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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함이 필요해

by 장미의 이름 Jan 24. 2025

어떤 새로운 집단의 첫날. 첫인상은 보통 처음 만남에서 3초면 결정이 난다고 합니다. 얼굴과 표정, 옷차림, 목소리에 대한 정보만으로 각자의 취향에 따라 좋거나 싫은 사람으로 판단이 된다는 겁니다. 나의 경우 첫 모임을 나가면서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을까?’라는 생각에 대한 감정은 사실 설렘 보단 부담감과 긴장감이 큽니다. 그런 마음 상태인 내가 상냥한 말투, 부드럽고 온화한 표정, 편안한 몸짓을 보일리 없습니다. 나의 첫인상을 신경 쓸 겨를 없이 익숙하지 않은 공간과 사람에 대한 불편함을 온몸으로 방어하다 보면, 벌써 성격 급한 누군가가 나에 대해 “카리스마 있으세요.”라고 말을 합니다. 표정이 날카롭고 다가오기 힘들다는 순화된 표현이겠지요. 대학 때 친구들이 미팅을 하루에도 몇 탕씩 뛸 때 한사코 거절했던 이유가 꼭 ‘자.만.추’인 것만은 아니었음을 이제는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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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나를 조금 안다는 사람들은 ‘정열적’, ‘슈퍼우먼’과 같은 수식어를 붙여 줍니다. 이루고 싶은 것이 분명했던 내가 그것을 향해 흔들림 없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도 엄마로서, 아내로서, 딸로서의 역할까지 소홀하지 않으려 애쓰는 태도를 그렇게 표현해 주는 것이겠지요. 그런 수식어의 공통점은 넘치는 에너지와 활동성, 성취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런 수식어가 진짜 ‘나’라서 붙여졌다기보다는 그렇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카리스마, 정열적, 슈퍼우먼. 모두 진짜 나의 모습일까요? 진짜가 아니라고 말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인 것도 아닙니다. 날카로운 카리스마의 이면에는 긴장감을 감추고자 하는 여린 마음이 숨어 있고, 나와 조금 더 친해진다면 온화하고 따듯하고 사랑이 넘치는 오지라퍼를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정열적이고 슈퍼우먼으로 살기 위해서 캄캄한 동굴 속에서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이불 밖을 나오지 않는 시간도 많지요.

오래 만나고 가깝게 지내는 동료인 K는 내가 ‘온돌방’ 같다고 합니다. “처음 이 방이 냉골인 줄 알았는데, 차츰 방이 따듯해지더니 어느 순간 뜨끈해지고, 잘 식지 않아서”라고 말을 합니다. 나를 잘 이해해 주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은근히 혼자가 편하고, 바쁘고 활동적이지만 은근히 내성적이고, 겉으론 강하지만 은근히 마음이 약하며, 할 말 다하는 쿨한 여자 같지만 은근히 후회가 많은 여린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는 겉으로 보는 것과 반대되는 면을 더 많이 갖고 있고, 내가 친밀하다고 느끼는 사람에만 꾸밈없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누구나 나처럼 하나의 정해진 모습이 아니라 다양한 면면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어떻게 3초 컷으로 판단된 첫인상이 바뀌지 않고 그대로라는 말이 좋다고만 할 수 있나요? 오히려 그게 이상한 게 아닌가요? 보면 볼수록 다양하고 풍부한 면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매력 있고 그런 사람과 친해지는 과정이 더 재미있을 겁니다. 누군가 내가 아는 ‘나’의 숨겨진 진짜 모습을 모른다면 아직 친밀한 관계가 아니거나, 친해질 필요까진 없는 관계였나 봅니다.      


아직 나의 ‘은근함’을 몰랐다면, 그리고 알고 싶다면, 이제부터 좀 더 친해져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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