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에 이런 일을 경험할 줄이야
따알화산 폭발 (2020. 1. 12 일요일 오후 2시경)
2020년 경자년 새해를 맞이하자마자 재난이 닥쳐왔다.
집 앞마당에 서있는데 갑자기 눈송이 같은 무언가가 하늘에서 후드득 떨어지더니 콘크리트 바닥에 하얗게 쌓이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우박이 떨어지나 하고 신기해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눈도 아니고 우박도 아니고 잿빛 화산재였다.
깜짝 놀라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구름 같은 하얀 연기가 엄청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화산이 터졌나 보다'라는 불길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확 스치고 지나갔다. 집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필리피노 부부를 불러 물어보니 정말로 화산이 터졌다고 한다. 오 마이 갓!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 따가이따이의 따알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가 분출되고 용암이 흘러내렸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화산지역에서 생생하게 재난을 경험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진짜 재난영화에서 보던 그 장면들이 눈앞에 그대로 펼쳐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두운 밤이 되자 내가 살고 있는 실랑지역과 따알화산이 있는 따가이따이 지역 전체가 정전이 되고 단수가 되어 온 세상이 암흑천지로 변했다.
밤 8시경에는 이 지역 단톡방에서 대피하라는 경보가 떨어져 할 수 없이 화산재로 까맣게 뒤덮인 차를 몰고 도로에 나섰는데 진눈깨비처럼 떨어지는 화산재로 인해 질퍽해진 도로에 수많은 차량행렬이 마닐라 방향으로 줄지어 내려가고 있었다. 와이퍼로 아무리 닦아도 닦이지 않는 재 때문에 앞이 제대로 안 보이니 모든 차들이 엉금엉금 거북이처럼 기어서 갔다. 그 와중에도 길가에 선 필리피노들이 내리는 비를 맞아가며 화산재로 뒤덮인 차량 앞유리에 양동이에 든 물을 들이부어주고 있었다. 필리핀 사람들의 의리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신히 간신히 발루바드1에 들려 처형네 내외를 태우고 다스마리냐스 라메디 빌리지로 향했다. 실랑 로빈슨 프리미어 플라자를 지나니 비가 내리지 않아서인지 도로가 한결 깨끗하고 화산재도 그냥 뿌옇게 날리는 정도였다. 라메디에 도착하여 일단 전기가 들어오고 물이 나오니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컵라면으로 출출해진 배를 채운 후 카톡 단톡방에서 현지 상황을 살펴보고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이 재난상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