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낯선 아내
언젠가부터 배일호가 부른 장모님이라는 노래가 자꾸 입안에서 맴돌곤 했다.
"내 몸처럼 아끼고 살아가라던 장모님의 그 말씀이 귓전에 맴돌아 하루에도 열두 번 참고 살아가지만 어찌하면 좋을까요? 나의 장모님. 정말로 달라졌어요. 아내는 지금. 상냥하고 얌전하더니 너무나도 변했어요. 무서워졌어요."가사가 마음에서 늘 출렁거리는 노년의 시절을 보내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퇴직하고 집에 있으니 변해있는 아내의 행동거지와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조심스럽게 말을 건내야 하고 눈치를 보아야 할 판이다. 정글을 호령하던 수사자가 늙어서 무리에서 외면당하고 쓸쓸하게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풀밭에 몸을 누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어쩜 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쉬는 날인데도 눈치껏 아내에게 말을 건네어본다. "우리 처가에나 다녀올까?" 했더니 별로 신통치 않은 반응이다. "그냥 집에 있을까?" 집에 있으면 티브이만 볼 것이고 소파에 드러누워 채널만 돌릴 터인데 이 무료함을 둘러쓰고 그렇게 있음은 쉼이 아니라 생각했다.
여기저기 봄이 온다는 소식이 답지하고 있다. 노란 산수유 축제가 열리고 곳곳에는 홍매의 매혹적인 자태를 사진으로 올려놓고 있다. 하얀 매화가 더욱 마음을 끌지만 봄은 마냥 즐겁지만 못하다. 곳곳에서 산불이 나고 재난을 선포하고 불길을 잡느라 소방관과 공무원들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특히나 울산 울주군에서 발생한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대피하고 사망자도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마음이 무겁다. 봄철 산불은 건조한 환경 때문에 작은 실수에도 큰 불로 연결되어 재난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된다. 이럴 때 비라도 쏟아졌으면 좋으련만... 이번 산불도 실화라는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화재의 열기만큼이나 뜨거운 내로남불식의 이기주의적인 사람들이나 식상한 정치꾼들의 배배 꼬인 밉상 또한 안타깝기만 하다. 벌써 20도를 넘나드는 더운 날씨가 시작되었다. 특별히 갈 곳이 없다고 집에만 있으면 몸도 마음도 무기력해지고 입안에도 쓴 내가 나는 것 같아 바람이라도 쏘이고 풍경이 아름다운 정원 있는 카페에라도 가볼 요량이었다.
언뜻 떠오르는 생각에 “오늘 서천 해수욕장 근처 스카이 워커에 올라가 보고 주꾸미도 먹고 특화시장에 구경도 할 겸 나가볼까?.” 했더니 아내는 탐탁지 않았던지 “애들한테 물어보고.” 한다. 언젠가부터는 나는 서열에서 한참 밀려나 있음을 감지하고 있다.
아내는 두 딸에게 “아빠가 밖에 나가자고 하는 데 너희들의 일정은 따로 있냐?” 먼저 타진을 해 보겠단다. 작은 딸은 다른 곳에 선약이 있고 큰 딸네는 떨떠름하게 반응하는 모양새였다. 아침 늦은 시간에 갑자기 결정한 사항이라 지체되면 오전이 다 가버릴 것 같았다. 빠른 결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과 일정을 함께 하려면 미리 정했어야 하는 데 지금 번개모임을 하자고 하면 준비할 것도 많은 아이들과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나는 가볍게 준비를 마치고 늘 서두르는 법이 없는 아내를 기다렸다가 차에 올랐다. 언제나 아내는 주관적이고 선도적 역할을 하는 타입이 아니고 거의 내가 정하는 대로 피동적인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나처럼 내가 가자는 곳에는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아내와 둘이 외식을 한다던지 멀리 여행을 한다든지 하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있는 외출은 마트에 갈 때 따라가는 것 빼고는 둘만의 여행이나 외출은 아내의 결정에 따르는 일이었다.
