증이요?"


"네."


"왜 나한테 처음부터 다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제가 우울증이 있다는 것을 굳이 오픈하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 그리고 오늘 회사를 그만둔다고요? 3주 정도는 더 다닌다면서요."


"네, 인사팀에 오늘 퇴사 가능한지 물어보았고 가능하다고 이야기 들었습니다."


"인수인계는요?"


"제가 다 만들어 놓고 가겠습니다."


인수인계 자료를 만들고 오후에 그 상사와 다시 이야기를 하였다.


인수인계 자료를 보던 그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나에게 이야기했다.


"이게 인수인계자료예요?"


"네."


"내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겠는데, 다시 작성해서 주세요."


나의 인수인계자료는 전임자와 전전임자의 데이터를 가지고 만들었고


1개월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알았던 것은 모두 기재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마지막까지 가지고 노는 듯한 느낌을 주었고,


나는 지지 않고 되받아쳤다.


"과장님, 전임자와 전전임자 데이터 보고 작성한 자료이고 1개월 동안 제가 다 알게 된 내용은 기재하였습니다."


나는 그의 과거 행동이 문득 떠올라 이어서 강하게 말했다.


"그리고 남들 앞에서 이미지 관리 그만하시죠? 뒤에서 남 흉보지 마시고요."


그는 당황한 듯 말했다.


"내가 그랬다고요? 전 안 그러는데요?"


뻔뻔하게 말하자 나는 큰소리로 말했다.


"과장님이 그랬잖아요!"


그는 주위 사람들이 들을 수 있으니 조용히 말하자고 했다.


역시나 그 상황에서도 그는 주위 사람의 평판을 지독히도 챙기는 인간이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에게 말했다.


"나 사실 대리님을 진짜 좋게 보고 있었고, 나도 이직할 생각 있어요. 내가 이직할 때 연락해서 같이 일하고 싶은데 계속 연락해도 돼요?"


순간 나는 그가 사이코패스 같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렇게 나는 상사와 대화를 마치고 사장님과 면담 후 회사를 나왔다.




퇴사한 당일 밤 11시 40분, 직속상사에게 카톡이 왔다.


"대리님, 혹시 컴퓨터 비밀번호 어떻게 돼요?"


밤 11시 40분에 연락이라니.. 


그는 이전에도 퇴근 시간 이후에 나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을 자주 했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가 늦은 시간에 연락하면 싫어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카톡을 남겼다.


"모니터 밑에 있는 종이에 비밀번호 적어두었어요. 그리고 제가 퇴사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늦은 시간에 업무 연락은 자제하셨으면 합니다."


그러자 바로 그에게 카톡이 왔다.


"대리님이 일을 잘 못 챙겼으니까 제가 연락한 거죠."


카톡을 보는 순간 나는 그를 수신 차단 해버렸다.


그렇게 나는 1개월 반 만에 새로운 회사 생활을 마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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