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엄마가 학부모 상담을 갔다가 같은 반 여자 아이들 글씨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아들의 글씨는 지렁이가 꿈틀거리 듯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는데 여자 아이들은 글씨 크기부터 띄어쓰기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다는 것이다. 진작 쓰기 연습에 신경 써 줄 걸 그랬다며 후회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어떻게 해야 아이가 반듯한 글씨체를 익힐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속상해했다.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이는 거의 모든 남학생들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확신한다.
내가 아이들의 시험지를 채점하면서 가장 화가 나는 경우는 답을 밀려 쓴 경우도 아니요, 아예 풀지 못한 경우도 아니라, 나름대로 열심히 계산해서 답을 적었는데(지는 적었다고 우기는데) 채점자가 답을 찾을 수 없는 경우다.(정말 눈알이 빠질 것 같다.) 그래놓고는 맞는데 잘못 채점했다고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 항의하는 걸 보고 있자면 정말… 하
“ 이 녀석아, 답을 답같이 적어야 될 것 아니냐! ”
아들 둔 엄마들은 하나같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 여자아이와 달리 남자아이는 글씨를 단순히 도구로 여겨 글씨 쓰는데 관심이 없다. 연필 쥐는 방법도 글자 필순도 제멋대로이다 보니 글씨는 엉망이고 글자 크기도 들쑥날쑥이다. 심지어 수학 시험 때 자기가 쓴 계산식을 잘못 읽어서 답을 잘못 쓰는 일까지 벌어진다.
서술형 문제의 비중이 늘어난 지금에는 맞게 답을 썼는데도 선생님이 알아보지 못해 오답으로 처리되기도 한다.
어려운 수학 문제일수록 풀이과정은 길어지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라도 정확하고 정돈된 풀이과정은 수학문제 해결에 있어서는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자녀의 글씨 쓰기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냥 자연적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나?
공부머리 문제만큼이나 악필은 점점 더 아이의 성적에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
후에 아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가 노트필기를 할 때 학교 시험에서 서술형 문제 답을 쓸 때 대입 입시에서 논술을 쓸 때 말도 안 되는 실수를 범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초등학생 아들은 반드시 미리 글씨체를 잡아 줘야 한다. 훈련과 연습이 반드시 필요하다. 천천히 바르게 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글씨를 예쁘게 쓸 필요까지는 없다. 적어도 답같은 답을 원하는 것이지 켈리그라피나 펜글씨같은 글자체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 교과서가 대두되는 이 시점에서 굳이 힘들게 아들과 실랑이를 하면서 글씨 쓰기 훈련을 시켜야하냐고 반문하는 엄마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공부해서 가장 중요한 학습기능이다. 글씨를 쓴다는 것은 머릿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손으로 써 가며 정리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공부할 때 매우 효과적이다.
게다가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쓰면 소뇌와 운동 중추가 발달하고 이로 인해 균형 감각과 두뇌 계발이 이루어진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여기에 자기가 쓴 글씨를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다만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엄마가 아들의 습관을 잡아 주기가 비교적 쉽지만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생이 되면 아이가 엄마의 의견에 방귀를 들거나 엄마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