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청정할 줄 아는 겸손
초록의 시간을 보내고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안에 들어섰다.
이맘때쯤이면 장마가 시작되고 세상은 폭염과 온통 습한 기운에 무겁게 침울해하고 있다.
양버즘나무 잎이 태풍을 부르는 듯 그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여름에는 자귀나무꽃이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끈다. 마당 저쪽에는 배롱나무에 꽃이 나 좀 봐 달라고 한다.
요즘 전주 덕진연못에는 연분홍 빛깔의 연꽃이 봉우리 봉우리 다투어 피고 있다. 수채화 맑은 빛 연분홍 연꽃이 날개를 펴면 이슬로 사리를 토해내는 신비로움이 있다. 일찍 서둘러 핀 연꽃은 연잎에 반사된 햇볕에 몸을 말리면서 연밥을 익히고 있다.
덕진 연못은 오랜 역사와 함께 전주의 명물로써 전주시민의 추억을 담아두고 감정을 정화시키는 콩팥 같은 역할을 해왔다.
사랑이 있고 우정이 있고 너와 내가 있어 가족끼리, 연인끼리, 즐겁고 평화가 있는 곳이다. 멀리서 찾아오는 벗이나 지인들이 오면 한 번쯤 가보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연꽃이 피기 시작하면 붕어들이 산란을 하고 잉어가 거품거리며 토착화된 오리와 물닭이 자유롭게 자맥질을 하며 상생하는 연못이다.
갑자기 소나기가 호수에 가득한 연잎에 투두둑 소리 내어 떨어진다.
손으로 비를 가리며 뛰어서 연못 가운데 있는 전통한옥 도서관 연화정 처마밑에 몸을 피한다.
연잎사이로 나도 봐달라는 노란 창포꽃이 새 침스레 쳐다본다.
연화정은 전통문화를 주제로 하는 도서와 한국적인 소재를 담은 서적들이 있어 요맘때 빗소리를 즐기며 전통창살에 비끼어 달려드는 연꽃 향기에 취해볼 수 있다.
한옥도서관인 연화정에서 힐링되는 사색을 하다가 쉼터인 연화루 창가에 기대어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이 다정하기도 했다.
우산도 준비 못한 처지라 연꽃 가까이 가지 못하고 꼰지발로 먼 곳까지 바라보았다. 오늘도 나이 들어감에 색다른 느낌으로 연못가 포토존에 앉아 핸드폰으로 셀카를 찍는다.
연꽃은 처음에 꽃봉오리를 올릴 때는 낮은 곳에 있다가 점점 대궁을 힘껏 밀어 올려 연꽃을 보러 오는 사람들에게 언제 날 또 보러 올 거냐고,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은 듯하다.
잠시 멈춘 빗방울을 연잎에 받아 흘리며 연꽃은 진향향기로 연못을 채운다.
바람 한줄기 꽃봉오리 간지럽히면 연잎에 보석이 또르르 구르다 발밑으로 떨구기도 한다.
"연잎은 자신이 감당할 만큼의 빗방울을 안고 있다가 그 이상이 되면 미련 없이 버린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세상 삶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가 없다. 세상살이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말처럼 버리고 비우고 가볍게 하여 살 수가 없다.
나도 어느 사이에 더 많이 더 높이 가득 채우려는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은 욕망과 혼탁함으로 뒤섞인 진흙탕물 같지만 연꽃은 아름답고 맑은 미소로 화사롭게 피어나서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기쁨과 평화를 전해 준다.
오염된 곳에 머물더라도 항상 깨끗함으로 고귀한 자태를 버리지 않는 품격을 지닌 연꽃에 마음이 자꾸만 끌린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맑고 깨끗한 세상을 꿈꾸는 연꽃은 불교에서 선과 악이 없는 "해탈의 세계"를 비유해서 이야기하기도 한다.
연꽃은 선과 악을 구분하여 피는 꽃이 아니라 남들이 발 딛지 않은 시궁창에서 가장 맑은 빛으로 아름답게 피는 꽃이기도 하다.
연꽃은 썩은듯한 진흙탕에서 자라지만 그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의 부조리와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세상을 아름답게 비쳐주는 꽃 중의 꽃이다.
연잎은 한 방울의 물도 허투루 흘리지 않고 보석 구슬을 만들어 땅에 떨구어 주는 섬김의 성품을 보여 준다.
연꽃이 피기 시작하면 온갖 더러운 시궁창 냄새는 사라지고 온통 향기로 연못을 채운다.
고결한 인품과 맑은 향기로 사회를 정화시키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꽃이 지고 열매를 담기 전에는 푸르름을 잃지 맑은 기상과 함부로 꺾이지 않는 대궁의 유연함은 연잎과 꽃의 곧은 성품을 드러낸다. 혹시나 꿈에 연꽃을 보면 길하다고 했다.
연잎은 모난 부분이 없고 둥글며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의 성품도 볼 수 있다.