그럼 오늘은 익산 황등에 육회비빔밤으로 유명한 시장비빔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일단은 그곳을 목적지로 삼고 출발했다. 나는 기꺼이 오늘 하루를 아내를 위한 봉사로 보내기로 했다. 식당에 도착하니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차들이 도로 양쪽으로 빈틈없이 주차되어 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이렇게 긴 줄 뒤에 서서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걱정이 먼저였다. 나는 더군다나 허리협착증으로 오래 서 있을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하는 수 없이 예전에 몇 번 다니던 다른 식당으로 가 보았다. 여기도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으나 긴 줄은 아니었다. 나는 아내에게 “여기서 먹을까?”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아주 특별한 맛은 아니지만 쉬는 날이라 그런지 맛집 투어를 나왔는지 식당 내에는 북적이는 사람들로 만석을 이루었다.
식사메뉴는 육회비빔밥이었고 특과 보통으로만 구분된 주문이었다, 이 식당에는 선짓국이 특별하게 입맛을 자극한다. 나는 올 때마다 재차 주문하여 선짓국을 즐겨 먹는다. 결국 긴 기다림으로 육회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다른 대기자들을 위해 얼른 자리를 비우고 일어났다. 때마침 황등에는 장날이라 그런지 시장 근처는 각종 먹거리들이 코 끝을 자극하기도 했다. 시골장터에서만 볼 수 있는 호떡이나 꽈배기 찐빵 등은 옛 정취를 느끼게 했다. 황등 특산물인 고구마 등이 많이 나와 있고 구경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기왕 나온 김에 익산 힐링투어를 해볼 요량으로 예전에 왔었던 수입과일 마켓으로 가기로 했다. 이 마켓은 시골 농촌지역에 창고형 매장으로 주로 외국 수입과일이 많고 지역 농산물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키위류가 많고 오렌지나 레몬 등이 있고 지역 농산물들도 있었다. 포도류도 있고 다른 상품들 몇 가지가 있었으나 예전에 풍성했던 느낌은 없었다. 아이스크림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고구마와 과일 몇 가지 사고 아내와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차에 올랐다. 나이 들어가면서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내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백세시대, 120세 시대가 곳 도래 할 것이라고 한다. 어쩌면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오래오래 사는 것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길 테니까.
오늘만은 아내가 좋아하는 고구마와 무화과, 시절을 잃은 오렌지도 샀다. 뿌옇게 덮여있는 미세먼지는 하늘의 구름조차도 볼 수가 없다.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가 근처에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다. 오래전에 한번 들러서 사진도 찍었던 터라 꽃들도 예쁘고 잔디가 잘 가꾸어져 있어서 좋은 기억이 있었다. 오래된 탱자나무에 노란 탱자가 열려있던 그 기억을 오랫동안 이어 놓은 듯하다. 우선 자리를 잡고 아메리카노와 주스를 주문하고 창가 의자에 앉았다. 창밖으론 여전히 평온과 여유가 깔려있었다. 이곳 카페 한편에는 승마장도 있어서 아이들에게 승마체험도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언제 우리 손주들 데리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빠르게 서쪽으로 달리고 집에서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집으로 향하는 길에 들려갈 곳을 찾아보았다. 국립익산박물관이 생각이 났다. 익산은 옛 백제의 왕궁터와 미륵사지 석탑으로 역사적 유물이 많이 출토되어 박물관을 지어 전시되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국내 최대의 석탑이며 가장 오래된 백제의 석탑이기도 하다. 그 일대를 문화재 보존지구로 선정하고 박물관은 아름답게 잘 지어져 관리되고 있다.
특히 박물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금제 사리함도 가까이 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아내와 나는 가까이 살면서도 처음으로 오게 되었다. 아내는 늘 손주들 생각에 “애들 데리고 와서 관람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으면 좋겠네” 한다.
한참 동안 박물관 관람을 하면서 기념품도 사고 커피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여전히 아픈 허리는 나를 힘들게 하였어도 모처럼 아내를 위한 외출이라 눈치채지 않게 견디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아내는 기분이 조금은 좋아진 듯했다.
겨우내 헐벗고 죽은 듯 앙상한 가지에는 어느새 작은 새잎이 움트기 시작했다.
햇볕 바른 양지에는 산수유 꽃봉오리가 노랗게 올라와서 예쁘기가 비할 대가 없다.
