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꿈 꾸는 할아버지

인생의 문제에는 정답이 없다.

by 남재 이진주

“왜 안 일어나요?. 시간이 몇 시인데.” 아내의 퉁명스러운 무미건조한 한마디가 밤새 누려온 평화를 깨는 듯 안타까웠다. 좀 더 관심 있는 듯 배려의 언어를 골라서 썼으면 좋으련만... 나는 벽에 걸려 매일 무료하게 바늘만 돌리고 있는 하얀 벽시계를 바라보았다. 8시다. 지금껏 잘 수 있었으니 긴 시간을 잘 견딜 수 있었음에 다행이라는 마음을 달랜다.

난 그런 아내의 태도에 별 반응은 하지 않는다. 그런 아내의 태도는 오늘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퇴역한 장군처럼 허망한 하늘만 원망하다가 세월을 버리고 있는 나에게 처음으로 겪는 통증이 달려들었다.

벌써 달포를 척추관 협착증이라는 병명으로 아픈 허리를 겨우 지탱하며 양치를 하고 면도를 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허리를 짓누르는 무게는 통증을 동반하여 잠시도 견디기 힘들었다. 욕실에 있는 노란 플라스틱 의자에 주저앉아서 머리를 감고 샤워를 계속한다. 엉덩이를 들고 머리를 감고 물기를 털어내고 얼른 수건으로 머리를 감싼다.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니 엉덩이 통증은 눈물이 찔끔 나게 덤벼 들었다. 겨우 참으며 머리를 수건으로 털어 말리고 방으로 들어왔다. 화장대 거울 앞에 털썩 주저앉아서 달팽이 미스트를 얼굴을 향해 뿌리고 두 손으로 다독 거린다. 그나마 앉아있으면 잠시 통증이 사라졌기에 다른 일상은 할 수가 있었다. 나는 매일 정해진 순서대로 하면서 몇 가지 기능성 화장품으로 얼굴 주름살 관리를 하고 있다. 마침 보령에 계시는 사모님이 설 명절을 맞아 선물로 며느리 회사에서 만드는 화장품 세트를 보내주셨다.

주름개선 화장품이라고 쓰여 있어서 나는 특별하게 애용하고 있다. 스킨 세 방울, 로션 세 방울을 차례로 얼굴에 토닥토닥 바르고 눈가의 주름을 양 손끝을 모아 콕콕콕 수차례 토닥인다. 마지막으로 선크림을 엷게 바르면 하루를 자신감 있게 살아갈 준비가 마무리를 하게 된다.

오늘처럼 조금 늦게 일어나면 아내는 나보다 20분 정도 먼저 나가 버린다. 차가운 대리석 식탁에는 직접 만든 콩두유 한잔과 삶은 계란 두 개, 감자 서너 개를 성의 없는 듯 내어놓았다. 아내는 이런 생활 태도는 긴 세월 변하지를 않는다.

나라면 늘 바라고 있는 아침 상을 정돈된 생각으로 데코레이션을 해본다. 기왕이면 예쁜 접시에 삶은 계란은 까서 하얀 모습으로 놓아두고 곁에는 건과류 몇 알을 보기 좋게 데코 하면 된다. 약간 데친 당근과 브로콜리 조금과 삶은 감자는 반쯤 벗겨서 한 개면 된다. 토마토 주스는 엉키지 않도록 작은 접시로 덮어두고 티스푼은 올려놓는다. 늘 빠지지 않는 사과 반쪽과 바나나하나면 더욱 좋겠다. 투명한 유리잔에 저지방 우유를 따라 놓고 그래놀라 시리얼을 한 스푼 타 놓는다. 또 다른 접시에는 갈릭바케트 빵 한 조각을 가지런히 배치해 놓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쩌면 너무 과하게 바라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아내는 내 생각과 일치해본 적이 없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혹시 하게 된다면 분명 “그럼 자기가 하면 되겠네.” 할 것이기에 나는 더 이상 바라지 않는다. 계란을 더듬더듬 까고 얼른 입안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두유잔을 들어 목을 축여 넘긴다. 오랜 직장 생활이 끝나고 은퇴자의 모처럼의 아침을 즐길 여유가 없다. 다만 어떤 종교의식처럼 정한 순서대로 아침을 맞는다. 삶은 감자를 집어 든다. 어디를 갈 목적도 없이 손목시계를 바라본다. 감자껍질을 벗겨서 한입 베어 물고 토마토 주스를 마신다. 빠른 의식을 치른 다음 잘라놓은 사과 한쪽을 일어서면서 먹게 된다. 무엇 때문에 나는 이렇게 서두르며 살고 있는지 새삼 나 자신에게 “어디를 갈 거냐?”라고 질문을 하게 된다.

작은 가방에 핸드폰을 넣고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내려가는 화살표를 누르고 1층에 내린다. 다리에 통증의 시작을 예고하는 가벼운 저림이 시작된다. 지하 2층 주차장까지는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걷기 시작하면 견딜만한 통증이 동반하여 방사통이 시작된다.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겨우 걸어서 창문을 열고 의자에 앉았다. 휴~, 힘듦을 덜어내는 한숨이다. 일단 앉으면 통증이 사라진다. 시동을 켜고 차를 운전하여 도서관에 오기까지는 통증이 전혀 없는 시간이다. 켜진 라디오에서 김현정의 뉴스쇼가 진행되고 있었다. 녹색 신호등이 연동되어 가는 길은 여유롭게 도착할 수 있었다.

나의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은 보잘것없는 모양새임에 틀림없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지, 살아가기 위해서 무엇을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답을 구한다면 참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내 나이 만 65년을 살아오면서 “인생의 문제에 정답은 없다.”는 전제를 부정하지 않았다. 나는 억지로 하는 일은 차라리 안 하는 것만 못하다는 결론에 다른 생각은 모두 버려두게 되었다.