항상 웃음을 머금고 온화한 자태로 절제미를 보여 주기도 한다.
연의 대궁은 약한 듯 강하다. 작은 바람에도 반응할 줄 아는 융통성을 지녔으며 강한 바람에도 자신을 지켜내는 유연함이 있다.
연꽃이 열매를 맺기 위해 꽃잎을 떨구는 것은 세상에 지혜로운 덕을 의미하기도 한다.
활짝 피었을 때 연꽃을 보면 덩달아 마음과 몸이 맑아지고 깨끗해짐을 느낀다.
연꽃은 흰색과 연분홍으로 사람들의 다른 마음도 배려해 준다.
연꽃은 처음 잎을 펼쳐 놓고 꽃봉오리를 올릴 때부터 여느 꽃과는 분명 다름이 있다.
긴 대궁에 등불을 비추듯 탐욕스럽지 않은 순수한 멋을 보여준다.
연꽃의 인자하고 너그러움은 그 기품이 올곧고 바른 성품이 있어 주로 불가에서 연의 지혜를 설법하기도 한다. 연꽃을 자세히 보면 꽃방 가운데 여린 연밥집을 여란 꽃 술이 감싸고 피어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연밥이 익어가면 꽃잎을 하나둘 떨구어 연밥이 익어가도록 돕는다. 그 과정은 연꽃의 지혜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고 오염되었다 해도 스스로 청정할 줄 알고 욕심에 붙들리지 않으며 품격을 지키고 적당함을 아는 지혜로 살아가고자 한다.
순전하고 아름다운 너그럽고 온화한 연꽃에서 배품의 지혜를 얻는다.
이 세상에 딱 한 사람인 나 자신의 삶을 연꽃에서 얻은 지혜로 귀하게 살다가 가야 한다.
연근은 또 어떠랴. 사람에게 건강에 이로운 성분들을 가득 채웠으니 사람의 몸에서 유해한 것들의 성장을 억제하며 세포를 보호하고 증식시키고 건강하게 작용하기도 한다.
시궁창 진흙 속에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흙을 썩지 않도록 하고 사람을 살리는 신비로운 약성을 담고 있다.
연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며 다투지 않고 이웃을 탐하여 비교하지 않는 삶,
주변을 살필 줄 알고 유연함을 지니고 존중과 배려로 내어주는 자연미 풍기는 삶을 살아가자고 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슬아슬하게 흔들 다리를 건너는 느낌을 갖는다"는 선배 목사님의 예기를 들은 터라
나도 왠지 앞서 바쁘게 달아나는 시간들 앞에서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들어 더 이상 꽃을 피울 수 없음이 해마다 장마를 동반해 피워오는 덕진연못에 연꽃에 비길 것이 없으니 못내 이룬 내 아쉬움이 더해만 간다.
소유하려는 탐욕은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서 불가의 해탈로 사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 두 손의 악력을 키워가며 욕심을 부리고 있으니 그것은 채움이 아니라 부끄러운 탐욕일 것이다..
나는 지금 가진 것으로 나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못했다.
연잎에서 빗방울을 담고 흘리는 지혜를 나는 가져오지 못했다.
예수님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을 순 없지만 적당한 채움이 비워가는 연습일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빈손으로 두 주먹 꼭 쥐고 태어나지 만 죽을 때는 두 손을 다 펴고 죽어간다고 한다.
연잎에 보석 같은 빗방울은 적당한 양이 있을 때 아름답게 보이고 사람은 매사에 적당함을 알면 멋진 인생을 살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버겁고 힘든 길이 될 것이고 적당하게 비우고 내어줄 줄 안다면 하루하루가 의미 있는 삶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부분 자기만을 위해 풍요로 채워 가지만 그 지나침이 탐욕으로 변질된다면 무겁고 고통스러운 날들이 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견지해야 하는 것이다.
만일 연잎에 빗방울로 가득 채운다면 꽃을 피우기에 고통이 따를 것이고 연밥을 익혀가기가 힘들 것이다.
또한 가득 담은 빗방울 때문에 연잎대궁이 부러져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가치 없는 인내의 시간들을 부둥켜안고 있을 필요가 없다.
연잎은 빗방울을 소유하지도 집착하지도 않는다.
다만 빗방울이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을 뿐이다.
연꽃은 시궁창에서도 청아하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느끼게 한다.
연근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연잎은 정서적 교감을, 연꽃은 감정적 소통을 이어가는 품격 있는 인연이다.
연꽃은 검게 부패된 질펀한 늪에서도 넘치고 과함 없이 고결한 성품으로 주변을 그윽한 향으로 채워 몸과 마음이 맑은 사람이 되라고 세상을 정화하여 주었구나.
가까운 연꽃밭 정자에 앉아 꽃향기 온몸으로 안으면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고 선에 속하려 하나니
연꽃을 보면서 사람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니 이또한 감사의 조건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