익산에 왔는데 빼놓을 수 없는 곳은 금마에 있는 보석박물관이 있다. 아내는 유난히 금붙이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구경이라도 할 겸 들러보기로 했다. 어쩌면 가야 할 곳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번득 들기도 했다. 늘 금붙이 하나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아내와 그곳에 가려니 괜한 걸음을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도 했다.
어쨌든 눈요기라도 하면 좋을 듯싶었다. 황금색 목걸이와 각종 장신구들이 점포마다 볼품 있게 전시해 놓았다. 슬그머니 가격표를 보니 마음에 들어 보이는 것은 값이 꽤나 많이 적혀 있었다. 나는 눈치가 참 빠른 것이 문제지만 아내의 눈초리를 보니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여기는 왜 와?”하는 듯했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볼품 빠지게 나는 눈으로 보는 것도 마음이 편치는 못했다. 비가 오렸는지 남쪽으로부터 하늘이 어둠을 몰고 오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에 아내는 아무 말도 없이 뾰로통해 있는 듯하여 기분 전환도 할 겸 하나로 마트에 들르자고 했다. 아내는 시장쇼핑을 좋아했다. 저녁 식사를 위해 소고기도 좀 사고 아내가 좋아하는 몇 가지 사서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 길에는 언제 쏟아붓고 갔는지 길 위에는 빗물이 흥건했다. 저녁 식사 때쯤 도착한지라 방안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서 다른 곳에 온 듯했다. 티브이 켜고 조금 쉬었다가 씻고 아내와 말 없는 저녁 식사를 했다. 아내는 보석에 관한 특별한 바람이 있어서 그랬는지 내 생각에 걱정은 조금 했으나 다행히도 집에 와서는 별다른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시시콜콜하게 그날그날을 살아가고 있다. 서로에게 미안해하기도 하고 옆에 있는 것 하나로도 만족해할 줄 아는 노년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아내는 내가 퇴직 무렵에 “퇴직하게 되면 집에서 삼식이가 되지 말아” 고 했었다.
아내와 결혼한 후 아이 둘을 낳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결코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다. 서로에게 신뢰를 부여하고 수십 년을 티격태격 살아오며 우리 부부도 노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가끔은 살아온 지난날들을 회상하기도 하지만 살아가야 하는 모든 날들에서 서로에게 의지가 될 수 있는 동반자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은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전혀 다른 성정을 가지고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상대에 대한 작은 예의 일 것이다. 부부는 전혀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동등한 인격체로 반드시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부부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오는 과정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독립된 가구를 이루고 가정이라는 사회적 적응 단계를 거치면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었다. 나를 사랑해 준 사람과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분명해지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생존이라는 큰 가치를 공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부에게 사랑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 줄도 잘 모르면서 서로를 향하여 진실된 마음은 표현하지도 못했다. 어찌 보면 부부라 할지라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때론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어 경쟁사회에 적응해 간다는 핑계로 서로에게는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어버리기도 했다. 서로에게 충동적인 불편한 이유만 만들어 내어 싸움이 잦기도 했었다. 나이 들어 서먹서먹해지는 이상한 관계로 고착화되어 남보다 못한 관계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평생 부부는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하게 되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되고 함께 꾸려가기로 한 부부의 예는 색이 바래 버렸는지도 모른다. 점점 상대에 대한 우월의식은 상호 존중과 배려, 신뢰와 섬김의 자세는 잊게 되고 서로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이기주의적인 삶이 부부관계에서도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전에 부부십계명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지만 그것은 바람일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한 사람을 택하여 평생 반려자로 맞는 것은 우주의 신비로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 서로에게 진실되기를 묵시적으로 단정하고 수많은 인생살이의 과정을 겪으며 온갖 풍파를 함께 해쳐 나왔다. 그렇기에 동지적 차원에서 예측할 수 없던 시절에 두려움도 견딜 수 있었고 그 두려움과 맞설 용기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나는 지금까지 무엇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 우리의 삶을 무엇으로 지탱해 갈 것인가. 서로에게 무한 신뢰와 존중이 먼저 있어야 하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에도 손을 놓지 않을 가애란 의지와 사랑이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두 딸과 두 사위와 다섯 명의 손자, 손녀가 있다. 남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우리 부부에게는 더없는 행복이요 즐거움이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는 내일을 꿈꾸는 것이 서로 다름은 인정하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임을 새삼스럽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