아무리 아름답게 삶을 꾸며 본다고 한들 함께 살아가는 이의 이해와 헌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우리네 삶은 내가 주인공이 아니라 남의 종이 되어 일생을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삶에서 우선순위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중요한 사항을 아무렇지 않게 버려두고 살아가고 있다. 무엇이 내 인생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지를 알고 살아간다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밤새 가득 채웠던 미적지근한 공기가 달려들어 비끼고 지나간다. 불을 켜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열풍기를 켜서 실내 온도를 조절한다.

어제 쓰기 시작한 글들이 정리되지 않아서 한참을 글의 꼬리를 잡고 있었던 터라 여러 생각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처음부터 글을 읽어 내려가며 수정하고 정리하며 완성된 문장을 저장하고 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사용하는 소재들이 다양하고 글은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느냐에 따라 그 종류가 많기도 하다. 사용한 단어들은 반드시 잘 정제하여 그 의미를 읽는 이에게 잘 전달되어 공감할 수 있다면 최고의 보람일 것이다. 일어서면 허리 통증은 계속되었으나 참아가면서 정리를 다 했다. 믹스커피 한잔을 타서 들고 자리에 앉아 허리 통증을 달래 본다.

연일 폭설이 내린다. 하얗게 잠 못 이루는 퇴역장군의 지친 몸은 마음 따라 더욱 힘든 일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완산도서관에 입주한 지가 벌써 5개월이 지나고 있지만 나는 글쓰기에 몰입하지 못했다.

내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글쓰기에 매진하게 되고 내 이름과 얼굴을 알리게 된 것은 오늘에서야 그 큰 의미를 알게 된다.

살아가면서, 아니 살아오면서 자존감을 지키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어렴풋이 그려왔고 맨 처음 도전한 것이 에세이를 써 보는 것이었다. 모든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없다는 것을 깨우쳐 준 것이 바로 글쓰기다.

하루를 시작하면 반복된 일상이 무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나의 감정을 다루고 늘 경이로운 아이처럼 세상에서 발생되어 오는 새로운 이슈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어쩜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지만 용기를 내어 한 글자씩 적어 나가기로 했다. 특별하게 작품을 구상하고 어떻게 전개시켜 나가야 할 지도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내가 서있는 위치에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면서 타인과의 소통과 공감에 특별한 관심을 두는 것이었다.

글을 잘 쓰려면 많은 글을 읽어야 하고 새로운 구상을 하여야 함은 매우 기본적인 일이다.

끝없이 많은 키워드를 노트에 적어보고 자신의 감정과 일맥소통하는 글 쓰는 일은 마치 처음으로 밭에 쟁기를 놓는 것과 같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의 관심 같은 돌들이 있고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풀뿌리 같은 것은 쉽지 않은 쟁기질이었다. 나는 글을 써나가면서 내 생각과 관습과 변화의 후미에서 이삭을 줍는 기분으로 써 보려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시작하면서 아내의 퉁명스러운 말투와 애정 없는 눈빛으로 오랫동안 습관처럼 나를 깨워주고 먹을 것을 내어놓는 그것도 감사할 뿐이다.

어쩜 그런 아내의 나에 대한 태도에서 나만의 탈출구를 찾는다는 기분으로 글자들을 모아 퍼즐놀이를 하게 된 동기 이기도 했다.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하얀 캔버스에 초원이 펼쳐져 있는 남진의 “님과 함께”는 아니었다. 맨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너무나 가난했고 먹거리 걱정을 할 정도로 비전 없고 앞날이 노란 청년이었다. 늘 마음은 큰 꿈을 꾸고 넉넉하여 나눠줄 수 있는 풍요로움과 약간은 거만하게 보이는 부자들의 행태를 따라가고 싶었다. 꿈 많은 청년은 무엇이 내 인생에서 소중 한지도 모르고 다만 성실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매일 무모하기만 했던 요즘 폭설보다 더 추웠던 시간들을 한낮에 달려있는 고드름처럼 매달려 보내곤 했었다.

그때 내게 다가와 준 한 처녀를 만나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운명 같은 만남인지 가까운 사이로 변하게 되고 객지생활에서 지친 유일한 위로와 용기를 얻게 되고 세상을 이 길 힘이 생긴 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 또한 깊은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있는 빨치산 은둔지역 같은 곳 깊은 산골마을에서 태어나 살았기에 넉넉한 살림에 생활걱정 없는 이는 아니었다. 나는 어려서 가난했기에 장가는 꼭 넉넉한 살림살이가 있는 부잣집으로 들려고 했었다.

점점 만나는 날이 많아지고 젊은 청춘남녀가 뜨거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자식들을 키우며 내심 알게 되었을 땐 실소를 하게 되기도 했다. 그렇게 아내와의 만남과 결혼은 조금 젊은 나이에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끔찍한 마음으로 보아주셨으리라는 양가 부모님의 심정이 이해가 될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이 무탈하게 잘 자라서 두 딸은 출가를 하고 아이들을 낳아서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에 내 아이들이 나처럼 비전 없는 사람을 만나면 어쩌나 마음이 쓰였다. 나는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얻어진 삶의 지혜와 지식 등을 통해 비치는 세상살이에 겁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내게는 다섯 손자 손녀가 있다. 그놈들은 나의 뉴페이스이고 나의 미래비전이며 꿈나무들임에는 분명하다. 이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늘 가득하기 위해 기도를 잃지 않는 할아버지다.

keyword
목요일 연재
이전 12화고향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