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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준 Apr 29. 2024

3대 300을 드는 의사

준비된 사람만이 내일을 만든다

 나는 취미가 별로 없다.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어린 시절 나는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을, 그러니까 취미를 가질 수 있을만한 환경이 아니었고 그러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해서도 장학금을 놓치면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연히 자연스럽게 취미를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내가 성형외과 전문의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가진 취미는 '달리기'였다.




 이제 나이키 러닝화를 살 정도의 여유는 있었으니까. 마음에 쏙 드는 러닝화와 트레이닝복, 그리고 언더셔츠까지 양손 가득 사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 자체가 즐겁기도 했지만 사실, '달리기'는 내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취미였다.


 '성실한 건 돈이 안든다.'라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가슴에 품고 그 성실함을 유일한 무기로 살아온 내게 '달리기'란 돈이 아닌 '성실함'으로 승부할 수 있는 공부와 수술, 연구 이외의 또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매년 봄, 가을 시즌이 되면 마라톤 대회를 준비한다. 지금까지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해 완주를 이어왔고, 올 가을부터는 풀 코스에 도전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 마라톤 코스, 그게 하프 마라톤이라고 하더라도 완주에 도전하는 것은 해본 사람만이 아는 '성실함'을 투자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출근 길, 퇴근 길, 어떤 때는 주말 내내 도심과 한강 공원을 달리며 호흡에 집중하다보면 그 순간만큼은 잡념이 모두 사라지고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기 위해 꾸준히 하체와 심폐 지구력을 갖추다보니 어느새 웨이트 트레이닝을 병행하게 되었고, 3대 300이라는 이전에는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무게를 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운동도 타고난 재능을 갖춘 사람에게 이기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성실함'이라는 나만의 재능을 통해 스스로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는 신념을 다시 한번 증명해낸 것이기에 나는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이 '3대 300'이라는 수치가 꽤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느껴진다.



 '달리기'를 통해 운동을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 또 하나 있다. 수술, 특히 겉으로 바로 결과가 드러나는 '미용 성형' 수술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행위이다. 의사도 사람이기에 아무리 노력하고 연구하고, 또 경험을 많이 쌓은 베테랑 의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집중력을 유지하는 것은 체력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단지 의사로서의 마음가짐, 성실함, 경력 같은 것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수술에 있어 최상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위해서, 즉 환자를 위해서라도 나는 '달리기'를 멈춰서는 안되는 것이다.




 '리프팅'이라는 한 분야를 연구하고 경험을 쌓아 '글로벌 스탠다드'를 다시 세우겠다는 나의 꿈을 리팅성형외과 의료진들과 함께 공유하고 노력해 나가면서, 나는 우리 의료진들이 그 꿈에 진심으로 공감하며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느끼는 순간들을 발견할 때마다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으려 하지만 속으로는 기쁜 마음에 환호를 감출 수가 없다.


 서로가 같은 꿈을 꾸며 함께 노력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확실하게 목표에 다가서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달리기'를 통해서도 그런 순간을 만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원장님 저도 오늘부터 같이 뛰어도 될까요?"



 그날도 역시 종일 수술, 토론, 연구 결과에 대한 공유, 그리고 또 수술을 마치고 모든 집중력과 체력을 다 쏟아낸 채 밤이 되어서야 함께 퇴근을 준비하던 그 원장님의 한마디는 그렇게 또 내가, 우리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말이었다.


 올 가을에 도전할 또 한번의 마라톤 코스를 그날부터 나와 함께 달리는 원장님과 함께 준비하면서, 그리고 달리는 시간 외에 모든 시간을 '리프팅'이라는 한 분야에서 더 발전하기 위해 함께 쏟아 부으면서, 나는 오늘도 확신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간다. 내가 가진 최고의 재능,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의료진들이 보여준 최고의 재능'성실함'이 결국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게 될 힘이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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