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바이> 잘 헤어지는 일

곤도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딸아이가 친구들을 집에 데려와서 파자마파티를 한단다

부산을 떨며 집을 치운다

나에게도 불똥이 튀어

이건 왜 안버리는 저건 왜 소장하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물어본다

내가 불필요한 물건들을 모조리 버려야 내 옆을 떠날 기세다


덕분에 나도 물건들을 몇 가지 버렸다

물건에는 그 물건을 사면서부터 사용하기까지의 나의 추억이 담긴 것 같아 버리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나의 오래된 백팩인 캐드키드슨은 꽤 오래 되었다

아부다비 가기 전부터 들고 다녔으니

2018년보다 전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구매한 것 같다


나에게 캐드 키드슨 물품은

작은 민트색 동전지갑

지폐가 수납 가능한 흰색 조금 더 큰 지갑

아이들 런치박스로 구입했던 런치박스 두 개가 있다

도서관에 들고 다니려고 산 숄더백 작은 것 조금 더 큰 것이 있고

아이들에게도 아부다비를 떠나기 전 작은 지갑 두 개를 사주었다

가방과 지갑은 대체로 꽃무니 패턴이고 런치박스는 하나와 큰 숄더백은 무당벌레 무늬와 꿀벌 무늬다


캐드키드슨 특유의 로맨틱한 꽃무늬가 좋고 튼튼해서 실용성이 있으며

아부다비에 살 때 보더스에서 자주 할인행사를 하기도 했다

보일 때 마다 구입했더니 어느새 주변에 고개를 돌리면 캐드 키드슨 물건이 눈에 띄게 되었다


물욕이 크게 없는 내가

캐드키드슨에 충성심이 생겨

영국여행을 갔을 때에 캐드키드슨 1호 매장에 방문하려고 계획했었다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 사랑 캐드키드슨의 마지막 매장은 내가 영국을 방문하기 몇 달전 폐점되었다는 소식을 영국 신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속상했다

중국의 한 기업에 인수가 되었다는 사실

이제 캐드 키드슨의 아이덴티티는 지켜지지 못할것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쉬움이 컸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없었지만


2023년 영국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나는 한동안 캐드키드슨 가방을 잘 사용했었다

숄더백 두 개는 튼튼하고 가벼워 책과 아이패드를 넣어도 거뜬했다

그것들을 어디든 들고 다녔었다

그러다 올해 2025년 Emis 브랜드를 알게되었다

첫째가 학교 가방이 아닌 가방을 사달라고 하는 바람에

알아보다 그녀에게 하나를 사 주고

나도 가벼워 보이는 숄더백 두 개를 샀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것들을 잘 사용하고 있다


다가올 8월 스위스와 아부다비에 갈 여행 준비를 하며

챗지피티에게 준비물과 일정 등을 물어보았다


첫째의 성화에 못이겨

오래된 옷 중 몇 가지를 버렸다

기분이 묘했다


그 중 베이지색 린넨 외투를 집어들자

몇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막 아부다비에 도착해 한인 성당에 갔을 때였다

짙은 갈색 반바지에 흰 슬리브리스를 입고 그 위에 걸쳤던 가벼운 여름 자켓이다

최근 3년동안은 입은 적이 없다

그저 옷장을 오가며 그 옷을 바라볼 때마다

아부다비 생각을 했을 뿐


그 옷을 버리자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다음주 이모님이 오기 전 모아두는 재활용 쓰레기 옆에 놓아두었다

옷을 내려놓을 때까지도

옷을 입었을 때의 날들이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낯설고 힘들었던 처음 아부다비에서의 날들

에어컨이 강한 실내에서 몇번 요긴하게 걸쳤던 기억

야스몰에서 아이들 학교에서 또 카페에서

그 옷을 입고

웃고 울며 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떠올라

옷을 순순히 보내주기 힘들었다


다행히 나의 아부다비 기억은

지금 초고를 쓰고 있는 아부다비 책에 대부분 담겨있으므로

보내주자고 마음 먹고

다음 타자를 찾아보았다


옷장 여기저기를 들여다 보다

캐드키드슨 가방을 발견했다

네이비 꽃 무늬가 가득한 나의 여행 메이트

특히 먼 곳으로 여행을 갈 때면 ktx나 비행기 기내에서 나와 함께 다녔던 아이

얼마전부터 지퍼 손잡이가 망가져 버릴까 말까하고 고민했던 물건이었다


둘째 아이가 쓰던 키플링가방이 나에게로 오게 되어

마침 캐드키드슨을 대체할 수 있게 되었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미련이 남았다


일본의 유명한 공간디자이너 곤도 마리에는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

라는 말로

한때 일본 뿐 아니라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각광받았다


지구촌 곳곳 집안 정리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경건한 자세로 거실에 앉아

이 집의 기운을 느껴요

또 물건들을 모조리 꺼내어 하나씩 만져보며

설렘을 느껴보세요

하며

물건과 집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다


캐드키드슨 백팩을 만지며 설렘이 느껴지냐고 묻는다면

Yes

키플링 백이 캐드키드슨을 대체할 수 있을것 같냐고 물어보면

아마도 Yes


어렵다

대체할 물건이 있는데 원래의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상황


무엇보다도

캐드키드슨 백팩은

아부다비 4년 생활 내내 내 옆에 있어주었다

아부다비에서 근처 나라로 여행을 떠날 때

그리스 조지아 이탈리아 체코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함께 했고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영국 스코틀랜드 요르단에서 함께 했다


그런 너를 어떻게 놓을 수 있겠니

하는 마음이 들지만


이 친구의 사진을 잘 남겨두고

가끔 추억을 떠올리는 것이 하나의 옵션이 될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버리지 못했다

둘째에게 받은 키링 두개를 부러진 지퍼 손잡이에 붙이고

거실 피아노 옆 의자에 잠시 앉혀두었다


여행을 가기까지

약 한달이 남았다


그 전까지는 판단을 해야겠지


그래도 오늘

몇 가지 옷을 버린 수확이 있었고

그 자리에 내가 요즘 자주 입는 다른 옷들을 더 잘 입을 수 있는 여유가 마련되었다


버리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나 무슨 일을 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다 가지거나 다 할수는 없는 노릇이니

포기는 일견 마음 아프지만

새로운 물길을 틔울 것이다


내일도 또 버려야겠다

다른 물건의 의미있는 쓰임을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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